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아직 문 잠그지 마

by지노아


체크아웃하는 날이면 가족들을 먼저 밖으로 보낸다. 남편은 우리가 싸 놓은 짐을 하나씩 트렁크에 싣고, 아이들은 차 주변에서 출발하기를 기다린다. 내가 남편에게 하는 말은 매번 비슷하다.


“나 한 번 더 봐야 하니까 아직 문 잠그지 마.”

어떤 날은 “내가 한 번 더 돌아볼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혼자 집으로 다시 들어간다.


처음 숙소에 들어와 집을 훑어봤던 순서대로 다시 눈길을 준다. 냉장고 안에 음식을 남겨놓지 않았는지 살피고, 욕실에도 들어가 본다. 특히 침대 밑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아이가 벗어놓은 양말은 왜 항상 그 먼지 많은 침대 밑으로 굴러 들어가는지. 최대한 먼지를 마시지 않으려 숨을 한 번 참은 채 절제된 동작으로 양말만 건져낸다. 이제야 이 방을 다 확인한 기분이 든다.


떠날 준비에는 생각보다 챙겨야 할 일이 많다. 호스트가 보낸 퇴실 안내를 다시 한번 읽으며 다 쓴 수건은 어디에 모아둬야 하는지, 쓰레기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확인한다. 머무는 동안 늘어난 판트병도 주섬주섬 다시 짐 가방에 챙겨 넣는다. 보증금이 붙은 병들이니 두고 갈 수 없다. 가끔은 판트가 안 되는 다른 나라 병까지 무겁게 들고 와서 허탈하기도 했다. 사용한 그릇도 정리하고, 전원을 꺼야 할 곳은 없는지 살핀다. 겨울이면 난방을 낮추는 것도 빼먹지 않는다.


이런 일을 하다 보면 아이들도 제 몫을 거든다. 둘째는 학교에서 “지구가 아프다”는 말을 배우고 온 뒤로 하이쭝(라디에이터)을 먼저 살피곤 했다. 그 앞에 쪼그려 앉아 다이얼을 돌리고는 “엄마, 이만큼이면 돼?” 하고 물었다. 내가 확인하러 갔다가 오히려 아이가 먼저 손댄 것을 발견하는 날도 있었다. 둘째에게서 우렁각시의 향이 난다.



처음에는 순전히 빠뜨린 물건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퇴실 점검을 시작했다. 한 번 떠나면 다시 몇 시간을 달려 되돌아와야 하는 집들이니 방마다 한 번 더 살펴보는 게 몸과 마음이 편했다. 그런데 몇 번의 여행을 거치며 마지막으로 집을 도는 시간이 조금 길어졌다. 빠뜨린 물건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도 바로 발걸음을 돌리지 않게 되었다.


짐 가방들과 아이들 장난감 배낭이 빠져나간 숙소는 처음 문을 열었을 때와 비슷하다. 소파 위에 놓였던 장난감들도 없고, 현관에 아무렇게나 벗어 뒤집어져 있던 신발도 없다. 며칠 동안 네 사람이 지냈는데도 물건을 치우고 나면 그 흔적이 금세 사라진다. 나는 고요해진 집 안을 잠시 더 바라본다.


집을 돌다가 며칠 동안 그냥 지나쳐 다녔던 곳에 가서 서 보기도 한다. 문 옆에서 거실을 보고, 반대편에서 창을 바라본다. 여기서는 집이 이렇게 보이는구나 싶다. 도착한 날에는 어느 침대에서 누가 잘 것인지를 정하고 짐을 풀고 필요한 물건을 찾느라 바빴다. 떠나는 날에야 집을 천천히 둘러보는 셈이다.


천천히 보면 집 안의 여러 가지가 다르게 느껴진다. 처음 들어왔을 때는 그냥 식탁이었는데 그 위에 장 본 것을 올려놓고 밥을 지어먹었다. 아이들은 각자 앉고 싶은 의자를 골랐다가 실랑이를 벌였고, 다음 날 어디에 갈 것인지 이야기했다. 젖은 수영복과 자잘한 물건이 올라가는 날도 있었다. 그랬던 식탁이 마지막 날 모든 것을 치우고 나면 다시 빈 식탁으로 돌아간다.


물론 모든 집이 떠나기 아쉬웠던 것은 아니다. 숙박 일수만 채우고 얼른 나오고 싶었던 집도 있었으니까. 그런 집에서는 혹시 나중에 문제를 걸고넘어질까 봐 우리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떠날 때의 상태를 더 꼼꼼히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어찌 됐든 마음은 달라도 마지막으로 방을 살피는 일만큼은 같았다.


마음에 들었던 집에는 짧은 메모를 남기곤 한다. ‘한국어는 처음이겠지?’ 싶은 마음에 한글을 더 예쁘게 적어보려고 애도 쓴다. 아이들도 이렇게 마음을 남기는 재미를 느껴봤으면 좋겠지만, 그것까지 내 마음대로 되지는 않으니 일단 내 바른 글씨만 뽐내본다. 그렇게 글을 적다 보면 머무는 동안 있었던 일이 하나씩 떠오른다.


문이 탁 닫히면 이제 정말 떠날 시간이다.
다친 곳 없이 즐겁게 지내다 갈 수 있게 해 준 집에 고맙다는 마음을 남기며.


안녕.






퇴실 3초전 / 찾았다 요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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