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숙소를 이용해 여행을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만난 숙소였다.
여름으로 계절이 바뀌려는 5월 말, 낮이 점점 길어지고 있던 시기였다. 그래서인지 오후 늦게 숙소에 도착했는데도 해는 여전히 한낮처럼 높이 떠 있었고, 창으로 들어온 햇빛이 거실 바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넓은 유리창으로 햇빛이 쏟아지는 복층 집. 인테리어 잡지에서 봤던 밝고 화사한 집 같았다.
바리바리 챙겨 온 짐을 풀고 나니 몸을 움직인 탓인지 살결에 닿는 햇빛의 무게가 꽤 육중하게 느껴졌다. 해를 좀 가리고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롤라덴을 내리려고 창가로 다가가 스위치를 찾기 시작했다.
독일의 웬만한 가정집에는 창문 바깥쪽에 블라인드가 설치되어 있다. 한국으로 치면 ‘셔터’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셔터라고 하면 흔히 밖에서 내리는 모습을 떠올리지만, 롤라덴은 집 안에서 올리고 내릴 수 있다. 밤이 되면 하나둘 롤라덴을 내려 빛을 차단하는 것이 독일 가정집의 흔한 저녁 풍경이다.
거실 겸 주방이 있는 층에는 롤라덴이 없는 것 같아 위층으로 올라가 봤다. 그런데 침대가 있는 위층에도 마찬가지로 롤라덴이 없었다. 더운 것도 걱정이었지만, 오늘 밤 잠은 어떻게 자나 싶어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서머타임이 적용되는 시기라 밤 아홉 시가 되어도 창밖은 여전히 훤했다. 침대 위쪽 창에 달린 천 블라인드를 내려 봤지만 커다란 창을 다 가리지 못해 곳곳으로 빛이 삐져나왔다. 게다가 벽에 단단히 고정된 것도 아니고 접착테이프로 붙어 있어서 줄을 잡아당길 때마다 블라인드 전체가 통째로 떨어질 것처럼 들썩였다.
더 잡아당겼다가는 숙소비보다 기물 파손비를 더 내게 생길 것 같았다.
여기에서 두 밤을 보내야 하다니.
너무 밝다고 투덜거리는 아이들에게 창을 등지고 누우면 그나마 낫다고 알려줬다. 나도 밖이 빨리 어두워지기만을 바라며 눈을 감았다. 여행을 떠날 때 챙길까 말까 끝까지 고민했던 안대가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다음 날 아침에는 알람이 울리지 않아도 창으로 들어오는 뜨끈한 햇빛에 일찍 눈이 떠졌다. 침대에서 조금 더 뒹굴고 싶었지만 차라리 얼른 아침을 먹고 밖으로 나가 돌아다니는 편이 낫겠다 싶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래층에는 발코니가 있었다. 밖으로 나가니 맞은편 건물의 지붕과 발코니들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는 이른 아침부터 발코니에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누군가는 바카라을 읽고 있었다. 저마다 발코니를 꾸며놓은 방식도, 그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도 달라 한동안 유럽의 아침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 평온함을 뒤로하고 나는 아침밥을 준비하려고 식탁을 닦는데 손끝에 이상한 끈적임이 느껴졌다.
숙소 청소가 덜 된 건가 싶어 물티슈로 열심히 문질러 봤지만 끈적함은 가시지 않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얼룩이 묻은 게 아니라 표면 자체가 녹아내린 것처럼 변해 있었다. 아이들 지우개가 플라스틱과 오래 맞닿아 있으면 그 부분이 끈적해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얼룩 한가운데에는 희미한 전단지 조각이 식탁과 한 몸이 된 채 눌어붙어 있었다. 색은 바래 있었지만 어딘가 낯익은 사진이었다.
‘케밥 시켜 먹었네...’
준비해 온 쌀밥과 소시지 계란을 접시에 담아 아침을 먹었다. 하지만 아무리 닦아도 사라지지 않는 식탁의 끈적함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결국 우리는 양손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번갈아 들며 최대한 식탁에 손을 대지 않고 밥을 먹었다.
청소가 덜 되어 있는 집이라면 내가 닦고 쓸어서 생활하면 그만이다. 실제로 슬리퍼를 챙겨 가지 못했던 어느 여행에서는 바닥부터 닦고 지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 집처럼 내 힘이 닿아도 어쩔 수 없는 곳에서는 달랐다. 고칠 수도, 닦아낼 수도 없는 사소한 불편을 체크아웃하는 순간까지 계속 마주쳐야 했다.
사진 속 이 집은 분명 볕이 잘 드는 아늑한 복층 집이었다. 실제로도 넓은 창 너머로 보이는 탁 트인 풍경은 가슴이 시원해질 만큼 좋았다. 그런데 직접 머물러 보니 그 볕은 밤이 되어도 꺼지지 않는 불편함이었고, 그 아늑함은 손끝에 들러붙는 끈적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