괄사 다섯 개가 불러온 소동
지난 설 연휴가 끝나고 열탕에 바구니 두 개가 놓였다. 괄사 다섯 개와 크기별 실리콘 부항. 누가 두고 갔는지 묻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얼른 하나를 집어 들었다.
반신욕을 하며 얼굴을 문질렀다. 팔자 주름이 펴지기를. 처진 턱살이 올라가기를. 흘러내리던 살이 잠시 쫀득해진 듯한 착각이 들 무렵, 왕언니가 탕으로 들어오셨다.
"괄사 몇 개 남았어?"
"두 개요."
"아니, 사람들이 대체 왜들 그래?"
"왜요?"
"지난주에 다섯 개 사다 놨대. 근데 바로 다음 날 세 개가 없어졌더라고."
그제야 알았다. 파우더룸 한쪽에 놓인 작은 상자의 정체를.
"작은 정성을 모금합니다."
명절이면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만 원씩 모아 청소하시는 여사님들께 마음을 전한다고 했다. 센터를 오래 다니신 어르신들이 알음알음 걷어온 일이라 삼 년째 이용하면서도 그런 일이 있는 줄 몰랐다. 설에 모인 돈은 백만 원. 여자 사우나 여사님 세 분께 십오만 원씩, 남자 탕을 맡으신 두 분께 십만 원씩 드렸다고 한다. 안내 데스크와 사무실에는 커피 쿠폰을 돌리고, 남은 돈으로 탕에서 함께 쓸 물건을 샀다고 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른 채 얼굴에 문지르던 그 괄사가, 바로 그 돈이었다.
수업을 듣는 사람들은 또 따로 떡값을 드린다는 말도 들었다. 수영, 요가, 라인 댄스. 물론 자발적으로.
문득 A 왕언니가 떠올랐다. 그분은 세 수업을 모두 들으신다. 그럼 이걸 다 내시는 걸까.
작은 정성이라지만 이것저것 배우는 사람에게는 꽤 묵직한 정성이 되지 않을까.
며칠 동안 생각이 쉽게 떠나지 않았다. 그사이에도 괄사는 계속 줄었다.
"두 개 남았던 거, 또 없어진 거 알아? 이제 하나래."
"대체 누가 가져가는 거야?"
"그러게, 애초부터 잘못이었어. 여사님 드릴 돈을 걷어놓고 왜 공동 물품을 사냐고."
"솔직히 탕에 안 들어가는 사람도 많아. 돈이 애매하게 남는 게 어딨어. 만 원이라도 더 드렸어야지."
"돈 걷고, 물건 사고, 정산하고. 내가 한가해서 이걸 하는 것도 아닌데 다들 말이 너무 많네. 추석에는 내가 돈 안걷는다!"
추석을 앞두고 결국 언성이 높아졌다. 결론은 이렇다. 이번에도 감사의 마음을 모으되, 각자 알아서 모금함에 넣고 이름을 적기로.
어른들이 왜 이렇게 다투실까. 조금 마음에 차지 않아도 수고한 이를 위해 좋게 넘어가면 안 되는 걸까.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이야기꾼 할머니 윤혜연 작가는 《제법 쓸 만한 인생》에서 동전 내기 골프를 두고 다투던 동네 언니들을 떠올린다. 그때는 그깟 동전이 뭐라고 저러시나 싶었는데, 그 언니들보다 열 살을 더 먹고서야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고 한다. 자식들은 제 갈 길로 떠나고, 마음 쓸 일이라고는 그 내기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나이 들어 도로 어린애가 되어서일 것이다." _ p.130, 윤혜연, 《제법 쓸 만한 인생》
어린애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뒤집어 말하면,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 수 있다는 건 아직 마음 쓸 곳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괄사 한 개를 두고 높아진 목소리 안에는 여사님들께 제대로 드리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섞여 있었다. 다툰 것은 물건이었지만, 다투게 만든 것은 마음이었다.
"물 온도 괜찮아요? 물 좀 넘겨드릴까요?"
"수건 정리하고 오니 머리카락이 많이 떨어졌네요. 잠시만요, 부직포로 밀게요."
"여기 소독한 빗 있어요. 이거 써요."
"필요한 거 없어요?"
오늘도 여사님은 종종걸음을 멈추지 않으신다.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지갑을 들고 다니지 않아 모금함을 그냥 지나치며 다짐한다.
— 내일은 박카스랑 만 원을 챙겨 와야지.
강습반과 GX반 떡값이 옳은지 그른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다만 내 몫의 만 원이 여사님의 종종걸음을 잠시라도 늦출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 싶다.
박카스는 여사님께, 만 원은 모금함에.
[헤엄치듯 읽는 법]
고마움을 함께 모으는 일이 왜 이토록 시끄러워지는지, 수영장 모금함 앞에서 들여다본다. 다툰 것은 물건이었지만 다투게 만든 것은 마음이었다. 내일은 박카스 한 병을 챙겨 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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