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을 봤더니 새벽 5시였다.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났다. 물을 한 잔 마시고 도로 누웠다. 꿈에 황금식당이 나왔다. 어렸을 적에 딱 한 번 갔던 곳이다. 기억에 남을 만한 장소는 아니었다. 추억으로 삼을 만한 일화도 없었다.
눈을 감았지만 잠은 벌써 멀리 달아나버렸다. 특별할 것 없는 기억들이 한 번씩 꿈속에 배경으로 등장한다. 의문스러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면 커다란 물음표만 덩그러니 남는다.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봤지만 그럴듯한 해답은 찾지 못했다.
대농단지에 살았던 1990년대. 벌써 햇수로 벌써 30년이 넘은 옛날이다. 잠에서 깨면 서서히 희미해지는 꿈과 다르게 선명한 이미지들이 눈앞에 떠다녔다. 마치 어제 다녀온 것처럼 식당 내부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입구에 큰 수족관이 보였다. 금붕어나 열대어는 물속에 한 마리도 없었다. 공기 방울을 토해내는 산소발생기만 바쁘게 돌아갔다. 얼룩이 가득한 수조 표면에 푸르스름한 형광등 불빛이 스티커처럼 들러붙어있었다.
늦봄 치고 날이 정말 더웠다. 실내공기는 무겁고 끈적했다. 꿈이었지만 너무 생생했다. 벽에 딱 하나 달려있는 오래된 선풍기는 회전할 때마다 삐걱이는 소리를 쏟아냈다. 반쯤 떨어져 나간 골드스타 마크가 몸통에 달려있었다.
미지근한 바람에 눅눅한 기름냄새가 배어있었다. 누런 벽지 위에 세로 쓰기로 적은 메뉴들이 눈에 들어왔다. 비스듬하게 붙여둔 탓에 부적이나 지방처럼 보였다. 투박한 손글씨는 아무리 봐도 음식점에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였다.
곰팡이가 슬었는지 부엌문 위에 붙은 입춘방은 귀퉁이 쪽이 새까맸다. 가게 앞 도로를 가릴 목적으로 붙인 불투명 필름은 포터 용달차 색이었다. 군데군데 벌레 먹은 것처럼 작은 구멍이 나있었다. 자외선으로 인해 변색된 끄트머리는 접착력을 잃고 돌돌 말려있었다.
너저분한 식당 내부를 확인하고 나가고 싶었지만 자리에 앉아버렸다. 결말이 정해져 있는 대로 몸이 알아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주인아줌마는 물고기 패턴이 들어간 긴 옷을 입고 있었다. 열대 지방의 바다색을 닮은 색감이 묘하게 잘 어울렸다.
선풍기 바람이 소매를 스칠 때마다 일렁이는 물결 위로 이름 모를 물고기들이 튀어 올랐다. 고무장갑을 낀 채로 메뉴판을 건넸는데 남자만큼 손이 컸다. 얼굴은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흐릿했다. 화사하고 선명한 옷과 정반대였다.
이목구비가 제대로 붙어있는지 확인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 식당 내부를 여기저기 들여다보다 점점 시야가 흐릿해졌다. 누전차단기를 내린 것처럼 실내가 암전 되더니 꿈은 거기서 뚝 끊겼다. 어떤 음식을 주문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혼자 밥을 먹기 싫어서 무심코 들어갔던 식당이었다. 오래된 기억과 꿈을 비교해 가며 이리저리 짜 맞춰봤다. 그러다 잊고 있었던 옛날 기억을 되찾았다. 꿈은 환상과 현실을 절반씩 반영한다. 초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은 유난히 길었다.
겨울 내내 IMF라는 뜻을 알 수 없는 단어가 저녁 뉴스시간을 도배했다. 서민들의 보금자리였던 대농단지는 빈집이 하나 둘 늘었다. 부모님의 귀가가 늦은 어느 날 나는 태어나서 처음 혼자 동네 분식집에 갔다. 아껴둔 용돈으로 1500원짜리 라면을 사 먹었다.
일주일치 간식값이라 몇 번을 고민한 후에 큰맘 먹고 주문했다. 푹 퍼진 면이 입에 맞지 않아서 맛은 그저 그랬다. 그냥 한 번쯤 돈을 주고 먹는 라면이 궁금했다. 집 앞 슈퍼에서 사 먹는 빵이 그날만은 질렸던 것 같다. 사실은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들을 붙잡지 못하고 떠나보냈다. 불 꺼진 거실에 홀로 앉아서 보내는 저녁이 싫었다. 내색하지 않고 속으로 삭이다 까맣게 잊어버렸던 기억이다. 어젯밤 꿈은 흐릿한 기억과 희미하게 남은 감정이 뒤섞인 결과물이었을까?
어쩌면 사라져 가는 기억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인사인 것 같다. 음식처럼 기억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소중한 기억은 세월의 풍화 속에서도 꿋꿋하게 생존한다. 쉽게 변질되지 않는다. 행복했던 순간의 온기를 그대로 보존한다.
반대로 평범한 순간을 담은 기억은 때가 되면 사라진다. 마지막 인사라면 반갑게 맞이하고 싶었는데 낯선 눈길로 배웅하게 됐다. 돌아보면 그리운 날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결국 남는 것은 사진과 추억뿐이라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기억 속 대농단지 황금식당은 사진 대신에 글로 남았다. 꿈에서 다시 만난다면 이번에는 먼저 인사를 건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