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퇴사 후 산티아고로 떠난 숨고르기 청년의 순례길 #6
새벽 네시 반쯤 눈이 떠졌다. 이렇게까지 빨리 일어날 생각은 없었는데, 아직 시차적응을 하지 못한 건지도 모르겠다. 자고 일어나니 발목이 다시 조금은 나아진 것도 같았다. 하루 연박하고 다음 마을로 가겠다는 말과는 달리 나는 자연스럽게 다시 가방을 쌌다. 다시 체크인을 할 수 있는 점심시간까지 한참을 기다릴 곳도 마땅치 않았고, 일찍 일어나 출발하면 아무리 천천히 걸어가더라도 다음 마을까지 가는 게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가방을 싸고 잽싸게 밖으로 나오니 얼추 여섯 시가 됐다. 아직 해가 뜨기까지는 한 시간 넘게 시간이 남았다. 팜플로나는 나름 큰 도시에 속하는 편이어서 가로등이 많았다. 가로등 불빛을 따라 어두운 골목을 걷다 보니 어느새 공원으로 보이는 곳에 다다랐다. 새벽에 도시를 걷는 것은 이전의 순례길과는 달랐다. 일단 나의 시선을 빼앗는 것들이 정말 많았다. 어디를 보아야 화살표를 찾을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간신히 찾은 화살표 방향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또 화살표를 놓치고 이상한 골목에 들어가기도 했다. 한참을 가도 화살표가 나오지 않자 그제야 구글맵을 켜보니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길을 잃어버린 장소로 다시 돌아가 다시 화살표를 찾았다. 그렇게 팜플로나 안에서만 이리저리 움직이며 한 시간을 넘게 시간 보낸 것 같다.
사실 오늘 연박을 하려고 했던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용서의 언덕이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지만, 어제 코스와는 달리 오늘은 몇 시간을 언덕을 올랐다가 다시 내려가야 한다. 오르막보다 두려운 것은 내리막이었는데, 이전에도 등산을 하다가 무릎이 아파 기어가듯 하산했던 기억이 있어 하루 쉬었다가 용서의 언덕을 가야 할까 고민했었다. 그러나 퇴사도 계획하고 한 것이 아니듯 오늘 일정도 계획과 달리 멋대로 시작해 버렸다.
그렇게 용서의 언덕 초입에 도착했을 때 다시 호주인 아저씨 D를 만났다. 호주인 아저씨는 나만큼이나 아침 일찍 출발하는 선발대에 속했다. 그렇게 느린 걸음도 아닌데, 자신은 편하고 느긋하게 걷고 싶다면서 항상 아침 일찍 출발을 한다. 아저씨가 나를 지나쳐가고 한 삼십 분쯤이 흘렀을까, 슬슬 한두 명씩 앞질러 가는 사람들이 생겼다. 오늘은 나름 일찍 출발했다고 생각했는데 내 걸음이 꽤나 느리구나 새삼 깨달으며 언덕을 올랐다.
숨 가쁘게 풍차를 향해 오르다 보니 용서의 언덕 정상에 도착했다. 용서의 언덕에는 이런저런 철제 조형물들이 세워져 있었다. 바람과 비에 녹이 슨 것처럼 빛바랜 조형물들은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나는 그 조형물을 바라보며 커다란 바위 위에 앉았다.
숨 가쁘게 풍차를 향해 오르다 보니 용서의 언덕 정상에 도착했다. 용서의 언덕에는 이런저런 철제 조형물들이 세워져 있었다. 바람과 비에 녹이 슨 것처럼 빛바랜 조형물들은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나는 그 조형물을 바라보며 커다란 바위 위에 앉았다.
이곳 용서의 언덕에서는 내가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을 떠올리며 용서를 구하고, 내가 용서해야 할 사람을 떠올리며 용서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과 용서해야 할 사람들은 누구일까? 당장 생각이 바로 나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원체 성격이 모나거나 튀는 편이 아니라 누구의 원한을 살인도 잘 없을뿐더러 화가 많지도 않은 편이다. 기껏해야 생각이 나는 사람들은 2주 전 퇴사했던 그곳의 사람들이었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퇴사를 통보하기도 했다는 점에서는 내가 혹시 빌런이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드는 한편, 그렇게 나를 제정신이 아니도록 몰아세웠던 사람들이 생각이 나기도 했다. 서로가 서로를 용서해야 하는 이상한 사이는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내겐 그들을 원망하는 마음조차도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 다 각자의 사정이라는 게 있는 법이니까 말이다.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서 고민에 빠졌다.
그렇다면 내가 용서해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내 생각이 다시 한국으로 한참을 돌아가있을 때쯤 저쪽에서 S와 K가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 나보다 한 시간은 늦게 출발했다고 연락이 왔었는데, 벌써 도착했다니. 이제 오늘 목적지까지 반 밖에 오지 않았는데.
S와 K가 온 탓에 그것을 핑계 삼아 한참을 쉬고도 더 쉬었다. 이제 몸이 다시 풀려갈 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부터는 삼십 분 가까이 내리막을 걸어내려 간다. 순례길을 통틀어 기억에 남는 내리막길이다. 숲길이라고 보기도 애매하고, 공사장처럼 보이는 흙길이었는데 조금만 헛디뎌도 쉽게 미끄러지는 길이었다. 그렇게 조심해서 기어가듯 내려가는데 론세스바예스에서 만났던 호주인 할머니 J가 괜찮으냐며 인사를 건넸다. 할머니가 보기에도 내 걸음걸이가 정상은 아니었나 보다. 그럭저럭 걸을만하다면서 애써 태연한 척하려 입을 떼기도 전에 할머니는 이야기도 듣지 않고 나를 앞질러 갔다. 나를 걱정해 주는 말인 줄 알았더니 상투적인 인사말이었다니. 호주인 할머니와 항상 세트처럼 붙어 다니는 프랑스 할머니 B도 나를 금세 앞질러갔다. 둘은 60이 훌쩍 넘은 나이임에도 미끄럽지도 않은지 나보다도 더 건강한 무릎으로 힘차게 내리막을 내려갔다.
한참을 조심스럽게 내리막을 걷다 보니 어느새 평지가 나왔다. 이날 보았던 풍경은 순례길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아름다운 평야였다. 멀리 꽃밭도 보이고, 지평선 끝까지 푸른 밭은 내 눈을 깨끗이 씻어주었다. 힘들게 걷다가도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참 좋다.
그렇게 푸엔테 라 레이나 숙소에 도착을 했다. 1층에 도착해서 프런트 앞에 털썩 앉았다. 발이 조금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붓고 아파서 그 자리에서 민망한 줄도 모르고 신발을 바로 벗었다. 그리고는 체크인을 하며 내가 너무 상태가 좋지 않은데 1층을 받을 수 없겠느냐고 주인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웬만해서는 그런 요구를 하지 않는 나지만 체면이고 뭐고 중요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돌아온 것은 대답이 아니라 알 수 없는 하하하 웃음소리뿐이었다. 알고 보니 그 숙소는 선착순으로 침대를 정하는 곳이었다. 숙소에 일찍 도착한 편이 아니어서 2층 침대를 얻으면 어떻게 하나 고민을 했었는데 참 다행이었다.
그렇게 1층 침대를 차지하고 나니 어제 팜플로나 성당 앞에서 마주쳤던 중년 한국인 부부가 방으로 들어왔다. 다른 침대에는 자리가 없었는지 내 자리로 오더니 내 바로 앞 침대를 차지했다. 방에 있는 모든 1층 침대는 자리가 차고 2층 침대만 남았는지 아주머니가 2층으로 힘들게 올라가셨다. 뭔가 유교 사상 충만한 나로서는 가만히 침대에 누워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게 조금은 어색했다. 그러나 그분들께 선의를 베풀기에는 내 코가 석자였다.
잠깐 잠을 청하려는데 한국인 아저씨가 스마트폰을 잘 만지느냐면서 말을 걸어왔다. 기계치까진 아니지만 내가 뭔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게 있으려나, 싶었다. 언젠가부터 휴대폰 배터리가 빨리 닳더니 이제 방전이 됐는데 충전도 안된단다. K에게 무선 보조배터리가 있었던 게 기억이 났다. 보조배터리를 가져다 드리고 이걸로도 충전이 안되면 배터리가 고장 난 걸 거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나는 곧장 저녁을 먹으러 K와 나가 더 대화가 이어지지는 못했다.
밖으로 나가려 2층에서 계단으로 내려가는데 발 통증이 정말 심해졌다. 한 발짝을 내딛을 때마다 발 전체를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었다. 계단을 다 내려가는 데만 몇 분이 걸린 것 같다. 1층 프런트에서 주인아주머니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프랑스인 M과 P는 올랄라를 연신 내뱉으며 안쓰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때까지만 해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니 창피해 숨고만 싶었다. 빨리 사라지고 싶었지만 이놈의 발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렇게 주인아주머니와 대화가 마무리가 될 즈음에서야 나는 계단을 다 내려올 수 있었다.
식사를 하러 나간 시간은 대략 7시쯤이었다. 식당에 갔더니 식사를 하는 손님은 없었고 모두 와인을 마시는 술손님들 뿐이었다. 점원에게 식사를 하고 싶다고 하니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스페인은 식사시간을 철저히 지키는 나라 중 하나다. 순례길에서 들어간 식당 대부분이 8시부터 저녁 장사를 시작했다. 시간이 되기 전까지는 술과 간단한 안주만 판단다. 순례길 걷는 내내 스페인의 늦은 저녁 식사시간은 순례객들을 괴롭혔다. 대부분의 알베르게는 늦어도 9, 10시면 문을 잠그고 소등하는데, 8시부터 식사 주문을 하면 제시간에 숙소까지 돌아가기가 힘들었다. 그 탓에 돈을 아꼈으니 차라리 다행이었던 걸까.
식사를 다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니 낮부터 시끌벅적하던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스페인 아이들이 라운지에 북적북적했다. 인솔자로 보이는 어른은 보이지 않았고 애들끼리 요리를 하고 밥을 먹는데 같은 알베르게에 묵는 사람들이 모두 지나가며 고개를 설레 저었다. 어찌나 시끄러웠는지 내가 묵는 2층까지도 1층 라운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후로도 며칠을 이 아이들을 공립 알베르게에서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