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퇴사 후 산티아고로 떠난 숨고르기 청년의 순례길 #3
알람이 울리기도 전 새벽에 눈이 떠졌다. 다시 잠에 들기는 애매하지만 그렇다고 일어나서 출발할 만한 시간도 아니어서 뒤척이다 보니 어느새 새벽 5시가 되었다.
한 방에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같이 자고 있다 보니 조그마한 소리에도 눈치가 보여 결국에는 가볍게 짐을 싸고 방 밖으로 나왔다. 순례길은 어떤 식으로 굴러가는 시스템인지 알지 못해 일단 알베르게 식탁에 앉아 간단한 아침거리를 먹으면서 오늘 일정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발카로스 코스로 가는 한국인은 많지 않은지 검색해도 원하는 정보를 찾기는 어려웠다. 어차피 가다 보면 어떻게 되겠지 라는 생각에 검색을 멈추었다. 애초에 순례길을 오기로 마음먹은 것도 즉흥적이었고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온 것이었다. 늘 걱정과 염려에 아무 일도 시작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개조해 보고자 온 것도 있으니 길을 잃더라도 일단 가보자 라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아침밥을 다 먹어갈 즈음되니 어제 인사했던 S가 일어났는지 짐을 들고 방에서 나왔다. 6시가 됐지만 아직 밖은 깜깜했고, 순례길에서 길은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오늘은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도 잘 모르는 탓에 같이 출발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렇게 여섯 시 반이 되었을 때쯤 알베르게에서 나와 순례길을 시작했다.
대충 순례길처럼 보이는 메인도로를 따라가다 보니 갈림길이 나왔고, 발카로스 길인 것 같은 길을 따라 걸어갔다. 두 시간 정도를 걸어가니 작은 마을이 나왔고,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가자는 말에 작은 바르에 들렀다. 순례길에서 순례객이 가장 많이 먹는 토스트와 카페콘레체를 시켰다. 평소 커피를 즐기지 않지만 이 날만큼은 나답지 않은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 뒤로 시끄럽게 떠드는 스페인 TV소리를 뒤로 한채 서로 어떻게 순례길에 오게 되었는지를 나누었다. S는 나와 마찬가지로 다니던 온라인 게임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 이전부터 오고 싶었던 순례길을 왔다고 했다. 역시 한국인은 이렇게 먼 곳까지 오려면 일을 쉬거나, 그만두지 않고서는 힘든 모양이다.
그렇게 한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하면서 쉬다가 다시 일어나 정상을 향해 걸었다. 바르에서 쉬고 난 이후로는 거의 오르막길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생각보다 걸을만해서 아직 내 체력이 그리 나쁘지는 않구나 생각을 했는데, 오르막길이 계속되다 보니 어느 순간 속도가 많이 느려진 것을 알았다.
S는 나와 달리 기운이 팔팔해 보였다. 출발한 지 그렇게 오래된 것도 아닐뿐더러, 이제 겨우 첫날인데 이렇게 헉헉대는 나 자신을 보고 있자니 스스로가 너무 한심했다. 그렇지만 더 이상 빠르게 올라갈 힘이 없어 S에게는 먼저 올라가라고 하고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S는 한참을 나의 페이스에 맞춰 걷더니 내가 계속해서 뒤처지자 정상에 다다를 즈음 먼저 걸어갔고,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다.
S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니 빠르게 올라갈 동기를 잃었는지 그대로 눈앞에 보이는 바위에 앉아버렸다. 어디까지 왔는지 시간으로만 대강 짐작할 뿐이어서 더 지쳤다. 첫날이라 까미노 앱도 볼 줄 몰랐고, 구글맵으로도 지금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쯤이면 삼십 분에서 한 시간 이내로 정상에 도착하겠다고 추측만 할 뿐이었다.
바위에서 잠시 쉬고 있으니 저 아래에서 한국인 두 명이 올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꽤나 멀리에서 올라오고 있다고 느꼈는데 몇 초 지나지 않아 금세 가까이까지 다가왔다. 한국인이라면 필시 다른 한국인을 보고 한국인이세요? 라며 말을 걸어올 터. 나는 너무 지친 상태에서 그런 인사를 받아줄 기력조차 없었다. 차라리 그들을 피해 빨리 올라가서 쉬어야지 하는 생각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내 코앞까지 왔지만 나는 못 본 척 앞만 보며 산을 올라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이들은 나와 마지막까지 함께 걷게 될 한국인 동행 K 그리고 순례길 초반 삼분의 일을 함께한 호주인 친구 B였다.
그렇게 삼십 분, 아니 한 시간쯤 올라갔을까 작은 교회로 보이는 건물이 보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늘의 목적지인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가 멀리서 보이기 시작했다. 어제 묵었던 생장 알베르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컸다. 마치 중세시대 성에 온 것처럼 건물은 높게 솟아있었다.
체크인을 하러 건물로 들어가니 자원봉사자 할머니 할아버지 서너 명이 나를 반겨주었다. 수고했다면서 얼른 가방부터 앞에 벗어놓으라고 내가 가방을 대신 받아주었다. 순례길이 처음이라 그런 환대가 어색했던 탓에 혹시 자원봉사자가 아니고 소매치기는 아닐까 경계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참으로 웃긴 일이다.
체크인을 마치고 나니 기다렸다는 듯이 자원봉사자 한 명이 나를 침대까지 안내해 주었다. 짐을 풀고 손빨래를 하러 내려가니 세탁실에도 자원봉사자들이 많이 있었다. 이들은 네덜란드에서 온 사람들이며 순례길 봉사를 위해 한 단체에서 다 같이 온 사람들이라고 했다. 우리를 맞아주고 대화하는 그들의 눈빛은 설렘과 기쁨으로 가득 차보였다. 매일 수십, 수백 명의 순례객을 맞이할 텐데 지치지 않고 순례객을 기쁨으로 맞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조금씩 순례길에 대한 기대가 커져갔다.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는 한 달 조금 넘는 순례길 일정 중 가장 최신식이고 깔끔한 숙소였다. 이건 내가 만났던 모든 순례객들이 입을 모아 공감하는 이야기였다. 마치 일본 캡슐호텔처럼 침대 4개마다 칸막이로 막혀있기도 했고, 바로 옆에 개인별 사물함도 최신식으로 붙어있었다. 정말 시설이 좋다고 생각하며 잠시 침대에 앉아 쉬고 있었다.
어제 생장 오는 길에 한국인 가족에게 먼저 말을 건네지 못했던 게 못내 마음에 걸려 오늘은 한번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건네볼까 생각이 들었다. 바로 마주 보고 있는 침대에 앉아있는 순례객에게 먼저 인사를 했다. 이 순례자는 앞으로 아침마다 함께 걷게 될 호주인 아저씨 D였다. 호주에서 까미노에 관한 영화가 히트 쳤었는데, 자신도 그 영화를 보고 감명받아 이곳에 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중 또 다른 호주인 할머니 J가 우리 자리로 왔다. 프랑스까지는 잘 작동하던 이심이 국경을 넘자마자 작동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리저리 만져보았지만 결국 고치지 못했다. 이렇게 쉽지 않은 순례길을 할머니가 혼자 걷고 있다는 게 참 대단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J의 말에서는 품위가 묻어 나왔는데 알고 보니 교장선생님으로 일하다가 은퇴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단다. 그렇게 일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여느 노인들이 그렇듯 자식자랑을 길게 늘어놓았다. 이렇게 한참 대화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론세스바예스에서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순례자 식사였다. 론세스바예스는 공립알베르게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찾아보니 한두 개 사립 알베르게는 더 있는 것 같다.) 말 그대로 정류장처럼 거쳐만 가는 마을이기에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 공립 알베르게에서 제공하는 식당뿐이었다. 식사 시간에 맞춰 S와 함께 식당으로 가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8명쯤 앉을 수 있는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아 식사를 시작했고, 이제 막 애피타이저 메뉴를 먹기 시작한 마지막 테이블에 두 자리가 남아있었다.
우리 테이블에는 독일에서 온 친구 3명과 어제 생장 알베르게에서 내 침대 아래층을 썼던 미국인 청년 J 그리고 한국인 친구 K가 먼저 자리했다. 피곤했던 탓에 제대로 얼굴을 보지 않아 기억이 가물가물했는데, 대화를 하다 보니 아까 산에 오르면서 마지막 보았던 한국인이었다. 어제 공립 알베르게에서도 한국인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생각보다 오는 길에 한국인이 없어서 의아했다고 말을 건넸더니, 자신은 알베르게에 자리가 없을까 봐 내일 숙소까지는 다 예약을 해둔 상태고, 그래서 예약을 할 수 없는 공립 알베르게가 아닌 사립 알베르게에서 어제 잠을 청했다고 했다.
이때만 해도 이렇게 먼 곳까지 와서 한국인과 친목을 도모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 대화를 길게 이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K와는 간단한 이야기만 주고받다가 식사를 마무리했다. 식사를 하고 나오니 어느새 밖은 깜깜하게 어두워져 있었다. 독일인 친구들과 미국인 J는 술을 더 마시다 자겠다며 같이 마시겠느냐고 물었지만, 원체 술을 마시지 않기도 하거니와 다음날을 위해 거절하고 방으로 올라와 일찍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