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이 나무를 죽였습니다 -떠오르다17

나무와 대화하던 화가, 그의 미술관이 나무를 죽였습니다

by박찬우

최근 접한 한 뉴스 앞에서, 마음이 오래 무거웠습니다.



5월의 한복판, 푸른 잎으로 무성해야 할 은행나무의 절반이 누렇게 타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나무 아래에는 가을처럼 낙엽이 쌓여 있었습니다. 수령 100년, 길게는 200년 가까이 부암동 골목을 지켜온 나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밑동에는 누군가 드릴로 뚫은 구멍과 약품을 주입한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주민들이 인근 CCTV를 돌려보니, 녹색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나무 아래에서 드릴로 구멍을 뚫고 무언가를 주입하고 있었습니다.


그 나무 바로 옆에 있는 건물이, 환기미술관이었습니다.


저를 멈춰 세운 건 사건의 잔혹함만이 아니었습니다. 하필이면 그곳이 환기미술관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수화(樹話), 나무와 이야기하던 사람


김환기 화백의 호는 수화(樹話)입니다. '나무와 이야기하다'라는 뜻입니다.


한국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이 화가는 평생 자연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달과 산, 구름과 새, 매화와 백자 항아리. 그의 점화(點畵) 속 무수한 점들조차 결국은 그가 사랑한 자연과 사람을 향한 그리움이었습니다. 자연은 그에게 소재가 아니라 예술의 근원이었고, 그는 자신을 '나무와 대화하는 사람'이라 불렀습니다.


환기미술관은 바로 그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2년 부암동에 세워졌습니다. 화가 사후, 환기재단이 운영해 온 공간입니다. 다시 말해 이 미술관의 존재 이유, 브랜드의 뿌리 그 자체가 '자연을 사랑한 화가'에 있습니다.

그런 미술관이, 100년 넘은 나무에 드릴로 구멍을 뚫고 제초제를 부었습니다.


나무와 대화하던 화가의 이름을 단 공간이, 나무를 소리 없이 죽이려 했습니다. 이 반전 앞에서, 저는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요?


사건은 어떻게 흘러갔나


먼저 방송으로 알려진 내용을 토대로 사실관계를 짚어 보겠습니다.


은행나무는 미술관 소유 부지가 아니라 담장 밖 공동사유지에 서 있습니다. 등록된 소유주만 40여 명에 이르는 땅입니다. 미술관 측은 "나무뿌리가 담벼락 밑으로 파고들어 금이 가는 등 위험한 상황"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습니다. 구청과 토지 소유주들에게 연락하고 내용증명까지 보냈다고 했습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박찬우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고객 중심 관점과 디지털 크라우드 컬쳐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기업의 디지털 마케팅 전략과 브랜드 팬덤 구축을 위한 맞춤형 컨설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154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6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01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