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길을 잃지 않는 법

대기업 퇴사 후 산티아고로 떠난 숨고르기 청년의 순례길 #7

by설읽은

한 발을 내딛기도 힘들 정도로 발의 통증이 심해졌다. 하루라도 쉬어주면 좋겠건만, 하루 이틀 만나면서 친해진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이 아쉽기도 했고, 걷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것은 이대로 포기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일찍 일어나 새벽에 출발하기로 했다. 그렇게 6시가 채 되기도 전에 혼자 길을 나섰다.


푸엔테 라 레이나 다리를 건너고,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를 지나고 나니 이젠 플래시를 켜지 않고는 앞이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이다. 어두워 잘 보이진 않았지만 한쪽은 논밭처럼 보였고, 다른 한쪽은 콘크리트 벽 같은 게 보였다. 밝은 낮에 보았으면 전혀 다른 풍경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는 이 길이 맞겠지, 하는 생각만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순례길을 걸었다고 하면 어떻게 길을 찾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물론 스마트폰이 발달한 지금은 구글맵을 보기도 하고, 순례자들의 필수 앱인 까미노 닌자나 부엔까미노를 이용하기도 한다. 다만, 길을 걸으면서 계속 휴대폰을 켰다 껐다 하는 일이 번거로운 일이다. 아직 3월의 스페인은 추워서 장갑 없이 새벽에 나오기 힘들었는데 매번 지도를 보려고 장갑을 꼈다 벗었다 하기도 힘든 노릇이었다. 그렇게 지도 없이 다니려면 명확한 안내표지판이 있어야 하는데, 순례길에는 바로 화살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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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화살표는 벽에 붙어있고, 어떤 화살표는 돌멩이 위에 대강 페인트로 그려져 있다. 화살표 없이 순례길의 상징인 가리비만 바닥에 그려져 있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알베르게로 순례자들을 유혹하는 거짓 화살표도 있다. 어둠 속에도 이 화살표만 놓치지 않으면 길을 잃지 않는다. 길을 가다가 화살표가 나오지 않고 갈림길이 나올 때는 손해 보는 것 같아도 잠시 몇 발자국을 되돌아가본다. 분명 그곳에 화살표가 다시 나타난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누군가 이렇게 대놓고 화살표를 그려놓아 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정해진 길만 잘 따라간다면 길을 잃을 일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매일 이 화살표를 놓치지 않으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걷기를 한 달여 동안 계속하다 보니 깨달은 것이 하나 있었다. 모두가 각자 마음 가운데 희미하게 들리는 소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 소리만을 따라가다 보면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주변의 소음이 너무 커서 내 마음의 소리에 집중해서 귀 기울이지 않으면 내 안에는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 뿐이다. 순례길 곳곳에서 다양한 볼거리를 즐기다가도 다시 화살표를 찾고, 길로 돌아와야 하는 것처럼 때로는 달콤한 유혹도 있고, 주위의 간섭도 있지만 내 소리로 돌아와야 한다. 아무리 어두운 시간을 지나고 있다고 할지라도 아주 희미한 빛으로 우리 발 바로 앞만 조금이라도 비추면 희미하게나마 화살표가 우리를 안내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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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보니 저 멀리 마을이 하나 보였다. 언덕 위 아침햇살이 곱게 내리쬐는 걸 보자니 천성을 향해가는 기분이 들었다. 넓고 푸른 초원을 가로질러 밝게 빛나는 마을을 향해 걸어가는 기분은 순례길 아침 중에서도 가장 잊히지 않는 순간이었다. 이 날 또 한편 지금 이 시간에 지나지 않은 다른 사람들은 이걸 보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그들의 순례길을 동일하게 경험할 수 없고, 그들 또한 내가 느끼는 기쁨과 슬픔, 깨달음을 온전히 경험할 수 없다. 그렇기에 순례길을 오고 또 오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은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날은 에스테야로 향하는 날이었다. 한 발을 떼면 발이 부러질 것처럼 아프다가도 한 5분 정도 걷다 보면 익숙해져서 또 걸음을 이어나가기를 몇 시간 하다 보니 어느새 에스테야에 도착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바로 옆 2층 침대에 프랑스인 P와 M이 마침 자리해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는 절뚝대며 2층침대에 올라가려 몸을 움직였다. 부자연스러운 내 움직임을 보더니 P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발목이 너무 부어 아파서 그렇다는 말을 하자 P는 가방에서 바르는 약을 꺼내 건네주었다. 자신들은 괜찮다면서 쓰고 싶은 만큼 쓰라고 했다. 그들은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해 프랑스어로 계속 말을 걸어왔는데, 내가 아는 프랑스어 단어 10개 내외를 조합해서 용케 이해했다.


침실에서 나와 1층 라운지로 내려가니 어제 같이 숙소에서 묵었던 한국인 중년 부부가 보였다. 맛있는 와인을 준비했다며 한국인 동행들을 모두 모아달라고 했다. 각자 씻고 쉬고 있던 S와 K를 불러 라운지에서 와인 한 모금씩 하며 각자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어떤 사연으로 순례길에 오게 되었는지, 원래 한국에서는 어떤 일을 했는지 등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타인이라는 경계심의 벽이 금세 무너져 내렸다. 아저씨는 잠시 와인을 마시라고 하고는 방에 올라가 다시 약상자를 가져오셨다. 그리고는 가지고 있는 소염진통제 전체를 나에게 주셨다. 내가 너무 과하다며, 한알만 감사히 받겠다고 하자, 기어이 내 손에 약 한통을 다 쥐어주셨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에게 감사할 필요는 없어요. 이 받은 나눔을 순례길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길 바라요."


아저씨의 이 대답은 순례길을 걷는 내내 나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무리 본인이 당장 아프다고 하지 않더라도, 순례객에게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약을 전부 다 내어주는 것은 별 것 아니면서도 꽤나 별것인 일이다. 이런 선의가 순례길이 수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유지되도록 만들어주는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두 분은 에스테야의 분위기를 더 즐기고 싶다며 다음날 에어비앤비를 예약하셨고, 하루 더 머물기로 하셨단다. 만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고, 길게 대화를 나눈 것도 오늘이 처음이었는데 함께 마신 와인이 고별주가 되어버렸다. 순례길에서는 얼마 함께 하지 않아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있다. 이 두 분의 응원과 미소는 마치 부모님이 나와 함께 순례길을 걷고 있는 것과 같은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다. 내가 조금 더 어른이 되어 순례길에 다시 한번 돌아온다면 그때 나도 저런 어른이 되고 싶다,



중년 부부와의 이야기를 나누고는 S, K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왔다. 어제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 저녁에 다리를 보러 셋이서 나왔다가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다른 알베르게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마침 S가 그 사람과 에스테야로 오는 길에서 마주쳤고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고 한다. 일주일 가까이 걷는 동안 한국인을 4명밖에 만나지 못한 것이 의아하다고 모두 여기던 차에 또 다른 한국인을 만나게 되어 참 반갑다는 생각에 그를 저녁식사에 초대하게 된 것이다. 한 시간 남짓 저녁식사를 하고 알베르게 잠글 시간에 맞추어 빠르게 숙소로 복귀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아직 중년 부부가 라운지에서 남은 와인을 마시고 계셨다. 다시 한번 순례길에서 뵐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인사말과 함께 각자 잠을 청하러 2층 침실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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