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관광지를 걸은 날에는 폭신한 깔창이 든 스케쳐스 운동화를 신고 있어도 발바닥이 욱신거렸다. 숙소에 돌아와 신발을 벗고 발바닥에게 평화를 선포해주고 싶었지만, 저녁밥시간이 되면 다리를 질질 끌며 주방으로 향했다.
낯선 주방에서 필러로 감자 껍질을 벗겨 삶고, 준비해 간 재료로 어묵국을 끓였다. 어떤 날에는 카레를 만들고 어떤 날에는 고기를 구웠다. 처음에는 조금 억울했다. 다 같이 온 여행인데 나만 평소처럼 밥을 하고 있다니. 그것도 익숙한 내 주방이 아니어서 냄비와 프라이팬부터 찾아야 했다. 칼은 쓸 만한지, 그릇과 수저는 쓰기 전에 한 번 더 씻어야 할지도 살폈다.
어느 집의 프라이팬은 코팅이 거의 다 벗겨져 있었다. 이걸로 요리했다가는 음식과 함께 몸에 좋지 않은 것까지 먹는 건 아닐까 싶었다. 여행지에서 밥을 하려면 재료보다 그 집 주방을 익히는 일이 먼저였다.
그래도 저녁은 숙소에서 먹는 편이 마음 놓였다. 여행 초반에 이동 일정이 엉켜 밥때를 놓친 적이 있다. 문이 열려 있는 식당을 찾아 들어가 식사가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종업원은 무표정으로 손목시계를 가리켰다. 영업 중간의 휴식 시간이라 음식을 주문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결국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로 허기를 달랬지만, 아이들에게 저녁을 좀 더 제대로 먹이고 싶었다.
아이들과 여행하면서 식당에서 밥을 먹는 일은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았다. 맛집이라는 후기를 보고 찾아간 곳에 어린이가 먹을 만한 메뉴가 없기도 했고, 여기저기서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에 머리가 어지러운 곳도 있었다. 어른 둘이라면 다른 식당을 찾아 돌아다니거나 줄을 서서 기다릴 수 있다. 하지만 이미 배가 고픈 아이들을 데리고 언제 먹을 수 있을지 모르는 시간을 보내기는 쉽지 않았다.
나는 알레르기도 없고 못 먹는 재료도 거의 없다. 독일에 와서는 이곳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한식을 흉내 내며 가족의 밥을 해왔다. 여행에 가서는 좀 다르게 먹어보자며 아침에 시리얼과 요거트를 차려본 적도 있다. 하지만 며칠 지나면 결국 밥을 찾았다. 그 뒤로는 아침에 간단한 한식을 먹고, 점심 한 끼는 밖에서 현지 음식을 먹었다. 저녁이면 다시 숙소로 돌아와 밥을 했다.
한 번 요리를 하고 나면 남의 집 주방에도 조금 익숙해졌다. 다음 날에는 전날 열어본 서랍으로 손이 먼저 갔다. 같은 국을 끓여도 집마다 화구가 다르고 냄비가 달랐지만, 어느새 그 집에서 저녁을 준비하는 순서가 생겼다. 밥을 안칠 때면 아이들이 부엌을 기웃거리며 “오늘은 뭐야?” 하고 물었다. 조금 전까지 처음 보는 거리를 걷던 아이들이 숙소에 돌아와 배고프다고 말하는 모습은 집에서 보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가족들이 첫 숟가락을 뜨고 표정이 풀리는 것을 보면 나도 마음이 놓였다. 그렇다고 발바닥의 통증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밥을 다 먹으면 설거지를 해야 하고, 다음 날 아침에 먹을 것도 생각해야 했다. 여행까지 와서 주방에 서 있는 시간이 아까울 때도 있었지만, 저녁에 아이들과 편하게 앉아 밥을 먹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앞으로 만나게 될 남의 주방님들이 조금만 친절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괴테 아저씨네 주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