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에서는 누구나 가족이 된다

대기업 퇴사 후 산티아고로 떠난 숨고르기 청년의 순례길 #5

by설읽은


수비리에서 팜플로나로 가는 길은 앞선 이틀이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었던 것에 비하면 그렇게까지 어렵지는 않았다. S와 K의 뒤를 따라 걷다가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반복했다. 이 날은 앞으로 순례길을 함께 걸을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먼저 바욘에서 생장까지 같은 기차를 타고 왔던 한국인 가족과 다시 마주쳤다. 한국인 가족의 대장은 내 또래 청년 T였다. T가 앞장서서 걸으면 그 뒤로 T의 부모님과 여동생이 뒤따라 걸었다. 물론 T의 속도가 워낙 빠른 탓에 따로 걸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T는 아주 활력이 넘치는 친구였는데, 서양인 친구들이 보기에도 밝았는지 모두가 그를 만나면 에너지가 솟는다고 입을 모았다.


순례길에는 이렇게 가족 단위로 오는 순례객들도 종종 볼 수 있다. 아주 어린아이부터 연로하신 어르신까지 연령대는 아주 다양하다. 그런데, 혼자 온 순례길에서 가족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순례길에서 싹트는 로맨스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바로 까미노 패밀리를 말하는 것이다. 까미노 패밀리는 순례길에서 함께 먹고 자고 걸으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은 한 달 가까운 시간을 함께하며 가족처럼 가깝게 지내고 서로를 응원하는 사이이다. 말로만 들어서는 모두 이해할 수 없는 애틋함이 이 패밀리 안에는 있다. 한 달 넘는 시간 동안 순례길을 걷다 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그중 정말 이 사람들은 까미노 패밀리라고 부를 수 있겠다 싶은 사람들이 나타난다.


두 번째로 만난 사람들이 바로 나에게 첫 번째 까미노 패밀리를 선물해 준 미국인 V와 S였다. 그들은 모두 내 또래로 V는 여자, S는 남자였는데 놀랍게도 커플이 아닌 온라인 게임동료 사이라고 했다. 둘은 누구나 들으면 알 법한 유명한 영화를 만든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있었다. 캘리포니아 출신인 이들은 언제나 마주쳐도 어디서 왔는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운 바이브가 넘쳤다. 미국인답게 낯선 사람과도 곧잘 말을 나누는 성격이어서 나의 첫 번째 까미노 패밀리를 모으는 데에 큰 기여를 했다.


이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K와 호주인 B와 다시 마주쳤다. 우리들은 밑으로 시냇물이 흐르는 다리 위에서 잠깐 쉬었다. 이때 재미있었던 것은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서 보여주며 우리 일행 중에 물건 잃어버린 사람은 없는지 찾아주려 했다. 문득 어제 S가 바지를 되찾았던 일이 생각났다. 어제 S가 바지를 되찾은 것이 우연은 아니었나 보다.


다시 길을 나서서 걷다 보니 이전보다는 훨씬 큰 다리가 나타났다. 다리를 건너니 이전 마을들과는 달리 건물들이 줄지어 서있었고, 팜플로나에 도착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그렇게 시내라고 생각하는 곳을 한 시간은 족히 걷고 나서야 팜플로나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팜플로나 공립 알베르게는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의 하위호환 버전이었는데, 한 공간에 2층 침대로 모여 자는 것은 똑같았지만, 모든 공간이 오픈되어 있었고, 침대 질도 그리 좋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화장실 변기 커버가 없어서 여기서 어떻게 일을 볼 수 있는지 의아했다.


나는 이날 침대 2층에 배정을 받았다. 며칠을 연속으로 걷다 보니 발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단순히 오래 걸어서 발이 부은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이 여행에서의 가장 큰 착각이었다. 이번 순례길은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여정이 아니어서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했다. 신발도 그렇게 해서 집에 있던 등산화를 가져오게 되었는데, 여행을 떠나기 전날에서야 신발 사이즈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이미 한국에서부터 신발이 발에 꽉 맞는 정도였는데, 며칠을 쉴 새 없이 걷다 보니 발이 부어올랐고, 신발끈을 전부 풀어야만 신발을 벗고 신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도 걸으면 걸을 수 있어서 S와 함께 공립 알베르게 바로 앞에 위치한 팜플로나 대성당으로 향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저 멀리 입구 반대편에서 중년 부부가 우리를 불렀다. 그들은 어제저녁 식당에서 보았던 한국인 부부였다. 내 옆자리에서 식사하던 프랑스인들과 반갑게 인사하며 대화 나누던 것을 멀리서 보았었다. 그런데 그들이 한국인인 줄은 알지 못했다. 이 분들은 알베르게를 예약했는데 5시에 체크인이 가능하다는 안내를 받았고, 숙소 위치가 대성당으로 찍힌다면서 그때까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도움을 청하신 것이었다. 그런데, 숙소 이름을 보니 S와 내가 묵는 공립 알베르게였고, 뭔가 착오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우리는 알베르게 위치가 이곳이 아니라 대성당 앞에 한 블록 지나서 나오는 골목이라고 안내드렸다. 중년부부는 고맙다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중년 부부의 흐뭇한 미소를 보면 괜히 부모님이 생각나 마음이 따뜻해지곤 하는데, 그분들이 미소가 딱 그랬다. 이후로도 이 분들은 며칠 동안 순례길을 함께 했는데 그때마다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셨다.


팜플로나 대성당은 내가 순례길 여정 중에 방문했던 성당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다. 웅장함은 산티아고 대성당에 뒤질지 몰라도 그 안에 아름다운 장식들을 볼 수 있다는 점과 순례길에서 처음 방문한 대성당이라는 점에서는 의미가 남달랐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예배당이 나오고 성당 안에 숨겨진 문을 열면 정원으로 나가는 문이 나오는데, 이 중정을 따라 걷다 보면 이런저런 공간으로 들어가는 문이 나타난다. 하나씩 문을 열고 들어가다 보면 한 시간은 족히 지날 만큼 다양한 볼거리들이 있다. 팜플로나에서 묵는 순례객이 있다면 다른 성당은 지나쳐가더라도 이곳에서만큼은 대성당에 방문하기를 추천한다.


S가 데카트론에 간다기에 K와 함께 숙소에 짐을 풀고 셋이서 데카트론에 향했다. 옷부터 시작해서 등산 장비나 전문적인 기구들까지 다양한 제품들이 있었다. 나는 이미 한국에서부터 노트북을 챙겨 온 탓에 13KG에 육박하는 배낭의 무게를 짊어져야 했기에 새로운 물건을 사지 않기로 했다. 이때 신발을 새로 샀었어야 했는데, 발이 부은 것이 신발 때문인 것을 알지 못했던 탓에 어리석은 결정을 내렸다.


숙소에 돌아오는 길에 함께 광장에서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서 쉬다 보니 점점 통증이 심해졌다. 이제는 아예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절뚝거리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송곳으로 후비는 듯한 통증이 발목을 덮쳤다. 순례길에서 몇 번 경험할 수 없는 대도시이기도 하고, 상태가 좋지 않아 하루를 더 쉬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S와 K에게는 하루 더 머물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내일 인사를 하지 않고 먼저 떠나라는 말을 남기고 잠을 청했다.

월, 수, 금 연재
이전 05화순례길에서는 결국 주인을 찾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