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 코드는 진짜 위에만 얹어라
지난 FanCase에서 브랜드가 팬덤을 소유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마치 팬덤의 일원이 된 듯한 소통의 경험'을 누리게 만드는 전략을 '팬덤 코드(Fandom Code)' 전략이라 정의하고 맥도날드의 'World Menu Heist(세계 메뉴 강탈 작전)' 사례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 맥도날드의 'World Menu Heist' 케이스를 보시고 싶으시다면
동시에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진짜 정서적 지지나 실체적인 보상 없이, 겉으로 보이는 팬덤 코드를 억지로 흉내만 낸다면 팬덤 코스프레(Fandom Cosplay)로 전락하여 조용히 소멸할 수 있음을 함께 이야기하였습니다.
오늘은 팬덤 코드가 변질되어 팬덤 코스프레로 전락한 사례를 살펴볼까 합니다. 바로 팝마트의 라부부 이야기입니다.
2025년 팝마트(POP MART)는 연 매출 371억 위안, 전년 대비 185% 성장이라는 경이적인 성적표를 공개했습니다. 순이익은 309% 급증했고, 라부부가 속한 '더 몬스터즈' 시리즈는 365.7% 성장하며 단일 IP만으로 전체 매출의 38%를 바카라임졌습니다. 어떤 기준으로 봐도 '대박'이죠.
그런데 실적 발표 당일, 홍콩거래소에서 팝마트 주가는 22.5% 폭락했습니다. 2025년 4월 이후 가장 큰 일간 낙폭이었습니다.
실적이 사상 최고인데 주가가 무너지는 건, 시장이 '진정성'을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이었습니다. 사상 최고 실적과 주가 폭락이라는 이 괴리가 바로 이 번 FanCase의 주제입니다.
라부부는 가장 빌리기 쉬운 팬덤 코드를 거의 완벽하게 빌려 썼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 코드가 어떻게 코스프레로 전락하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사례가 되었죠. 팬덤코드 전략의 철칙 '코드는 진짜 위에만 얹어라'가 무너질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라부부(Labubu)는 글로벌 아트 토이 브랜드 팝마트(POP MART)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대표 캐릭터 시리즈입니다. 벨기에 출신 작가 카싱 룽(Kasing Lung)이 북유럽 신화 속 요정에서 영감을 받아 창조한 '더 몬스터즈(The Monsters)' 세계관의 핵심 캐릭터입니다. 뾰족한 귀와 톱니바퀴 같은 장난스러운 치아가 특징이며, 귀여우면서도 몬스터 같은 매력으로 전 세계적인 오픈런과 품절 대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라부부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폭발력을 가지며 품절 대란을 일으킨 핵심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태국의 유명 걸그룹 블랙핑크의 리사가 자신의 SNS에 라부부 인형 키링을 가방에 달고 찍은 사진을 올리면서 인기가 폭발했습니다. 이후 국내외 수많은 아이돌과 인플루언서들이 ‘가꾸(가방 꾸미기)’ 아이템으로 라부부를 활용하면서, 단순한 완구가 아닌 트렌디한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완벽하게 예쁘거나 착하게 생긴 기존 캐릭터들과 달리, 라부부는 뾰족한 귀와 날카로운 치아를 드러내며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이 '못 말리는 장난꾸러기' 같은 괴짜(Kitsch)스러운 매력이 MZ세대의 취향을 저격했습니다. 겉은 까칠해 보이지만 속은 따뜻하다는 세계관 스토리도 몰입감을 더합니다.
인기 라인업인 인형 키링(마카롱, 플립위드미 시리즈 등)은 얼굴은 단단한 피규어 재질이지만 몸은 부드러운 솜인형입니다. 팬들이 라부부에게 직접 만든 옷을 입히거나 모자, 안경 등의 소품을 매치해 나만의 인형으로 커스텀하는 문화가 숏폼(TikTok, Reels)을 통해 확산되었습니다.
상자를 열기 전까지 어떤 디자인인지 알 수 없는 랜덤 뽑기(블라인드 박스) 형식은 강한 중독성과 재미를 줍니다. 특히 박스당 확률이 매우 낮은 '시크릿(Secret)' 캐릭터의 존재와 기습적인 한정판 발매 방식이 수집가들의 소유욕을 극대화하여 리셀 열풍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라부부는 팬덤코드 중에서도 '수집 코드'를 정석으로 구현했습니다. 시리즈·랜덤·한정이라는 삼박자, 그리고 72분의 1 확률로만 만날 수 있는 '시크릿 히든 에디션'까지. 전체 라인업을 펼쳐 보여 소비자의 머릿속에 빈칸을 새기고, 그 빈칸을 채우고 싶은 욕망에 불을 붙였습니다. 수집 코드가 빌리는 감정은 하나, '남들은 못 가진 걸 나는 가졌다'는 우월감입니다.
여기에 강력한 팬덤 화력이 더해졌습니다. 블랙핑크 리사와 로제, BTS의 뷔와 RM, 리한나까지, 글로벌 톱스타들이 가방에 라부부 키링을 매단 사진을 자발적으로 올렸습니다. 그러면서 라부부는 단숨에 '아는 사람만 아는 취향의 증표'가 됐습니다. 슬롯학자 부르디외의 말을 빌리면 일종의 '문화 자본'입니다. 돈이 많다는 과시가 아니라, '이런 걸 알아보는 안목이 내게 있다'는 증명에 가까웠죠.
초기까지는 이것이 건강한 팬덤코드였습니다. 캐릭터를 향한 애정, 컬렉션을 채우는 설렘, 시크릿을 발견했을 때의 쾌감. 알맹이(IP의 매력) 위에 형식(희소·한정·확률)이 얹힌, 정직한 구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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