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내렸던 비가 그쳤다. 젖은 아스팔트에 비친 동네는 연한 잿빛이다. 비구름은 물러갔지만 아직 해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걷다 보니 옷이 살짝 축축해졌다. 우산을 썼지만 가늘게 흩날리는 잔비는 막지 못했다.
텅 빈 산바카라로를 지나 도서관까지 걸었다. 거리는 고요하고 한산했다. 일기예보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던 도깨비 장마는 물러났지만 계절은 아직 여름이다. 가을은 봄처럼 걸음이 느리다. 늦여름은 더디게 지나간다.
수리산로 양옆으로 마당에 감나무를 심은 집들이 사이좋게 어깨를 맞대고 있다. 열매를 맺는 유실수는 계절을 알리는 전령 역할을 한다. 봄이면 화려한 꽃을 달고 여름에는 푸른 이파리들이 바닥에 커다란 그늘을 그린다.
풍성하게 맺힌 열매를 거둘 때쯤 가을이 온다. 곱게 물든 낙엽을 바람에 실어 보내면 곧 겨울이다. 골목길 끝에서 낙과를 발견했다. 덜 익은 감이 바닥에 널려있었다. 세찬 비를 맞고 가지에서 떨어져 나온 것 같았다. 손으로 집은 다음 물기를 닦았다.
초록빛이 감도는 감잎보다 훨씬 옅은 연녹색이었다. 탁구공보다 조금 더 큰 감을 보고 아버지가 직접 농사지은 배를 떠올렸다. 어린아이 주먹보다 작은 배는 벌레를 먹은 자국이 군데군데 드러나있었다. 살짝 찌그러진 모양을 하고 있어서 어딘가 모르게 안쓰러웠다.
크기는 사과보다 작았지만 맛은 참 좋았다. 산을 개간해서 만든 아버지의 배밭은 거의 매년 풍수해 피해를 입었다. 산골 사이로 큰 비가 지나가고 나면 배밭은 낙과로 가득했다. 허리가 굽은 배나무들이 늘어서있는 모습을 보는 아버지의 심정은 어땠을까.
나이를 먹었지만 막을 수 없는 자연 앞에서 느꼈을 무력감을 헤아리는 일은 어렵다. 내면에 깊은 곳까지 번지는 막막함을 걷어내고 다시 밭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얼마나 무거웠을까. 초보농부였던 시절 아버지는 아쉬운 마음에 낙과까지 전부 담아서 집에 가져왔다.
치 트렁크를 실려있는 박스 속에는 여기저기 멍든 배가 가득 들어있었다. 늦은 밤 혼자 거실에 앉아서 썩은 배를 골라냈던 아버지의 심정을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몇 년이 지나고 일이 손에 익은 시점부터 아버지는 더는 낙과를 가져오지 않았다.
비바람을 맞고 땅에 떨어진 배는 산짐승들 몫으로 건네줬다. 이유를 묻는 내게 잃은 것을 세지 말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때부터 배농사가 전보다 잘됐다. 가을만 되면 아버지는 이전보다 더 크고 달콤한 배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잃어버린 것을 세지 말라는 아버지의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낙과는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다. 가지에 남은 열매는 전보다 더 잘 자란다. 떨어진 배를 배불리 먹고 나면 짐승들은 더 이상 배나무를 건드리지 않는다.
잃어버리는 것과 얻는 것은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나로 이어져있다. 손해 본 것은 없다. 크고 작은 경험은 고스란히 남는다. 농사를 통해 아버지는 그 사실을 깨우쳤던 것 같다. 낙과는 깨달음과 맞바꾼 수업료였다. 체험보다 좋은 스승은 없다.
땅에 떨어진 순간부터 낙과는 내 것이 아니다. 미련을 버리고 나면 그제야 비로소 남은 것들을 돌아볼 수 있다. 농사와 삶 모두 상실을 계기로 발전하고 성장한다. 무의미한 고통은 없다. 뒷마당에 심은 유채꽃이 진 자리에 토끼풀이 자랐다.
시든 꽃잎과 마른 풀잎은 겨울 동안 흙속에서 자양분이 됐다. 초여름날 화단을 뒤덮은 새하얀 토끼풀꽃을 보고 노란 유채꽃과 재회한 것 같았다. 아버지의 배밭에서 봤던 하얀 배꽃처럼 예뻐서 제법 오래 들여다봤다. 손에 든 감을 길 옆 작은 구덩이에 묻었다.
운이 따라야겠지만 싹이 나면 좋겠다. 담장 밖으로 기다란 팔을 내밀고 있는 감나무에 시선이 닿았다. 초록빛이 감도는 작은 열매들이 가지 끝에 매달려있다. 몇 개쯤 잃어버려도 괜찮다. 기다리다 보면 온 세상이 붉게 물드는 가을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