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 사람들의 온기
"냉탕, 왜 이렇게 미지근해?"
"샤워기 찬물도 안 나와."
"냉각기가 고장 났대요. 부품이 오래돼서 구하는 중이라네요."
"아이고, 수리는 또 얼마나 걸릴려나."
지난주엔 습식사우나가 말썽이더니, 이번엔 냉탕 차례다. 지어진 지 20년, 건물 곳곳이 조금씩 아프다. 그것도 자주.
"지난번 신발장 수리도 대충 때워놨던데."
"그러니 회원이 자꾸 줄지."
"그래도 여기만 한 데가 어디 있어. 걷기 레인이랑 자유수영, 시간도 자유롭고 사람도 많지 않잖아."
"맞아요, 저는 여기 없어지면 안 돼요."
"그래, 우리가 아껴 써야지."
결론은 늘 같다. 시설 보수를 제때 안 해주는 센터에 불만은 쌓이지만, 아쉬운 쪽이 우물을 판다고—결국 우리가 조심히, 아끼며 쓰자는 것.
불평은 쌓여도, 발길은 끊기지 않는다.
"어머, 걸음이 왜 그러세요?"
"지난주 안보이시더니, 어디 편찮으세요?"
"응, 발을 다쳤어."
"어쩐지 레인에서 안 보이시더라니. 아유, 불편해서 어째요."
걷기 레인 왕언니가 절뚝이며 들어오셨다. 선반을 정리하다 박스를 엄지발가락에 떨어뜨려 골절됐다고 하셨다. 며칠은 걷지도 못하다가 이제야 겨우 발을 디딜 수 있다며, "당분간 물속 걷기도 못 해. 답답해서 씻으러만 왔어" 하셨다.
골절엔 어느 병원 누구 의사가 낫다, 이 음식을 챙겨 드셔야 한다, 반찬을 가져다주겠다—순식간에 사우나 공기가 바뀌었다. 시설 불평으로 잔뜩 꼈던 먹구름이 걷히고, 그 자리에 온기를 품은 솜사탕이 내려앉았다.
시설 자체로만 이 공간을 채점한다면, 백 점짜리 수영장이 세상에 몇 개나 될까.
백희성의 건축 팩션 『빛이 이끄는 곳으로』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건축가가 조금 부족한 공간을 만들면, 그곳에 사는 사람이 나머지를 추억과 사랑으로 채운다는 겁니다. 그때 비로소 건축이 완성됩니다." _ p.330, 백희성, 『빛이 이끄는 곳으로』
결국 공간을 완성하는 건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아무리 완벽한 공간도 시간이 흐르면 손볼 곳이 생기기 마련이다. 고장 난 냉각기, 대충 때운 신발장, 언젠가는 또 다른 무언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부족함이 우리를 더 친밀하게 만든다. 냉탕이 미지근해서 나누는 잡담, 왕언니의 다친 발을 걱정하며 건네는 반찬 한 접시 — 그런 사소한 순간들이 쌓여, 그저 그런 낡은 건물을 매일 찾고 싶은 애정하는 곳으로 변화시킨다.
오늘따라 유독 왕언니가 사우나를 오래 즐기셨다. 통증에 발을 잘 디디지 못하시면서도 굳이 씻으러 나오신 이유를, 알 것 같다. 이곳에 오면 안부를 묻고 나눌 얼굴들이 있으니까.
미지근한 냉탕도, 대충 때운 신발장도 언젠가는 고쳐지겠지. 하지만 그 틈을 메우는 건 언제나 사람일 것이다. 오늘도 나는 그 온기 속으로 발을 들인다.
[헤엄치듯 읽는 법]
낡은 수영장의 불편함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지만, 회원들의 정이 그 공백을 채운다. 건축가 백희성의 문장처럼 공간은 부족함을 사람의 마음이 메울 때 비로소 완성된다. 왕언니의 다친 발을 함께 걱정하는 사우나의 풍경은, 오늘도 이곳이 여전히 따뜻한 이유를 보여준다.
#수영 #수영일상 #수영에세이 #일상에세이 #독서 #독서일상 #헤엄치며읽다 #백희성 #빛이이끄는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