기억하지 못해도 남는 것들, 딸 둘과 떠난 동해
나는 여행을 참 좋아한다. 낯선 공간의 공기를 만나는 건 내 인생의 숨통을 틔워준다. 처음 다니던 대기업 재무팀의 빡빡함을 벗어나면서 한 건, 7개월 동안의 세계여행이었다. 답답할 때면 일단 뒤돌아보지 않고 떠난다. 떠나고 나면 낯섬이 주는 편안함이 나를 다시금 살게 했다. 누가 뭐래도 ENFP, 그중에 P는 대문자인 사람이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여행은 대규모 프로젝트가 되었다. 팬티 몇 장에 티셔츠 몇 장만 챙기고 훌쩍 떠나던 그때의 자유로움은 사라졌다. 여행의 즐거움보다 짐의 무게가 더 힘들어졌다. 아이도 힘들어했다. 첫째가 돌이 되기도 전에 떠났던 여행은 낯선 숙소를 불편해했던 첫째가 밤새 울며 조기 종료되었다. 새벽에 깬 첫째를 재우며 말했다. "이건 아닌 거 같아. 다시는 아이 크기 전에는 여행 안 갈 거야." 내가 또 오면 사람이 아니다.
그 말이 무섭게, 여행을 가고, 후회하기를 반복하자 와이프가 말했다. "이렇게 여행 갈 때마다 화낼 거면 그냥 집에 있자." 정신을 번쩍 차리고, 한동안 집돌이가 되었다. 시간이 흘렀다. 첫째는 4살이 되었다. 회사를 그만뒀고, 내게는 갑자기 시간이 너무도 많아졌다. 다시 나의 여행 본능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평일이면 비행기 티켓값도 싸잖아? 딸과 둘이 여행 가보는 거, 로망이잖아?' '아니야, 그래도 4살인데, 의미도 없고 진만 빼는 거 아닌가.'
갈팡질팡하던 중, 유튜브에서 모 작가의 여행에 관한 얘기가 마음에 박혔다. '부모와 함께 어디를 간 좋은 감정은 남아있는다, 그게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바로 불타올랐다. 여권을 바로 만들고, 발급이 되자마자 일주일 뒤의 평일 특가 항공권을 예매해서, 딸을 데리고 일본행 비행기에 탔다. 인생 첫 부녀여행이었다.
생각보다 괜찮은 시간을 보냈다. 함께 돌고래쇼도 봤다. 낮잠 시간에 걸친 첫째는 돌고래들이 뛰어오르자 언제 졸렸냐는 듯 완전히 빠져들었다. 이자카야도 갔다. 나는 생맥주를, 첫째는 꼬치를 먹었다. '이 정도면 서로가 다 만족할 만한 여행이지'라고 혼자 생각하며, '나는 혼자 딸을 데리고 해외여행도 갔다 왔어! 멋지다!'라고 도취되었다. 여기서 멈췄어야 했다.
시간이 지나 둘째가 나오고, 와이프는 일찍 회사로 돌아갔고, 회사에서 더 지쳐갔다. 둘 키우는 건 하나 키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임을 느끼며, 나도 하루하루 매일 인생 최저 컨디션을 찍고 있었다. 세상 모든 게 의욕이 사라져가는, 돌이켜보면 '육아 우울증'이었겠지만, 그때는 알지 못했다. 집이 감옥 같았다.
둘째가 돌이 될 때쯤, 첫째와 둘이 다녀온 여행을 떠올렸다. '그래, 둘이서도 다녀왔는데, 셋이 못 가겠어?' '좋아. 나는 애 둘을 데리고 혼자 여행도 갈 수 있을 거야.' 무의미한 삶을 바꿀 수 있을 돌파구가 될 것만 같았다. 해외는 워낙 변수가 많아 어려울 테니, 국내로 가자. 이왕이면 뻥 뚫린 바닷가가 좋겠어... 하고 예약 사이트를 두리번거렸다. 평일 1박 5만 원, 민박이 있었다. 동해 바닷가 도보 3분. 그래, 이거였다. 바로 예약하고, 다음 날 떠났다.
가는 3시간 동안 마침 아이들은 한 번도 깨지 않고 잘 자줬다. 오랜만에 나 혼자 드라이브하는 것 같았다. 매일 나오던 '동화 뮤지컬'을 비롯한 어린이 음악은 없었다. 차 안의 음악은 '여름 드라이브와 함께 듣기 좋은 스무드 재즈', '쿨 메들리'였다. 평일 고속도로는 막히지도 않았다. '오, 이거 여행 시작이 좋은데?'
도착한 바닷가의 민박은, 완전 옛날 스타일이었다. 그것조차 마음에 들었다. 작은 방에 옹기종기 딸 둘과 아빠라니. 민박 주인장 할머니는 엄마 없이 셋이 온 우리를 보고는 놀라셨다. "애 엄마는 안 왔어?" "네, 바빠서 제가 둘 데리고 왔어요." "아구~ 그게 어찌된댜. 대단허네." 다른 부모들은 이렇게 못할 거다.
"얘들아, 우리 바닷가로 가자!" 바닷가에 도착할 때까지 유효했던 나의 힐링 타임은 딱, 거기까지였다. 도보 3분인 해수욕장은, 아이 둘을 데리고 가려니 왜 이리도 먼지. 유모차를 탄 둘째를 본 첫째는, "나도 타고 싶어!"를 반복했고, 결국 나는 첫째를 목마에 태우고, 둘째를 유모차에 태우고, 한 손으로는 모래사장에서 유모차를 끌고, 다른 한 손에는 모래놀이 세트를 든 채 해변에 자리를 잡았다.
호기심 많은 둘째는 황급히 깐 돗자리에 앉자마자 모래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본 바닷가의 모래가 흥미로웠는지, 앉자마자 손으로 잡고, 던졌다. 첫째는 모래를 맞는 게 싫었는지 "싫어싫어" 했고, 잠시 말리고 한숨 돌리고 있으니, 둘째는 기어이 그 모래를 맛보기 시작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비가 오기 시작했고, 다시 딸 둘에 유모차에 모래놀이를 끌고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10분도 안 있었던 거 같은데, 모래범벅이 된 아이들을 씻기는 건.... 후, 이 글을 쓰는 지금, 다시 생각해도 고통스럽다.
넋이 나가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아직 이유식을 하던 둘째를 챙기랴, 완전히 혼자 먹지는 못하는 첫째를 챙기랴, 배가 고파서 현기증이 나기 시작한 내 배를 채우랴,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때, 예전에도 매일 했던 다짐이 다시 생각났다. '다시는 아이 크기 전에는 여행 안 갈 거야.' 근데, 이렇게 또 와버리다니.
아직 여행의 2박 중에 1박이 채 지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내가 마음먹은 걸 꼭 다 하고 싶었다.
내가 한 결정에 무릎 꿇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는 것 같은 내 삶에 이번 여행만큼은 '완수'라는 도장을 찍고 싶었다. 그래서, 급하게 집에서 쉬며 아이를 보던 후배에게 'SOS 요청'을 했다. 마침, 그 후배의 아이는 내 둘째와 같은 나이였다.
"나 지금 여기 동해에서 죽어가고 있어.. 1박에 5만 원인데 놀러올래?" ".. 거기를 혼자 갔다고???" 다행히 이튿날, 후배 부부는 죽어가는 나에게로 와줬다. 마침, 동해 바다를 참 좋아한다고 했고, 후배의 차가 민박집에 도착하는데 마치 그 차가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아, 나 살았다. 그렇게 아이 둘, 어른 하나였던 극기 훈련은 아이 셋, 어른 셋인 고행길 정도로 바뀌었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진 바닷가로, 다 같이 나갔다. 물놀이를 하기에는 파도가 조금 거칠었다. 그래도, 1:1 케어가 가능해져서 파라솔도 빌리고 물에 발도 담글 수 있었다.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기가 둘인, 어른들만 신나는 물놀이 타임이었다. 그마저도, 둘째와 후배 아이는 낮잠이 들었고, 갑자기 거센 파도가 밀려와 둘째를 덮쳤다. 자지러지는 둘째를 안고, 철수.
밤에 딸 둘을 힘겹게 재우고, 민박집 마당에 나와서 치맥을 먹었다. "둘 데리고 오는 건, 미친 짓이었어." "어, 그러게요. 왜 그런 미친 짓을 했어요..?" "그러게. 집에 있으면 미칠 것 같아서 나왔는데, 밖에 나오니까 죽을 거 같네." 얘기를 하면서도, 귀는 민박집 작은 방안으로 쫑긋 세웠다. 혹시나 낯선 자리에 잠이 깼는데, 아빠가 없으면 얼마나 무서워할까 싶어서.
다음 날 아침, 돌아오는 길은 평소보다 훨씬 막혔다. 막힐 시간이 아니었는데. 차 타기를 힘들어하던 둘째는 기어이 잠에서 깨어나 자지러졌고, 잘 자던 첫째도 깨서 "시끄러워"를 외치며 울었다. 어찌할 수가 없던 나도 마음으로 울었다. 조금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와이프는 셋의 얼굴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 "왜 이렇게 넋이 나갔어, 셋다?" "나, 다시는 여행 안 가. 이번엔 진심이야."
그 이후로 우리 가족은 정말로, 한동안 여행을 안 갔다. 한 1년쯤. 내 고통의 유효기한은 한 1년쯤인가 보다.
극기 훈련처럼 고통스럽기만 했었던 것 같은 그 여행도,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 기억나는 질감이 있었다. 아파트 생활을 오래 해서인지, '이웃'을 만나며 살 일이 거의 없던 첫째는, 복도를 지나 있는 주인집 할머니 방이 신기했었나 보다. 방에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할머니 방으로 자기가 걸어가서는 받아서 왔다. 그리고선, 그게 그리도 신나는지 해맑게 웃었다.
둘째의 처음 바닷가와 조우했던 순간도 떠오른다. 모든 게 처음이던 그때, 아직 걷지도 못하던 둘째가 만졌던 그 모래의 느낌, 그리고 작은 모래를 입으로 먹었을 때의 그 까끌까끌함..... 은 별로였겠지만, 그 모든 첫 느낌은 둘째의 세계 속 어딘가에 남아있을 것만 같다.
무엇보다도 나, 첫째, 둘째가 함께 누워서 잠을 청하던 그 작은 민박집의 천장이 떠오른다. 집이 아니라 어색했는지 내 익숙한 팔을 베개 삼아 누워있던 그 딸을, 그리고 아이들이 잠이 들 때까지 꼼짝도 못 하고 누워있던 그 팔의 저림이 생각난다. 천장에 대롱대롱 달려있던 전등 스위치가.
얼마 전, 그때 갔던 그 바닷가를 함께 갈 기회가 있었다. 지나가는 길에 첫째에게 물었다. "그때 우리 저기 저 집에서 잤는데, 기억나?" "응? 아니. 처음 온 거 같은데." "아... 그럼, 너 4살 때 아빠랑 돌고래 춤추는 거 본 거는 기억나? 그때.... " "우와~ 돌고래? 돌고래 춤추는 거 보러 가고 싶다!"
그래, 우리 또 보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