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길바닥에서 가르쳐준 '지금'의 의미
평소와 다름없는 어느 날 오후, 어린이집을 마치고 미술학원에 첫째를 데려다주고 둘째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침부터 유독 치울 것도 많았고 미뤄뒀던 옷 정리에, 당근 거래에 종일 정신이 없이 밀린 집안일을 하느라 저녁 준비를 못 해놓고 시간에 쫓겨 나오고 말았다. 집 냉동실에 쟁여놓은 고깃국도 다 떨어졌는데, 마음이 급했다.
저녁 준비를 못 해놨다는 건, 주부의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를 놓친 것이었다. 배고픔을 바로 해소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짜증을 내는데, 특히 둘째는 바로 간식장으로 돌진한다. 그걸 꺼내주는 순간, 제대로 된 저녁 식사는 끝인 걸 알기에, 할 일을 못 해놓은 찝찝함이 한가득이었다.
"둘째야, 어서 집으로 가자." 이것저것 세상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둘째의 손을 끌고 집으로 급하게 걸어갔다. 두 돌이 지난 둘째는 한 걸음도 편하게 가는 법이 없다. 내 불안한 마음과는 상관없이 자체 브레이크를 걸기 시작하더니, 그때부터 자신의 짧은 어휘를 총동원했다. "아빠, 아니야!" "싫어. 여기, 여기."
그러더니 기어이 잡은 손을 뿌리치고 말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길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아니야, 지금 이러면 안 돼. 어서 집에 가야돼." 하고 부드럽게 시작한 나의 회유는 점점 강도를 올려가고 있었다. "야, 빨리 와!" "이놈~" 들은 체도 안 하고 있는 둘째를 안고 가야겠다 싶었는데, 도대체 뭘 보느라 이러고 있나 싶었다.
그리고 둘째의 시선을 따라갔다. 시선의 끝에는, 줄지어서 어딘가로 가고 있는 개미들이 있었다. 아직 완벽한 발음을 구사하지 못하던 둘째는 손가락으로 개미들이 있는 쪽을 휘휘 저으며, "애미다, 매미다." 하면서 개미 떼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눈으로 열심히 쫓고 있었다.
"어, 그래. 개미들이 어디로 가고 있네." 눈만 바닥으로 내리면 치이는 개미 떼들도, 아기들한테는 신기하겠지, 심드렁한 마음이었다. 집까지 가는 길이 순탄할 줄 알았는데 이 작은 개미들한테 길이 막히다니. 어쩔 수 없었다. 옆에 앉아서 핸드폰을 보며 조금만 기다려보기로 했다.
바닥에는 개미가 많아도 정말 많았다. '이렇게까지 개미가 많았나?' 싶을 정도로. 둘째의 시선은 첫 번째 개미 떼에서 조금 옆에 과자 부스러기에 몰려있는 개미 떼들로, 조금 뒤에는 음료수 흘린 곳 근처의 개미 떼로 옮겨갔다. 개미가 조금만 자기 옆으로 오면 "무셔(무서워)" 하며 내 다리에 꼭 안겼다가, 또다시 쪼그려 앉아 "애미, 애미(개미)" 하며 그 작은 곤충의 세계를 관찰했다.
둘째는 그렇게 '개미 월드'에 완전히 빠져버린 것 같았다. 바로 근처의 개미 떼의 관찰이 끝났는지, 그때부터는 활동 범위를 넓혀갔다. 내 손가락 하나를 꼭 쥐더니, 나를 끌고 개미들을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핸드폰만 보던 내가 조금 부끄럽게 느껴져서, 나도 허리를 굽혀서 둘째와 함께 개미들의 세계를 관찰해보기 시작했다.
내가 어릴 때, 네모난 얇은 플라스틱 상자에 개미와 흙을 담아서 개미 집짓기를 관찰하는 과학 세트가 있었다. 그때 이후로 개미들의 삶에 이렇게까지 가까이 다가가 본 것은 처음이었다. '둘째가 하는 걸 같이 해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관찰인데, 옆에서 "우와! 이거, 이거" 하고 있는 놀라운 표현을 보다 보니 나도 그때 그 과학 세트를 보던 어릴 때, 그 순수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자세히 보니 개미들의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먹을 걸 열심히 옮기고 있는 개미에, 앞의 개미를 따라 줄줄이 따라 걸어가는 개미들, 그 사이에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다친 개미들도 있었다. 더듬이가 부러졌는지 헤매는 개미에, 다리를 다쳐 절룩이는 개미, 흙 사이 작은 개미집 구멍으로 쏙 들어가는 개미들...
그 개미들을 따라다가 둘째의 얼굴을 바라봤다. 둘째는 그 작은 자기 손가락의 마디만큼도 되지 않는 작은 생명체를, 온 마음을 쏟아 바라보고 있었다. 눈은 반짝거리고 있었고, 집중하느라 입에서 침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개미는 지금의 둘째에게는 모든 세상이었다. 눈앞에 개미가 움직이고 있었고, 둘째는 그 개미를, 온 힘을 다해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저 아이에게는 '앞으로 해야 할 일'도, '어제 있었던 일'도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다 큰 어른들에게는 지나간 것과 해야 할 것으로 가득한데, 아이들에게는 그런 건 없었다. 결국 그래서 아까도 둘째의 호기심을 나도 모르게 무시하고 지나갈 뻔했던 거고.
'지금 들어가면 여유 있게 저녁 준비를 할 수 있을 텐데', '개미는 매일 있는 건데 왜 저걸 저렇게까지 열심히 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오늘 하루만큼은 내려놓아 보기로 했다. 해야 할 것이 없는 아이의 시간에 맞춰서, 나도 뒤에 할 걸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하루 정도는 뭐, 괜찮겠지.
뒤에 해야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자, 둘째와의 시간이 갑자기 확 늘어난 것 같았다. 온전히 한번 둘째의 본능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핸드폰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너에게 나를 맡길게, 어디 한번 니 뜻대로 세상을 탐색해보거라.
둘째는 그 이후로도 한참을 개미 구경에 몰두했다. 개미박사급으로 한 시간 가깝게 개미를 관찰하더니, 개미 구경이 조금 지겨워졌는지 그다음에는 근처에 있는 흙도 한번 팠다. 손으로도 만져보고, 먹어보려고 할 때는 급히 제지했다. 떨어진 나뭇잎을 뱅글뱅글 돌렸다가 던져보고, 경계석에도 엉덩이를 주춤주춤 올렸다가 뛰기를 무한대로 반복했다. '지겹지도 않나' 생각이 드는 순간, 첫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저녁 준비는 완벽히 실패했다. "얘들아, 오늘 집에 저녁 먹을 게 없는데, 김밥 어때?" "좋아!" 집 앞에서 김밥을 포장해 와서, 벤치에 앉아서 주섬주섬 먹었다. 아이들은, 너무 당연하게도, 집에서 매일 먹는 밥보다 훨씬 좋아라 했다. 왠지 조금 서운하면서도, 나도 가끔 어릴 때 시켜 먹는 밥을 참 좋아했었지, 웃음이 나왔다.
그날 이후로 나는 가끔씩은 아이들이 하자는 대로 내 몸을 맡겨본다. 아무 때나 간식이 먹고 싶다고 하면 "그래. 대신 엄마한테는 비밀~" 하기도 하고, 대신 밥을 좀 덜 퍼준다. '저런 거 손으로 잡으면 더러운데..' 하다가도, '저 나이 때나 저런 거 만져보겠지.' 하며 고개를 다른 데로 돌려본다. 안 본 눈 삽니다.
단지 내 이웃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지나가며 마주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워놓은 분들은 내게 꼭 이렇게 말한다. '다 키워놓고 나니까, 아이들이 어릴 때, 내 손을 잡고 싶어 할 때가 가장 그립다'라고.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뜨끔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왜 이렇게 내 말을 안 들을까. 나를 왜 이렇게 힘들게 할까' 하며 푸념하고, 원망했는데.
육아는 나만 모든 걸 쏟고 아무것도 돌려받지 못하는 건 아닌 것 같다. 힘들 때도 있지만, 아이들은 내게 사실은 많은 걸 알려주고 있다고, 그 순간을 부디 당연한 공기처럼 흘려보내는 아빠가 되지 않기 위해 오늘도 나를 다잡아 본다. 어떨 때 보면 애들이 어른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