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다녀온 여행들을 글로 남기기 전에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다. 사진들을 편집한 포토북을 만들어봤고, 영상에 자막을 입히고 배경음악을 깔아서 가족들과 함께 보기도 했었다. 여행짐을 푸는 것보다 시간과 공이 더 드는 일이었지만 완성한 것을 보고 있으면 뿌듯했다.
그러다가 글로 남기는 것에 대해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한 집에서 있었던 일을 적다 보면 다른 기억이 따라 나왔다. 어떻게 표현할지 생각하느라 한 장면에 오래 머물기도 했다. 쓰고 지우고 다시 읽는 동안, 다녀온 여행을 혼자서 한 번 더 즐기고 있었다.
혼자 여행할 때는 내가 궁금한 것을 찾아다니면 됐다. 가족여행에서는 네 사람의 밥때와 체력과 취향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 그런 여행을 다녀와 혼자 글을 쓰는 시간이 요즘 나에게는 혼자 여행하던 때의 자유로움과 조금 닮아 있다. 내가 오래 생각하고 싶은 곳에서 얼마든지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까.
처음에는 여행지에 관해 알아본 것을 가족들과 많이 나누고 싶은 의욕에 여행 계획 바카라자도 만들고 그랬다. 내가 재미있게 읽은 이야기를 아이들도 알면 좋겠고, 같은 것을 보며 함께 감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함께 여행한다고 같은 마음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내가 많이 보고 느낀 것에 만족하는 법을 조금씩 익혔다. 이렇게 다시 꺼내 적는 것도 오롯이 내 즐거움이다.
가족들이 이 글들을 읽으면 다른 의견이 빗발칠지도 모르겠다. 같은 집에서 자고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었어도 각자 기억하는 장면은 다를 테니까. 만약 이 글들이 바카라으로 묶인다면 바카라 귀퉁이에 남편과 아이들이 자기 생각을 적어주면 좋겠다. 내가 쓴 문장 옆에 세 사람의 기억이 더해지면 바카라을 다시 읽는 재미도 달라질 것 같다.
아이들은 이 여행들을 얼마나 기억할까. 어쩌면 크면서 대부분 잊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우리 서울대공원 갔던 거 기억나? 세부는?” 하고 물으면 “내가 거길 갔었어?” 하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래도 이 바카라 한 권이 남는다면, 언젠가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페이지를 넘기며 “우리가 진짜 이런 곳들을 다녔었어?” 하고 웃어주기를 바란다.
글을 쓰면서 표현 하나, 단어 하나를 고르는 일이 이렇게 오래 걸릴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늘 쓰던 말인데 막상 적으려면 마음에 꼭 맞는 말을 찾기가 어려웠다. 요즘은 메모도 자주 한다. 다만 꼭 남기고 싶은 문장은 양손이 자유롭지 않을 때 떠오른다. 비닐장갑을 끼고 한 손에는 칼을, 다른 손에는 고깃덩어리를 잡고 있을 때 같은 순간이다. 바로 적을 수 없으니 고기를 써는 동안 머릿속으로 문장을 되풀이한다. 그동안에도 문장을 붙였다 떼었다 해본다.
이 글들을 쓰며 여러 집을 다시 떠올리다 보니 앞으로 만날 집들도 궁금해진다. 일부러 이야깃거리가 생길 만한 집을 골랐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 가족의 여행 방식이라면 앞으로도 들려주고 싶은 일이 꽤 생기지 않을까 싶다.
네덜란드의 보트 숙소도 궁금하고, 포도밭 언덕 아래 커다란 와인통 안에 들어가서 자보고도 싶다. 며칠 전에는 캠핑장에서 색다른 캠핑 문화를 경험해 봤다. 고로 우리 가족이 지내볼 잠자리는 아직 꽤 남아 있다.
물론 ‘올 인클루시브’라는 단어를 보면 마음이 흔들린다. 남이 해주는 따뜻한 밥을 먹고, 메뉴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관광을 마치고 돌아와 소파에 철퍼덕 앉을 수 있다니. 그쪽으로도 마음은 아주 잘 열린다.
그래도 다음 여행을 준비할 때면 아마 우리는 또 머리를 맞대고 숙소 사진을 보고 있을 것이다. 남편은 주차장을 확인하고, 나는 주방을 살피고, 아이들은 사진 귀퉁이에서 고양이를 찾고. 그렇게 고른 집의 문 앞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긴장하겠지.
하늘 아래 같은 집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