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를 위한 디자인에서 문제를 위한 디자인으로
먼저 용어를 하나 정리하고 시작한다.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사고'는 장작불을 바라보며 떠올리는 덧없는 생각이 아니다. 어려운 문제를 마주하고 '이걸 어떻게 해결하지'를 고민하는 사고, 즉 문제 해결을 위한 사고다.
회사에서 하는 일은 사실 이 사고의 연속이다. 회사의 각 조직과 사람들은 회사의 상품과 서비스가 시장에서 생존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 끊임없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 매출이 올라도 더 성장하기 위한 문제가 생기고, 떨어졌다면 말할 것도 없다. 우리가 '일한다'고 부르는 것의 실체는 조직 안의 사람들이 저마다 맡은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이다.
호텔 예약 서비스를 운영하는 회사를 상상해 보자. 어느 순간부터 사용자가 줄어들고 있다. 경쟁사가 호텔들의 예약 순위 기능을 내놓으면서, 고객들은 그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경쟁사로 이동하고 있다는 정황이 확인됐다. '고객이 줄어드는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제 이 회사의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 데이터 분석가는 각자의 자리에서 이 문제를 풀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문제의 해결 방법은 하나가 아니다. 경쟁사와 똑같은 기능을 추가할 수도 있다. 반대로 새로운 디자인을 적용하고, 복잡한 결제 단계를 과감히 줄여 서비스를 더 편리하게 사용하도록 만드는 것이 해법일 수도 있다. 화면에 넘쳐나는 불필요한 정보를 덜어내는 쪽이 답일지도 모른다. 마케터와 함께 파격적인 프로모션을 기획하거나 고객센터의 품질을 높이는 등, 앱 화면 밖의 전략이 고객의 마음을 돌리는 더 효과적인 길일 수도 있다.
우리가 마주하는 문제에 답이 없는 이유는 문제를 둘러싼 조건과 판단 기준이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시장이 변하고, 경쟁자가 변하고, 고객이 변한다. 오늘의 문제는 내일이면 같은 모습이 아니다. 어제의 답을 그대로 오려 붙일 수 없으니 우리는 매번 새로 사고해야 한다.
그래서 문제 해결 사고의 핵심은 다양한 선택지 앞에서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에 스스로 답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사고의 과정을 구성하는 데 있다. 이것은 디자이너나 분석가만의 일이 아니다. 어떤 직군이든, 어떤 업무든, 답이 없는 문제 앞에 선 사람에게 필요한 힘이다.
이제 내가 디자인을 이해하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이야기해 보자.
박사 과정에 들어가기 전까지 나에게 디자인은 정보를 시각화하는 일이었다. 데이터 분석으로 도출한 인사이트를 차트와 대시보드로 보여주는 것. 디자인은 데이터 분석이 끝난 뒤, 결과를 더 명확하고 보기 좋게 전달하는 기술에 가까웠다. 마치 데이터를 위한 디자인이었다.
디자인에 대한 생각이 넓어진 것은 박사 과정의 '디자인 사고' 수업에서였다. 그 수업을 통해 '사고'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생각'으로, 여기서 연결되어 '디자인 사고'를 '디자이너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고'로 이해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말이 되풀이되는 것처럼 들렸지만, 곧 내가 공부와 일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달라졌다.
무술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태권도, 유도, 검도는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몸을 단련하고 힘을 사용한다. 학문도 마찬가지다. 엔지니어는 엔지니어링의 지식과 기술로 문제를 풀고, 슬롯과학자는 사람과 슬롯를 관찰하고 해석하는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한다. 특정 학문을 공부하는 것, 우리가 특정 영역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지식을 외우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학문이나 전문 영역이 오랫동안 다듬어 온 문제 해결 방식을 훈련하는 일이다.
디자인에도 문제 해결을 위한 여러 사고방식이 축적되어 있었다. 그중 널리 알려진 과정이 사용자를 관찰하고 공감하며, 문제를 정의하고, 아이디어를 확산하고,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시험하는 방식이다. 물론 모든 디자이너가 언제나 이 순서를 그대로 밟는 것은 아니다. 이 과정은 디자이너의 머릿속을 하나의 절차로 고정한 규칙이 아니라, 디자인이라는 분야가 축적해 온 다양한 사고의 경로 중 하나다.
이 관점에서 지난 일을 돌아보니, 내가 익숙했던 데이터 분석과 디자인적 사고는 문제를 정의하는 출발점부터 달랐다.
먼저, 내가 실무에서 해 온 데이터 분석적 사고는 문제 정의에서 시작해 데이터 전처리, 분석과 시각화, 대시보드 개발과 인사이트 전달로 이어졌다.
물론 데이터 분석의 문제 정의는 중요하다. 현장에서 주어진 문제를 데이터로 측정하고 검토할 수 있는 질문으로 바꾸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회사의 성장을 지표로 확인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원인을 근거를 바탕으로 분석할 수 있다. 회사가 성장을 판단하고 다음 행동을 정하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이다.
하지만 내가 마주한 현장에서는 그보다 한 단계 앞에서부터 막혔다. 사용자가 언제나 자신의 문제를 데이터의 언어로 바꿔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만약 데이터가 없어서 문제 정의를 못 하겠다고 하면, "어떤 데이터가 더 필요합니까?"라고 묻기도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한 설명보다 '어떤 데이터와 화면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에 가까웠다.
원하는 산출물을 말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분석가가 그 요구를 곧바로 문제 정의로 받아들이면, 실제 문제는 건드리지 못한 채 요청받은 화면만 만들 위험이 있었다.
의사와 환자를 떠올려보자. 환자가 배가 아프다며 소화제를 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의사는 그 요청만 듣고 곧바로 약을 건네지 않는다. 언제부터 어디가 어떻게 아팠는지 묻고, 다른 증상과 검사 결과를 함께 살피며 원인의 가능성을 좁힌다. 소화제는 환자가 떠올린 하나의 해결바카라이지, 통증의 원인을 곧바로 보여주는 진단은 아니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현장에서 문제를 정의하는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화면을 만들어 주세요'라는 요구 역시 사용자가 떠올린 하나의 해결바카라이다. 그것이 실제 문제에 맞는 답인지 판단하려면, 무엇을 판단하기 어렵고 어떤 행동을 바꾸려는지 사용자와 함께 확인해야 했다. 그런데 그 진단에 필요한 업무 과정과 목표, 조직의 배경과 이해관계는 요구 사항만 들어서는 드러나지 않았다. 따로 묻고 관찰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었다.
나에게 디자인적 사고에서 말하는 공감이 이 빈칸을 채우는 방법으로 느껴졌다. 디자이너들의 공감하는 사고는 사용자가 말한 결과물에서 멈추지 않고, 사용자를 관찰하며 업무의 배경과 맥락을 더 수집하는 일이었다.
그때부터 대시보드도 다르게 보였다. 분석이 끝난 뒤 내놓는 결과물이 아니라, 누군가 자신의 업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하는 하나의 프로덕트였다. 내 역할 역시 대시보드를 대신 만들어 주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각자의 업무를 문제로 정의하고, 자신에게 적합한 데이터와 기술을 선택해 해결할 수 있도록 사고의 방법을 전하는 일까지 넓어졌다.
나에게 디자인의 의미도 달라졌다. 이전에는 비시각적인 데이터와 정보를 사람이 더 쉽게 인지하고, 이해할 수 있는 차트와 화면으로 바꾸는 일이었다. 이제는 사용자의 상황에 공감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문제를 정의한 뒤, 해결 가능성을 실제 형태로 만들어 시험하는 문제 해결 방식의 '사고 방식'으로 정의하게 되었다.
'데이터 기반 문제 해결에 웬 디자인이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데이터 직군에서 발견한 빈칸은 더 정교한 분석 기술이 아니라, 누구의 문제를 풀고 있는지 묻는 사고였다. 디자인은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한다.
나에게 디자이너라는 사람들은 백지에서 납득할 수 있는 무언가를 그려내는 사람들이었다. 즉 디자인이란, 정답이 없는 상태에서 사람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구체화하는 영역이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완성되기 전까지 말과 글만으로 온전히 묘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듣는 사람마다 서로 다른 모습을 상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자이너에게는 처음부터 이중의 과제가 있었다. 정답이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왜 이렇게 그렸는가'를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하는 것.
이 이중의 과제는 데이터로 다룰 문제를 정의하는 일부터 쉽지 않은 현실에서 우리가 마주한 과제와 닮아 있었다.
수학에는 증명이 있고, 과학에는 실험이라는 강한 검증 규칙이 있다. 물론 수학과 과학도 학창 시절의 시험 문제를 벗어나면 스스로 질문을 찾으며, 답이 없는 문제를 다루게 될 것이다. 다만 디자인에서는 무엇을 좋은 결과로 볼 것인지, 누구의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지까지 문제의 일부가 되는 경우가 많다.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것,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것,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매번 다르고 정답지는 어디에도 없다. 이런 조건에서 계속 결과물을 만들어 온 사람들은 답이 없는 상태에서 판단 기준을 세우고 납득할 만한 결론에 도달하는 사고를 단련해 온 것이다.
디자인 연구자 리처드 뷰캐넌(Richard Buchanan)은 1992년, 앞 장에서 만난 리텔과 웨버의 '답이 없는 문제'를 디자인 사고의 관점에서 확장해 논의했다. 디자인이 다루는 문제는 그 조건과 경계가 처음부터 확정되어 있지 않으며, 문제를 어떤 관점으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가능한 해법도 달라진다고 보았다. 이 관점에서 보면, 디자인은 정답을 장식하는 일이 아니라 답이 없는 문제에서 납득 가능한 판단의 형태를 만드는 일이다. 디자인 업계 밖의 다양한 산업과 직무에서 디자인 사고와 같은 방법론이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 디자인 사고는 그림 그리는 법이 아니라, 문제 자체가 명확히 정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문제를 구체화하고 창의적이면서도 납득 가능한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