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라면 눌러앉아도 되겠는걸

by지노아


지금까지 머문 집 중에 딱 한 곳을 골라서 계속 살아야 한다면 독일 잉골슈타트 근처에서 머물렀던 집이 떠오른다.
막 화려하지도, 구조가 독특하지도, 다른 사람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사진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잠자고 먹고 가족들과 부대끼며 살기에는 그 집이 적합한 것 같다.


왜 그럴까 살펴보니 그 집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독일 집과 꽤 비슷했다. 시가지 한가운데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생필품을 사러 한참 나가야 할 만큼 외딴곳도 아니었다. 장바구니를 챙겨서 차로 조금만 나가면 필요한 것을 구할 수 있는 위치였다. 네 식구가 살기에 집 크기가 지나치게 거대하지 않았고 정원도 있었다. 아이들이 밖에서 한참 시간을 보내다 올 수 있으면서도 내가 아이들의 안전을 지켜볼 수 있을 만큼의 크기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이 정도면 내가 청소할 수 있겠다.’
주부의 시선에서 떼어내고 싶고 무시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것. 정리와 청소.


여행지의 집을 보면서 청소가 가능한 사이즈인지 재보고 있을 줄은 나도 몰랐다.

처음에는 평소에 살기 어려운 집을 만나는 것이 재미있었다. 내가 감히 엄두도 못 낼 으리으리한 저택 같은 곳들 말이다. 혹은 유럽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집들. 오래된 나무 계단은 오를 때마다 삐걱거리고, 어떤 집은 방과 방의 경계가 모호해서 주방을 가려면 화장실을 통과해야 하는 구조의 집도 있었다. 그런 집을 겪을 때마다 사진을 찍고 그때의 감정을 신나게 내려 적어갔다.


며칠 머물다가 떠날 사람이기에 그런 것들이 특별해 보였다. ‘이런 집들을 이야기하면 사람들도 재미있어하겠지?’ 싶어서 그쪽으로만 머리를 굴려댔다. 하지만 매일 산다고 생각하면 최면에서 깨어나 현실적인 질문들을 마주해야 했다. 이 깊고 큰 울림을 가진 교회 종소리를 날마다 듣는다면 어떨까. 이 넓은 집의 바닥은 누가 닦고, 잔디는 며칠에 한 번씩 깎아야 하나..


인스브루크 근처 지스트란스에서 머문 집이 그랬다. 벽난로가 마음을 사로잡았던 집이었는데, 들어가는 길이 마차만 다녔는지 폭이 좁았고 주차하기도 쉽지 않았다. 주차를 하고 짐을 내려 집까지 옮기는 동선에 계단도 있어서 불편했다. 그때는 여행자의 시선에서 ‘한 번이니까’ 하고 넘길 수는 있었다.


여기에서 살면 장을 볼 때마다 이 길을 지나야 한다면 말이 달라진다. 양손에 우유와 채소와 과일이 든 장바구니 여러 개를 들고 계단을 올라야 한다. 비가 오는 날에도, 눈이 오는 날에도 예외는 없다. 차에서 냉장고까지 우유 한 통을 가져가는 길을 생각하고 나니 예쁜 집의 입구가 조금 다르게 보였다.


집 안도 그랬다. 욕실이 집의 크기에 비해 지나치게 컸고 방 구조는 복잡했다. 에어비앤비가 되기 전에 도대체 무슨 용도로 쓰던 집인지 예측이 어려울 정도였다. 여행 중에는 집 안을 둘러보는 재미가 있었지만, 실제로 산다면 이 구조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하지만 때로는 다른 사람의 집에서 며칠씩 살아보면서 배우게 된 인테리어 눈치들도 많아졌다. 조명 하나가 방 분위기를 바꾸는 것을 봤고, 화장실 벽에 그림을 걸어도 된다는 것도 알았다. 내 집이었다면 해 볼 생각조차 못 했을 일이었다. 그런 집들을 다니며 내가 살고 싶은 집의 모습도 조금씩 바뀌었다.


30대의 나는 집에 무엇을 놓고 싶은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 시절 우리 집 거실에는 소서가 있었고, 볼풀장에서 튀어나온 공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녔다. 바닥에는 숫자가 그려진 형형색색의 퍼즐 매트가 깔려 있었고, 뽀로로 미끄럼틀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마치 국민 육아템의 전시장 느낌으로.


그때는 그게 우리 가족에게 맞는 찰떡 인테리어였다. 가끔 에어바운스를 빌려 거실에 펼치는 날이면 집이 터져나갈 것 같았지만, 아이들은 그 안에서 한참을 놀았다. 거실에 다른 무엇을 놓을지 고민할 자리는 없었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된 지금은 꽤 달라졌다. 이제는 내가 사다 놓은 화병을 보고 노란 꽃과 어울린다던가, 위치를 바꿔야 한다고 자신의 생각을 더해준다. 공간을 함께 만들어간다는 느낌이 든다. 하루 종일 내 옆에 붙어 있던 아이들이 혼자 바카라을 읽으러 소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들이 어질러놓은 것을 스스로 치우기도 한다. 이제 인테리어의 첫 글자 인.. 정도는 생각해 봐도 될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우리가 앞으로 살 집에 대해 그림을 그려보기도 한다. 이제까지 봐온 수많은 집들에서 얻은 장점을 골라 우리가 생활하게 될 공간을 꾸며보고 싶은 마음. 거실에 큰 테이블 하나 놓고 한 아이는 숙제를 펼쳐놓고 연필을 굴리고, 다른 아이는 색종이를 오려 조각을 수북이 쌓아가고, 남편은 노트북으로 여행지의 숙소를 알아보고, 나는 개다 만 빨래를 옆에 둔 채 그 모습을 구경하는 풍경. 예전처럼 온 가족의 물건이 거실 바닥에 뒤섞이지 않아도 같은 자리에 모여 있을 수 있는 집.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아파트에서 들어가서 살 가능성이 높다. 내 꿈의 거실을 그저 꿈으로 끝내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거실의 크기보다 아이들의 각자 방을 만들어줄 수 있다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그래도 집을 볼 때 우리 가족의 공간을 먼저 떠올리게 될 것 같은 건 큰 변화다.


잉골슈타트의 집을 다시 그려보자면, 남쪽으로 큰 창이 난 주방에는 햇빛이 잘 들어서 주방 전체가 따스했다. 2층에는 방문들이 서로 마주 보며 옹기종기 붙어 있었다. 각자 방에 들어가 있어도 문만 열면 서로의 문이 보이는 거리였다. 그리고 3층에는 숨겨놓은 듯한 다락방이 있었다.


그 집에서는 여행 가방을 내려놓은 뒤의 생활을 상상하기 쉬웠다. 장을 봐온 것을 어디에 놓을지, 아이들은 어디에서 놀지, 이 집을 얼마나 돌볼 수 있을지. 머문 집들 가운데 가장 먼저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곳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살고 싶은 집을 묻는 말에는 그 집이 먼저 떠오른다.








그 옛날 터져나가던 우리집 거실 / 너무나도 유럽유럽하지만 맞은편에서 차 내려오면 빠꾸하거나 인도타고 올라가서 비켜줘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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