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 ㅡ 오만과 편견>
얼마 전 지인과 문자로 건강 이야기를 나누다가 당혹스러운 일을 겪었습니다. 비타민을 이것저것 챙겨 먹으며 건강을 잘 관리한다기에, 평소 그런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터라 "너랑 같이 살면 건강해지겠다"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좋은 뜻으로 건넨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은 뜻밖이었습니다. 비꼬는 것이냐는 핀잔이었습니다.
황당했습니다. 오해를 받았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왜 내가 먼저 그 뜻을 해명해야 하는지, 그 자체가 선뜻 납득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해명을 하려다가 멈췄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렇게 쓸 게 아니라 좋은 조언 고맙다고 표현했어야 했다"는 문자가 왔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다만 친하다고 생각해서 건넨 말이었는데, 표현의 방식까지 바로잡는 듯한 답장은 오히려 더 낯설었습니다. 말의 취지보다 말의 형식이 먼저 문제 되는 관계라면, 그 관계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누군가의 말을 그렇게 읽은 적은 없었을까. 좋은 뜻으로 건넨 말을 내가 먼저 꼬아서 들은 적은 없었을까. 황당함보다 그 질문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꼭 부딪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탓이 상대에게 있을 수도 있고, 내게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어긋남이 반복된다면, 그 관계를 어떻게 이어갈지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관계를 힘들게 만드는 것은 대개 한 번의 오해가 아니라, 오해가 받아들이는 방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관계가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마음에 맞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도 내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과 완전히 맞기를 기대하는 것은 애초에 무리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마음이 맞는다'는 말이 점점 더 까다로운 조건처럼 느껴집니다.
제인 오스틴은 『오만과 편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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