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가 내 몫입니다
오후 네 시가 가까워진다.
사무실 시계의 분침이 퇴근 시간을 향해 간다. 오늘은 2027년 예산편성과 관련하여 모든 실국이 의견을 보고하는 날이다. 기획조정실장은 각 실국의 의견을 듣고 전체 예산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
보고가 끝날 무렵이면 내 퇴근 시간이 지나 있을 수 있다. 회의가 끝난 뒤 위에서 새로운 지시가 내려올 수도 있다.
예전의 나라면 자리에 남았을 것이다.
혹시 나를 찾을까 봐, 갑자기 확인할 일이 생길까 봐, 내가 먼저 퇴근한 것을 누군가 못마땅하게 생각할까 봐 컴퓨터 화면을 켜둔 채 기다렸을 것이다.
할 일이 없어도 대기했다.
내가 없어도 되는 자리에서 마음을 졸였다.
그러나 오늘 회의에는 과장님 이상만 참석한다. 나는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의견서를 이미 제출했다. 필요한 내용은 정리했고, 이후 확인할 일은 팀 직원에게 위임했다.
내 역할은 여기까지다.
새벽 여섯 시가 조금 넘어 사무실에 도착했다. 유연근무에 따른 나의 근무시간은 오후 네 시까지다. 오늘도 내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했다.
그런데도 마음 한쪽이 불편하다.
‘조금 더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회의가 끝날 때까지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팀장이 먼저 가도 될까?’
몸에서는 그만하라는 신호가 삑삑 울린다. 머리가 무겁고 기운이 떨어진다. 눈과 귀도 쉬고 싶다고 한다.
그러나 오래된 나는 몸의 경고음보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먼저 들었다.
‘나는 맡은 일을 끝까지 해내는 사람입니다.’
그 말을 증명하고 싶었다. 누군가 나를 무바카라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싫었다. 손가락질도, 못마땅한 눈총도 견디기 어려웠다.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충성된 사람이라고 믿었다.
오늘 말씀을 펼치니 모세가 마지막 노래를 마친다.
“너희 민족들아 주의 백성과 즐거워하라 주께서 그 종들의 피를 갚으사 그 대적들에게 복수하시고 자기 땅과 자기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시리로다.”
— 신명기 32장 43절
모세의 노래는 이스라엘의 배반과 하나님의 심판을 지나 속죄의 은혜에 도착한다. 백성은 하나님을 잊었지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신다.
죄를 심판하시고 대적에게 갚으시며, 마침내 자기 땅과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신다.
구원은 이스라엘이 끝까지 잘 해냈기 때문에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은혜다.
모세는 이 노래를 혼자 간직하지 않는다. 온 이스라엘에게 들려주고, 그 말씀을 마음에 두어 다음 세대에게 전하라고 한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증언한 모든 말을 너희의 마음에 두고 너희의 자녀에게 명령하여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
— 신명기 32장 46절
모세가 남길 것은 자신의 자리가 아니었다.
말씀이었다.
자신이 없어도 백성이 살아가도록, 자신의 목소리가 멈춘 뒤에도 다음 세대가 길을 잃지 않도록 말씀을 넘겨준다.
그리고 말한다.
“이는 너희에게 헛된 일이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니.”
— 신명기 32장 47절
말씀은 장식이 아니다.
시간이 남을 때 읽는 교양도 아니다.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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