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캡슐

by김태민

몇 달 만에 다 같이 모였다. 넷이 친구로 지낸 지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다. 사람은 변해도 친구는 변하지 않는다. 자고 일어나면 달라지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우리다. 사는 곳이나 상황은 달라져도 사람의 좋은 면은 그대로다.


같이 있다 보면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 할 이야기가 많았다. 자리를 옮겨가며 밤늦도록 대화를 이어나갔다. 국숫집에서 나와서 다음 장소로 가는 중에 타임캡슐을 확인해 보자는 말이 나왔다. 낯선 단어를 듣고 기억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오랫동안 사용한 적 없는 기계의 전원버튼을 누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먼지처럼 쌓여있는 세월 속에서 낡은 상자를 발견했다. 열어봤더니 옛 추억이 들어있었다. 수능이 끝난 겨울방학 우리 넷은 타임캡슐을 만들었다. 스무 살을 앞둔 12월 31일 밤.


딱 마흔 살이 되는 1월 1일에 다 같이 열어보기로 하고 땅속에 묻었다.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먼 미래였는데 어느새 코 앞에 있다. 살아온 날보다 더 많은 시간을 약속의 증표로 삼았다. 스무 살의 우리가 언제까지나 함께였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두 번째 스무 살을 맞이하는 첫날을 다 같이 맞이하고 싶었다. 불투명하고 불안한 미래 속에 또렷하게 우리 넷을 그려 넣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목적지로 가는 열차에 올랐는데 이제 내릴 때가 됐다.


생각보다 더 빨리 도착한 것 같다. 시간은 신호를 기다리지 않는다. 브레이크 없이 계속해서 가속페달만 밟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속도가 붙는다. 제한속도가 없는 선로 위를 달리다 보니 벌써 여기까지 왔다.


스물아홉에서 서른 살로 넘어갈 때는 어색했지만 마흔은 오기 전에 먼저 받아들였다. 서른아홉은 그럴만한 나이다. 납득하는 일이 전보다 익숙해졌다. 요즘은 이해하려고 굳이 애쓰지 않는다.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넘어간다.


차이와 다름을 구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아홉수는 지나온 길을 정리하고 걸어온 삶을 돌아보는 시기다. 열아홉이 되면 유년기에 마침표를 찍는다. 성인기를 보내고 도달한 스물아홉은 널려있는 물음표 사이에서 느낌표를 찾는 계기였다.


서른아홉은 쉼표에 가깝다. 거리를 두고 과거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19.9살. 성인이 된다는 설렘과 어른이라는 이름이 주는 낯선 불안이 공존했던 시절이었다. 그때 우리는 새장 속에서 자란 나약한 새와 같았다.


활짝 열린 문 앞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망설였다. 미성년에게 없는 성인의 바카라임이나 의무가 동반하는 삶의 무게를 알지 못했다. 그저 막연하게 미래를 상상했다. 서른이나 마흔은 나이가 아니라 숫자를 세는 단위에 불과했다.


다들 그랬겠지만 현실감이 없었다. 스무 살을 앞둔 우리에게 미래는 숫자보다는 꿈에 가까웠다. 결과로 평가받는 교육과정 속에서 눈높이를 낮추면서도 시선은 먼 하늘에 닿아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작은 변화에도 균형을 잃고 자주 흔들렸다.


교복을 벗을 때 느꼈던 해방감 이면에 그림자 같은 두려움이 드리워져있었다. 걱정을 입 밖으로 꺼내는 대신에 우리는 매일같이 모여서 시간을 보냈다. 혼자서는 불안했지만 넷이서는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다 같이 있다는 사실이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했다.


먼 곳에 있어도 서로를 잊지 않는다는 확신을 나눠가졌다. 그래서 각자 고른 선택지를 손에 쥐고 새장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타임캡슐을 묻자는 말을 누가 처음 꺼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세월이 흘러도 함께 있겠다는 약속이었다.


타임캡슐을 아직 열어보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이미 약속을 지켰다.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는 우리다. 각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함께한 세월은 서로를 단단하게 묶는 동기로 작용했다. 바람은 하나뿐이다. 다음 20년 후에도 지금과 같기를 기원한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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