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 이글
평소실력이 뭘까요?
오늘도 길을 잃었습니다
내가 너무 시끄럽습니다.
밖이 아니라 안입니다.
머릿속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회의가 열립니다. 방금 한 말을 잊어버린 일,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는 물건, 사라진 옷가지, 길을 잘못 든 순간들이 차례로 안건으로 올라옵니다. 심지어 “기억이 더 나빠지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마저 걱정의 목록에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글을 씁니다.
적어두면 적어도 한 사람은 기억하니까요. 나 대신 종이가 기억해 줍니다.
어제도 그랬습니다.
공공기관 차량 2부제로 짝수날에만 차를 가져갑니다. 그래서 익숙하지 않은 지하철을 타게 되었습니다. 며칠 동안은 나름의 길을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어제 제대로 갔던 길이 오늘은 사라집니다.
신분당선인가.
수인분당선인가.
이름부터 헷갈립니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단순히 방향을 놓치는 일이 아닙니다. 순간적으로 내가 나를 믿지 못하게 되는 경험에 가깝습니다.
다음 주 화요일에는 인지검사 결과가 나옵니다.
두 시간 가까이 숫자를 외우고, 수열을 맞추고, 계산을 하고, 허난설헌이 누구인지도 물었습니다.
그 정도는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문제가 예상 밖이었습니다.
도형 열 개쯤을 보고 따라 그렸습니다. 꽤 집중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종이를 뒤집으라고 하더니 방금 그린 그림들을 다시 그려보라고 합니다.
당황했습니다.
그리는데 집중했지 외우지는 않았는데요.
세 개쯤 그리다가 화가 났습니다.
‘그럴 거면 미리 외우라고 하지.’
순간 선생님이 미워질 뻔했습니다.
집에 오는 길에 친정엄마 생각이 났습니다. 몇 해 전 치매 검사를 받으러 갔을 때 집에서는 자꾸 잊어버리시던 분이 병원에서는 장학퀴즈 출연자처럼 척척 답을 맞히셨습니다.
사람은 검사실에 들어가면 평소보다 더 정신을 바짝 차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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