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에서는 결국 주인을 찾아간다

대기업 퇴사 후 산티아고로 떠난 숨 고르기 청년의 순례길 #4

by설읽은

아직 시차적응이 되지 않은 탓일까, 새벽 5시에 번쩍하고 눈을 떴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직 일어난 사람은 없어 보였다. 나는 조용히 침대에서 내려와 1층으로 갔다. 어제 미리 자판기에서 산 파스타를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먹었다. 이 날까지만 하더라도 이렇게 하는 것이 맞나 모든 행동들이 조심스러웠다. 라운지를 이용해도 되는 것인지, 아침은 원래 다들 먹고 출발하는 것인지, 순례길에서는 다들 어떻게 하는지 하나도 알아본 것이 없어서 매사에 자신이 없었다. 사실은 아무것도 정해진 규칙은 없는 곳이 바로 순례길인데 말이다.


아침을 먹고 다시 침실로 올라오니 어느새 사람들이 하나둘씩 일어나서 짐을 싸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6시부터 아름다운 성가가 알람으로 알베르게 전체에 울려 퍼졌다고 한다. 너무 잔잔하고 성스러워서 헛것을 들었다고 생각해서 놓친 것인지, 아니면 귀가 먹었던 것인지 아쉽게도 나는 성가를 듣지 못했다. 사람들보다 먼저 빠르게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잽싸게 어제 널어놓은 빨래를 가방에 넣고 밖으로 나왔다.


마침 2층 침대 위에서 자고 있던 S가 따라 나왔다. 7시가 되지 않은 탓에 후레시를 켜고 깜깜한 숲길을 따라 걸었다. 길을 걷는 중에 S는 어제 있었던 신기한 일을 내게 이야기해 주었다.


첫날 생장에서 묵었던 알베르게에서 새벽에 나오는 바람에 어두워 잠옷 바지를 침대에 걸어두고 챙기는 것을 깜빡했다는 것이었다. 바지를 두벌밖에 챙기지 않아서 잠옷 바지가 없으면 숲길을 걸었던 더러운 바지를 입고 그대로 침대에서 자야 하는 탓에 걱정된다며 어제 얘기했던 것이 생각이 났다. 그런데 어제 체크인을 하고 모르는 사람이 다가와서 혹시 이 바지가 네 것이 아니냐고 건네주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은 생장에서 자기 옆 침대에서 잤던 사람이고 누군가 바지를 침대에 놓고 가서 혹시 몰라 그것을 챙겼다고 한다. 덕분에 어제 샤워하고 깨끗한 옷을 입고 잘 수 있어서 운이 좋다고 나에게 자랑하듯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순례길에서는 무거운 가방의 짐을 덜기도 바쁜데, 어떻게 다른 사람이 잃어버린 것인지, 버린 것인지도 알 수 없는 물건을 챙겨서 찾아줄 수 있을까 하며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후로도 순례길을 걷다 보면, 모자나 장갑 등 이런저런 물건들이 길 위에 종종 떨어져 있었는데, 순례자들이 가면서 줍고는 다음 마을에서 혹시 주인이 있는지 찾는 것을 목격하곤 했었다.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점점 해가 떠오르면서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슬슬 아침이 먹고 싶었는데, 문을 연 바르가 없었다. S와 나는 언덕 내려가는 길에 보이는 벤치에 앉아 음료와 과자를 먹으며 아침을 때웠다.


두 세 사람이 우리를 지나쳐가기 시작할 때쯤 다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우리 앞에 작은 키의 백인 여자와 그와는 대비되는 큰 키의 남자가 보였다. 언뜻 보기에도 북유럽에서 온 것 같은 외모였다. 여자는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성큼성큼 걸음을 내디뎌 남자와 보폭을 유지했다. 오르막에서 뒤처질 법도 한데 속도를 유지하고 올라가더니 그대로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한번 말이라도 걸어보려고 했더니.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다 보니 어느새 산을 넘고 있었다. 사실 지도를 보기 전까지는 이게 산인지, 언덕인지 알 수가 없다. 초반만 하더라도 핸드폰 지도를 거의 보지 않고 걸었기 때문에 그냥 걷기만 했다. 얼마나 가파른지도,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르는 채 걷다 보니 지루하기도 했었다. 무엇보다 내가 이 길을 왜 걷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멈추질 않았다. 내가 스스로 택한 길이고, 내가 직접 표를 끊고 왔는데 정작 도착해 보니 비싼 돈을 내고 왜 여기까지 와서 고생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고 스스로를 원망하는 마음이 계속 올라왔다.


다행인 것은 어제만큼 코스가 그리 길지는 않았던 탓인지 코스 중반쯤 먼저 가겠다고 떠난 S로부터 마을에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S의 속도를 생각해 보면 얼추 한 시간 정도면 목적지 마을인 수비리에 도착할 것이다. 힘을 내보려고 하는데, 내리막이 아주 가팔랐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미끄러운 내리막을 걷다 보니 계속 미끄러지는 탓에 중심을 잡느라 애를 먹었다. 아침 먹을 때 앞서갔던 호주인 아저씨 D도 저 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호주인 아저씨에게 멀리 소리쳐 인사하려는데 우우웅 하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자마자 거대한 물체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놀라 옆으로 살짝 비키고 정신을 차려보니 전기자전거인지, 오토바이인지 모를 바이크를 탄 사람 다섯 정도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내리막이 여간 가파른 것이 아니었는데 목숨을 여러 개 달고 사는 것인지 브레이크도 없이 그대로 전력질주를 했다. 저 아래 잠시 평평한 구간에 멈춰 서더니 도파민이 온몸에 돈 듯 소리 지르고 난리들이 났다. 내 앞에 걷던 호주인 아저씨는 순례객들이 걷는 내리막길에서 위험하게 브레이크도 없이 내려간 그들을 보고 화가 난 모양이었다. 한참을 내려가지 않고 서있더니 뭐라고 구시렁거렸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아주 가끔 이렇게 정신없이 질주하는 바이크를 볼 수 있었는데, 차도도 아니고 사람 하나 다니기도 좁은 산길에 왜 저렇게 목숨 내놓고 다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다른 무리가 내려오지는 않을까 이어폰을 빼고 내려가다 보니 역시나 또 한 무리가 우르르 내려온다. 마을에 도착해서 보니 아마 같은 일행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걷다 보니 어느새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에는 시냇물이 흐르고 다리로 건너게 되어있었다. 날이 조금만 더 더웠다면 그대로 몸을 던져 몸을 식히고 싶은 아름다운 시냇가였다.


S가 먼저 도착해 공립 알베르게에서 기다리고 있다기에 그리로 갔더니 두시가 되기 전까지 체크인을 할 수 없다면서 모바일 체크인을 하라고 큐알을 보여주셨다는데 계속 오류가 난다고 했다. 나는 2시까지 기다릴 기운이 없어서 저녁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사립 알베르게로 갔다. 마을 입구에 사립 알베르게로 보이는 곳 몇 군데가 있었다. 성수기가 아니어서 그런지 알베르게 표지판을 걸어두고 문이 닫힌 곳들도 있었다. 그렇게 다리 바로 근처 마을 입구까지 가니 어제 같이 밥을 먹었던 한국인 K가 보였다.


어디나 그렇겠지만 순례길에서는 유독 아는 사람을 다시 보면 그렇게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K가 묵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시설은 따로 검색해보지도 않고 바로 들어가 체크인을 했다. 사실 한국인 K와는 어제저녁 식사를 하고 나면 다시 보게 되지 않을 줄 알고 그렇게 친근하게 대하지는 않았었다, K는 뭔가 의욕이 넘쳐 보이지 않았고 중도 하차할 것 같아 보였던 탓일까. 그러나 만날 인연은 이렇게라도 다시 만나게 되나 보다. 그리고 그렇게 K와는 첫날과 마지막날 같이 걸은 유일한 까미노 동행이 되었다.


주인아주머니는 곧 슈퍼가 문을 닫는다며 점심을 사 먹을 것이라면 빠르게 가라고 하셨다. 얼른 짐을 풀고 슈퍼를 가려고 보니 호주인 아저씨 D가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 산을 넘는 고된 일정에 피곤했는지 낮잠을 거하게 청하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조용히 방을 나와 슈퍼에 가서 점심으로 먹을 빠에야를 샀다.


빠에야를 먹고서는 힘들게 가져왔던 노트북을 가방에서 꺼냈다.


순례길에 노트북을 들고 간다니 다들 미친 것 아니냐고 했지만, 멀쩡히 잘 살고 있던 일상을 내팽개친 나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노트북을 가지고 자기소개서 한 자라도 쓰지 않으면 내 미래는 버려둔 채 도망온 사람이 된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었다. 다시 회사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짧은 시간 동안 정신이 피폐해졌기에 자기소개서가 선뜻 써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하는 척이라도 하는 것이 차라리 마음 편했다.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다 보니 두 가지 이슈가 있었다. 하나는 짐이 무거워진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몇백만 원짜리 노트북을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달고 산다는 점이다. 짐이 무거워지는 것이야 얼마든지 감수하기로 하고 가져온 것이지만, 언제든지 잃어버릴 수 있다는 불안은 순례길 초반 나를 계속해서 괴롭혔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첫날과 둘째 날 숙소는 공교롭게도 열쇠로 잠글 수 있는 라커가 모든 침대 옆에 인당 하나씩 있었다. 그래서 짐을 두고도 걱정 없이 밖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써지지도 않는 자기소개서 한 문단을 마무리하고서는 마을을 둘러볼 겸 가볍게 한 바퀴를 돌았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한국인 K와 서양인 친구가 카페테라스에 앉아 대화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차피 크게 할 것도 없는 터라 나도 슬쩍 자리에 앉았다.


알고 보니 서양인 친구는 첫날 피레네 산맥에서 마주쳤던 친구였다. 이 친구는 파릇파릇한 20대 중반에 호주인 여자아이 B였다. 이때는 가볍게 인사하고 헤어질 줄 알았는데, 이 뒤로도 거의 열흘을 같이 걷게 되었다. 이 친구는 호주에서 쓰레기 차를 운전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정확히는 쓰레기통을 운반하는 일을 했다고 하는데, 여러 번 설명해 주었지만 결국 쓰레기 관련 일을 했었다로 귀결되니 B도 설명하기를 포기했다. 경험하지 않은 것을 능숙하지 않은 언어로 이해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참을 얘기하다 보니 어느새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K와 함께 공립 알베르게에 묵고 있는 S와 7시에 만나기로 해 시간에 맞춰 만나기로 한 식당 앞으로 갔다. 주말인 탓에 마을의 모든 식당이 문을 닫고 이 식당 하나만 열려있었다. 그래서인지 한 테이블 말고는 식당이 꽉 차 있었다. 우리가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년의 서양인 세 명이 들어왔다. 남는 테이블이 없어 우리 옆에 애매하게 남은 테이블에 그들도 끼어 앉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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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에서는 괜히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말을 걸게 되는 용기가 난다. 이름이 어떻게 되는지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물었는데, 세 사람 모두 영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몇 마디를 나누다 보니 이들이 프랑스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대학교 교양수업 때 들었던 프랑스어를 떠올리며 이름과 사는 곳, 그리고 세 명이 서로 어떤 관계인지 정도를 알아낼 수 있었다. M과 P는 서로 결혼한 사이고, 파리에 살고 있다고 했다. M의 동생인 m은 파리에 살고 있지 않지만 부부가 순례길에 온다는 것을 듣고 다른 도시에서 함께 하게 되었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M과 m은 이탈리아 출신이었다. 어쩐지 이름이 이탈리아계 이름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순례길에서 얼마나 자주 똑같은 사람들을 마주치고,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을지 알지 못했다. 그냥 이렇게 인사하고 내일이면 또 헤어지지 않을까 생각했기에 가볍게 몇 마디 나누고 각자 주문한 음식을 먹었다. 이들이 여행 초반 계속 같이 걸으며 나를 응원해 주는 아군이 되어주어 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한 채 말이다. 이렇게 순례길 여정 가운데 예상치도 못한 만남들이 내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걸을 수 있도록 힘이 되어주었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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