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데이터에 다른 형태를 설계한 이유
디자인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면서 내 업무 방식과 결과물도 바뀌었다.
새로운 대시보드를 개발하게 되더라도 데이터를 보기 전에 과거 회의록을 찾아 읽고, 사용자의 업무와 반복되는 질문을 먼저 살폈다. 사용자가 어느 팀에 속해 있고, 어떤 사업 계획과 목표 아래에서 일하는지 이해하려 했다. 요청한 팀에서는 당장 필요한 것부터 빨리 만들어 달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배경과 조건에 따라 같은 요구를 해결하는 방향이 달라질 수 있고, 결과물의 형태 자체가 바뀔 수도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나는 대시보드라는 형태에도 의문을 품게 되었다. 꼭 대시보드여야만 할까? 사용자에 따라 다른 형식이나 결과물이 데이터와 인사이트를 활용하는 데 더 적합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직의 맥락에 맞춰 결과물의 형태부터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비즈니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시보드는 사용자가 질문을 가지고 직접 탐색할 때 온전히 작동한다. 지역을 바꾸고, 기간을 좁히고, 이상한 지점을 발견한 뒤 다시 세부 조건으로 내려가야 한다. 인쇄된 보고서와 달리 최신 데이터를 유지하고, 질문에 따라 보고 싶은 범위를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대시보드는 분명 강력한 도구다. 다만 질문 없이 화면을 연 사람에게 다양한 인터랙션은 활용할 기능이 아니라 신경만 쓰이는 거추장스러운 버튼이나 기능이 되기 쉽다. 이 경우 대시보드는 탐색 도구보다 정해진 지표를 확인하는 모니터링 도구에 가까워진다.
당시 내가 있던 조직도 사용자가 스스로 질문을 만들며 대시보드를 탐색하는 문화가 충분히 자리 잡지 않은 곳이었다. 여기서 디자인적 사고의 질문이 생겼다. 애당초 사용자에게 대시보드가 적합한 형태였을까? 우리가 꼭 대시보드를 고집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스스로 질문을 만들며 탐색할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조직이라면 도구를 먼저 건네기보다, 데이터를 활용해 어떤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는지 하나의 이야기로 보여주는 편이 먼저 아닐까.
그 질문에서 데이터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리포트가 시작됐다. 하나의 비즈니스 질문에서 출발해 필요한 데이터를 비교하고, 발견한 패턴을 설명하고, 다음에 검토할 문제와 행동을 제안하는 흐름으로 연결했다. 텅 빈 지도를 건네며 목적지를 찾아보라고 하는 대신, 먼저 걸어볼 만한 길 하나를 안내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이 결과물을 '인사이트 리포트'라고 불렀다. 질문과 데이터, 맥락과 제언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고, 그 흐름에 맞춰 전달 형식까지 설계하는 방식을 '데이터 내러티브'라고 정의했다. 데이터의 스토리를 찾는 데서 그치지 않고, 독자가 끝까지 따라갈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일이었다. 박사 논문 제목의 초기 초안에도 데이터 내러티브라는 표현이 사용됐다. 실무에서 먼저 시도한 형식이 연구에서 설명해야 할 개념으로 이어진 셈이다.
첫 리포트는 도서를 자주 구매하는 회원 집단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했다. 이들은 지식을 탐구하는 사람들일까. 그렇다면 어떤 행동 패턴을 보일까. 새로운 트렌드에 다른 사람들보다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까. 구매 시간과 상품, 시기별 변화를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고, 주마다 상위 도서가 얼마나 바뀌는지를 새로운 지표로 만들어 가설을 확인했다. 리포트는 실제로 이렇게 시작한다.
"이 분석은 하나의 질문으로 시작했습니다."
해당 집단의 구매 패턴과 채널 경험을 데이터로 탐색하면서 질문을 하나씩 확장했다. 화려함보다 질문의 흐름을 우선했다. 사고 과정을 문장으로 적고, 이해에 필요한 차트를 곁들이며, 문장에서 설명하는 지점을 차트 위에 강조했다. 질문을 따라가다 보니 현상을 넘어 하나의 비즈니스 문제를 정의할 수 있었고, 마지막에는 데이터가 뒷받침하는 전략 제안으로 닫았다.
첫 리포트가 발행된 뒤 회사의 대표가 내게 직접 메일을 보냈다.
"훌륭한 분석 자료 공유해 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꼼꼼하게 보고 의사결정에 잘 활용할게요."
조직의 데이터에서 하나의 문제를 발견해 질문하고, 분석하고, 이야기로 완성한 결과가 팀 밖의 의사결정자에게까지 도달한 순간이었다. 당시 주니어였던 나에게 그 메일은 의미가 컸다. 데이터를 더 많이 보여줘서가 아니었다. 데이터가 무엇을 말하는지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들었을 때, 평소 닿지 않던 독자에게도 데이터가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데이터도 아니었다. 이미 같은 데이터로 지표를 보여주는 대시보드가 존재했다. 달라진 것은 전달의 형태였다. 디자인적 사고를 통해 우리 조직의 맥락과 사용 방식을 살피고, 그에 맞는 형식으로 바꾸기로 판단한 것이다. 그러자 같은 데이터가 더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판단의 근거로 활용되었다.
이 반응을 계기로 인사이트 리포트는 본부의 정기 사업이자 팀의 주요 성과가 되었다. 다른 현업 부서도 관심을 보였다. 이후에는 기존 데이터를 해석하는 데서 더 나아가, 부서의 문제와 맥락에 필요한 데이터를 새로 수집하고 분석 결과를 다음 행동을 위한 제언으로 연결했다. 검색 데이터를 분석한 한 리포트는 외부 기사에서 근거 자료로 인용되기도 했다. 사용자 조사를 위한 예산도 확보해 설문 데이터를 직접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었다. 개인의 시도로 시작한 데이터 내러티브가 조직의 반복 업무가 되고, 다시 조직 밖에서 읽히는 자료로 확장된 것이다.
물론 인사이트 리포트가 절대적으로 대시보드보다 나은 형태라는 뜻은 아니다. 정적인 리포트는 하나의 질문과 해석을 따라가기 때문에, 질문이 바뀌면 대시보드보다 더 빨리 과거의 답이 될 수 있다. 사용자는 그 길밖에 보지 못할 위험도 있다. 데이터를 능숙하게 다루고 스스로 질문을 만드는 조직이라면 대시보드가 아니라 원본 테이블만 제공하는 편이 가장 유용할 수도 있다. 반대로 탐색할 준비가 되지 않은 조직에 아무리 훌륭한 대시보드를 건네도, 질문이 시작되지 않으면 아무 길도 열리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더 많은 기능을 가진 도구를 고르는 일이 아니라, 지금 이 사용자가 질문을 만들고 판단하도록 돕는 형태가 무엇인지 묻는 일이다.
이것이 디자인적 사고를 배운 뒤 내 업무에서 달라진 행동이었다. 대시보드를 잘 만드는 법만 고민하지 않고, 대시보드가 정말 이 조직에 맞는 답인지부터 다시 물었다. 사용자를 위한 디자인은 그들이 요청한 형태를 더 잘 만드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때로는 그 형태를 버리고, 그들이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다른 길을 설계하는 일이다.
지금까지 디자인적 사고는 '누구의 문제인가'를 묻는 관점을 더해 준다고 이야기했다. 이 관점은 해결바카라만 바꾸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사용자를 관찰하고 공감하며 말과 행동, 배경과 맥락을 자료로 모으면 처음 주어진 요구와 다른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창의적인 문제 해결은 번뜩이는 해법을 갑자기 떠올리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문제를 바라보는 틀을 바꾸고, 그에 따라 가능한 해법도 다시 여는 일이다. 디자인 연구는 이 과정에서 문제와 해결이 따로 정해지지 않고 함께 자란다는 점을 보여준다.
우리는 완성된 결과를 보고 그 과정도 깔끔한 일직선이었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문제를 명확히 정의하고 데이터를 순조롭게 수집해 분석한 뒤, 완벽한 제안을 도출했을 것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디자인 연구자 키스 도르스트(Kees Dorst)와 나이절 크로스(Nigel Cross)는 2001년 창의적인 디자인 과정을 관찰한 연구에서 다른 결론을 내렸다. 문제 공간과 해결 공간은 따로 움직이지 않고 함께 진화한다. 해결안을 생각하다 보면 문제를 새롭게 이해하게 되고, 문제를 새롭게 이해하면 다시 다른 해결안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현장의 일도 종종 이렇게 굴러간다. 처음에는 "고객 이탈이 늘었다" 정도의 흐릿한 문제에서 출발한다. 데이터를 보다가 특정 고객군의 이탈이 유독 크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제야 이 문제가 온보딩의 문제인지, 가격의 문제인지, 기대 관리의 문제인지 다시 묻게 된다. 그러면 다시 데이터를 찾아야 하고, 다시 가정을 세워야 하고, 다시 해석해야 한다. 이 반복 속에서 처음과는 다른 문제와 해결바카라에 도달하기도 한다. 좋은 문제 해결은 일직선이 아니라, 질문과 가정과 검증과 판단이 반복되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남은 질문은 분명했다. 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질문을 만들고, 하나의 답으로 좁혀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