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진 게임말을 찾아서-오스트리아, 그로스그마인

by지노아


한국에서 엄마와 여동생네 부부가 8개월 된 조카를 데리고 우리 집을 찾아왔다. 멀리서 온 가족에게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고 싶었지만, 8개월 된 아기와 함께하는 여행이니 시차와 컨디션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고른 곳이 오스트리아 그로스그마인이었다.


도착한 숙소는 입구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앞마당 돌우물 위에는 황금빛 부활절 토끼가 올라앉아 있었고, 그 옆으로 작은 장식품들이 여기저기 숨어 막 도착한 우리를 응시하는 듯했다. 수평으로 곧게 뻗은 굵은 나뭇가지에는 동그란 그네가 대롱거리며 아이들에게 ‘한번 타봐~’ 하고 아는 체를 했다.


숙소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밖에서는 노란 벽과 토끼며 작은 장식품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는데, 안은 온통 짙은 나무색이었다. 바닥부터 벽과 천장까지 나무로 둘러싸여 있어 어두컴컴한 동굴로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오래된 나무 특유의 냄새도 났다.


두꺼운 나무 식탁과 등받이에 무늬가 파인 의자, 벽에 붙은 수납장까지 어느 것 하나 새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집 안 곳곳에 놓인 장식품들도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다. 오늘 밤은 전통 생활 박물관에서 자는 셈이구나 싶었다. 조명도 약하고 희미해서 조금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엄마는 결국 빛이 잘 드는 마당에 나가 계셨다.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밟고 침실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니 조금 나아 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어두운 건 마찬가지였다. 집 구경을 끝내고 거실로 내려오는 길에 아이들이 이 집만큼이나 오래되어 보이는 보드게임을 여러 개를 발견했다. 남편이나 나나 아이들과 보드게임을 해볼 만큼 해본 사람들이었다. 아이들이 신이 나서 보드게임을 고르기 시작하자 남편과 나는 그 자리를 슬그머니 벗어났다. 반면 제부는 아이들에게 아직 뉴페이스였다. 게다가 아직은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이모부였다.


결국 제부는 게임판의 희생양이 되어 옆에 8개월 된 조카를 부스터 의자에 앉혀놓고 게임에 참가했다. 게임을 시작하자 표정들이 제법 진지해져서는 때때로 말도 안 된다며 목소리가 커지기도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조카가 한 번씩 칭얼거리면 제부는 안아줬다가 다시 부스터에 앉히기를 반복했고, 그렇게 게임은 꽤 오래 이어졌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보드게임에서 잠시 빠져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부루마블 한번 시작하면 한 시간은 우스우니까.


그러다 아이들이 게임말 중 하나를 잃어버렸다고 했다. 평소 같으면 천천히 찾으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옆에는 뭐든 잡으면 입으로 가져가는 조카가 있었고, 사라진 게임말은 손가락 마디만 했다. 그 말을 듣자 뿔뿔이 흩어져 있던 어른들이 하나둘 거실로 모여들었다.


어두운 조명에 복잡한 기하학무늬 카페트까지 깔려 있으니 게임말 하나 찾는 것도 일이었다. 온 가족이 소파 밑과 의자 아래를 들여다보며 오리걸음으로 거실을 샅샅이 훑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벽에 걸린 조명 두 개 중 하나마저 꺼져버렸다.


조카의 안전을 바카라임지던 제부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휴대폰 손전등을 켰다. 아이들은 카페트 밑으로 들어간 게 아니냐며 한쪽을 들추려 했지만, 위아래로 묵은 먼지까지 함께 일어날 기세라 남편이 얼른 아이들의 손을 막았다.

소파 밑에도, 의자 아래에도 없었다. 카페트도 함부로 들출 수 없으니 슬슬 어디를 더 찾아야 하나 싶을 때였다.


그때까지 부스터에 앉아 있던 조카가 답답했는지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여동생이 "엄마 여깄어~"하며 다가가 조카를 안아 올리자 뭔가가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게임말이었다.


우리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거실을 뒤지는 동안 게임말은 조카의 엉덩이와 부스터 사이에 얌전히 끼어 있었던 것이다. 조금 전까지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닥을 뒤지던 아이들은 “등잔 밑이 어둡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귀염둥이 조카는 자기가 무슨 소동의 중심에 있었는지도 모른 채 언니들을 보며 빵끗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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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나무한 식사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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