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라는 신을 내보낸다
“나 외에는 신이 없도다”
미움이 뭘까.
누군가를 미워하면 그 사람의 말부터 듣고 싶지 않다.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두 귀를 닫는다. 무슨 말을 해도 틀렸다고 여기고, 선한 뜻까지 의심한다.
하나님을 미워한다는 것도 그런 것일까.
하나님이 없다고 소리치는 것만이 하나님을 미워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말씀을 듣지 않는 것, 하나님의 뜻보다 내 판단을 더 믿는 것, 하나님이 주신 오늘을 밀어내고 다른 인생만 바라보는 것도 하나님께 귀를 닫는 일일지 모른다.
오늘 말씀은 분별력을 잃은 백성에게 묻는다.
“그들은 모략이 없는 민족이라 그들 중에 분별력이 없도다 만일 그들이 지혜가 있어 이것을 깨달았으면 자기들의 종말을 분별하였으리라.”
— 신명기 32장 28~29절
신명기 32장은 모세의 마지막 노래다.
앞선 말씀에서 여수룬은 배부르고 윤택해지자 자신을 구원하신 반석을 업신여겼다. 오늘 본문은 그 망각이 어디까지 흘러가는지를 보여준다.
자기 힘으로 살았다고 착각한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왜 무너지는지 분별하지 못했다. 대적 역시 자신들의 힘이 강해서 이겼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넘기신 분도, 대적의 교만을 심판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그들의 반석이 그들을 팔지 아니하였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주지 아니하셨더라면 어찌 하나가 천을 쫓으며 둘이 만을 도망하게 하였으리요.”
— 신명기 32장 30절
이스라엘도 착각하고 대적도 착각한다.
한쪽은 하나님을 잊고 자신의 힘을 믿었다. 다른 쪽은 승리한 뒤 자신들의 수단이 높았다고 자랑했다. 서로 반대편에 서 있는 것 같지만, 둘 다 같은 우상을 섬겼다.
‘내 힘’이라는 우상이다.
나는 무엇을 믿으며 여기까지 왔을까.
어린 시절 부모님은 자주 다투셨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돈 때문이었을 것이다. 빚을 얻어 이층 집을 지은 뒤 살림은 더 궁핍해졌다.
일층 상가에는 식당이 들어왔다. 식당에서 커다란 솥으로 밥을 짓고 나면 바닥에 누룽지가 남았다. 우리는 그것을 얻어다가 물을 붓고 끓여 먹기도 했다.
뜨거운 물속에서 누룽지가 천천히 풀어졌다.
구수한 냄새가 방 안에 퍼졌다.
지금 생각하면 한 그릇의 따뜻한 음식이지만, 그때의 집에는 부모님의 다투는 소리가 함께 끓고 있었다.
나는 잠으로 도망쳤다.
방문을 닫고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잠들면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됐다. 세 살 어린 여동생의 기억 속에서 나는 공부하지 않고 잠만 자는 언니다.
나에게는 그 시절의 장면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기억이 없는 것인지, 기억하고 싶지 않아 잠으로 덮어버린 것인지 알 수 없다.
가끔 생각한다.
그 시절로 돌아가 정서적으로 안정된 아이가 된다면 나는 무엇을 했을까. 아마 바카라을 읽지 않았을까. 창밖이 어두워지는 줄도 모르고 한 권의 바카라 속으로 들어가 다른 나라와 다른 시대를 날아다니지 않았을까.
한강 작가가 어린 시절 바카라을 읽고 문학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부러운 마음이 든다. 지금도 긴 호흡의 작품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한다.
‘나도 그때 바카라을 읽었더라면.’
‘나도 조금 일찍 깨어났더라면.’
‘나에게도 안정된 방이 있었더라면.’
그러나 그 생각을 오래 붙들고 있으면 또 하나의 신이 생긴다.
‘다르게 살았을 나’라는 신이다.
그 신은 지금의 나를 자꾸 초라하게 만든다. 살지 못한 인생을 금빛으로 칠해놓고, 실제로 살아낸 오늘을 그 앞에 세워 비교한다.
평안이가 낡은 방문 앞에 서 있었다.
문 안쪽에는 어린 내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잠들어 있었다. 문밖에서는 부모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낮아졌다 했다.
평안이가 문을 닫아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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