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를 보기 전에 무엇을 물을지 정해야 한다
디자인 대학원 박사 과정을 시작한 첫날, '디자인 사고'라는 수업에서 교수님이 칠판에 하나의 질문을 적었다.
"What is thinking?"
생각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언제 생각하는가.
교수님은 생각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디자인 사고에서 말하는 '사고'는 문제 해결을 위한 사고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숫자 문제를 예로 들자.
- '5 + 5 = ?'
생각할 필요도 없이 답은 10이다.
- '17 + 34 = ?'
약간의 암산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 '0.25와 1/3 중 더 큰 수는?'
누군가는 0.25를 1/4로 바꾸고, 누군가는 1/3을 0.333…으로 변환해 비교했을 것이다.
계산이 복잡해질수록 답을 찾는 데 더 많은 생각이 필요하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정해진 답과 풀이의 기준이 있다.
이번에는 비즈니스에서 마주하는 문제를 이야기해 보자.
"작년 대비 매출이 10% 증가했다면, 이 회사의 성과는 좋은 것인가?"
이 질문부터는 답이 하나가 아니다. 시장 성장률에 비해 저조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고, 성과를 판단하려면 이익을 함께 봐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산업의 평균 성장률이 15%였다면 오히려 뒤처진 것이고, 불황기에 10% 성장이라면 선방한 것이다.
다음 질문은 어떨까?
"만약 회사의 매출이 줄었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살펴봐야 할까?"
이 질문에는 정답이 없다. 누군가는 고객 이탈률을 먼저 보겠다고 했고, 누군가는 경쟁사의 가격 전략을 확인하겠다고 했다. 똑같은 상황을 두고도 각자 다른 방향으로 생각이 뻗어 나갔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각한다. 그렇다면 정해진 답이 없는 현실의 문제 앞에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5 + 5 = ?'와 같은 문제는 정해진 답이 있는 문제(Tame Problem)라고 한다. 조건이 명확하고, 풀이 절차가 존재하고, 답이 맞았는지 판정할 기준이 있다. 문제가 먼저 주어지고, 우리는 그 문제를 풀면 된다. 시험 문제, 알고리즘 문제, 정해진 조건 안에서의 정해진 답을 풀어내는 문제가 여기에 가깝다. 우리가 학창 시절 내내 훈련해온 문제이기도 하다.
정답이 존재하는 문제의 세계에서 데이터는 답안지처럼 보이기 쉽다. 숫자를 넣으면 결과가 나오고, 결과를 비교하면 더 좋은 선택지가 드러날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에게 대시보드는 '오늘 보고해야 할 지표'라는 정해진 답을 빠르게 확인시켜 주는 화면이 된다.
그런데 현장의 문제들은 다르다. "고객 이탈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새로운 타깃층을 어떻게 발굴할 것인가" 같은 문제에는 애초에 명확한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답이 없는 문제(Wicked Problem)다.
이 말이 단순히 '어려운 문제'라는 뜻이 아니라는 데 주의해야 한다. 답이 없는 문제는 바라보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문제의 정의부터 달라질 수 있다. 이해관계자마다 무엇이 문제인지 다르게 본다. 해결바카라도 맞거나 틀린 것이 아니라 더 좋거나 나쁜 것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어떤 해결바카라을 실행하는 순간, 그 실행 자체가 다시 문제의 조건을 바꾼다.
이 개념은 도시계획과 슬롯정바카라 분야에서 발전했으며, 호르스트 리텔(Horst Rittel)과 멜빈 웨버(Melvin Webber)의 1973년 논문을 통해 오늘날 널리 알려진 형태로 정리되었다. 두 사람은 슬롯정바카라의 문제가 자연과학이나 공학이 주로 다뤄 온 전통적인 문제와 성격이 다르다고 보았다. 문제를 명확하게 확정하기 어렵고, 언제 해결이 끝났는지 판정하기도 힘들며, 해법은 참과 거짓이 아니라 더 나음과 덜 나음으로 평가된다. 겉으로 비슷해 보이는 문제도 이해관계자와 맥락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해법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두 사람은 이러한 문제를 'wicked problem'이라 불렀다. 이 바카라에서는 이를 '답이 없는 문제'라고 부른다. 반세기 전의 이 진단은 데이터와 AI로 무장한 오늘의 회의실에서도 여전히 되풀이된다.
'고객 이탈'이라는 문제를 해부해 보면 실감이 난다. 이탈률이 올랐다는 숫자는 명확하다. 하지만 그 의미는 관점마다 다르다. 매출 관점에서는 손실이고, 제품 관점에서는 핵심 가치가 전달되지 않았다는 신호이고, 마케팅 관점에서는 애초에 잘못된 고객을 데려온 결과일 수 있다. 고객 입장에서는 그저 더 나은 선택지를 찾은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탈을 줄여야 한다"는 말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어떤 고객의 이탈을 줄일 것인가. 모든 이탈이 나쁜가. 가격을 낮춰야 하는가, 제품을 고쳐야 하는가, 고객을 온보딩하는 방식을 바꿔야 하는가, 아예 고객 유입을 위한 타깃 정의를 다시 해야 하는가. 이 질문들에 하나의 정답은 없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답이 없다는 말은 아무 답이나 가능하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정답이 없기 때문에 더 나은 판단, 더 설득력 있는 근거, 더 바카라임 있는 선택이 필요하다. 답이 없는 문제는 마음대로 풀어도 되는 문제가 아니라, 왜 이 판단이 지금 이 맥락에서 더 타당한지를 설명해야 하는 문제다. 그리고 조직에서 하나의 답을 만들려면 먼저 무엇을 문제로 삼을지 정의해야 한다.
답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을 풀려는지 정할 때 비로소 답도 성립한다.
앞 장에서 본 광경의 원인이 여기에 있었다. 많은 조직이 답이 없는 문제를 정답이 존재하는 문제처럼 대하고 있었다. 질문 없이 데이터와 대시보드를 바라보기만 해서는 답을 얻기 어려웠고, 행동도 시작되지 않았다. 대시보드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숫자를 열심히 보여주고 있었을지 모른다.
여기서 앞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대학원에서 내가 느낀 데이터로부터의 희열과 현장에서 바라본 데이터의 죽음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었나.
나는 오랫동안 자막 연구를 '데이터가 답을 준 경험'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수업을 들으며 그 기억을 다시 해부해 보니, 초점이 잘못되어 있었다.
'자막 규칙이 과연 적절한가'라는 문제에도 정해진 답은 없었다. 그 문제 역시 답이 없는 문제였다. 누구도 나에게 그 문제를 내주지 않았고, 채점해 줄 사람도 없었다. 장면 전환에 따른 자막 규칙의 불편함을 어떤 문제로 정의할 것인지, 시선 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도 결국 내가 판단해야 했다. 다른 것은 딱 하나였다. 그 문제에는 데이터가 등장하기 전에 질문이 먼저 있었다.
번역가 시절부터 품어온 불편함이 질문이 되었고, 그 질문을 풀 방법을 고민하다가 '끝가지 읽지 못하는 현상'을 문제로 정의하고, 시선 데이터를 수집하고, 가설을 세웠고, 검증했다. 시선 데이터는 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내가 고른 도구였을 뿐이다. 질문이 없었다면 아이트래커는 그저 신기한 장비였을 것이고, 시선 데이터는 그저 좌표 데이터에 불과했을 것이다.
반면 죽어간 대시보드 앞의 풍경은 정반대였다. 질문이 시작되지 않은 채, 사람들은 데이터를 바라보며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니 돌아오는 것은 "그래서 어쩌라고?"뿐이었다. 대시보드는 답안지가 아니다. 보는 사람의 질문이 먼저 시작되어야 그제야 읽히는 물건이다. 문제 해결을 위한 대시보드의 가치는 사용자가 숫자를 확인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다음 질문으로 나아가도록 도울 때 생긴다.
순서가 잘못됐던 것이다. 질문이 먼저고, 데이터는 그다음이다. 그리고 그 순서를, 나도 현장에서 잊고 있었다.
이 지점에서 데이터라는 것의 정체를 한 번 더 들여다보고 싶다.
데이터는 흔히 현실을 보여주는 창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데이터는 창이라기보다 발자국에 가깝다. 발자국은 누군가 지나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걸음의 방향도 어느 정도 짐작하게 해준다. 하지만 그 사람이 왜 그 길을 택했는지, 어디로 가고 싶었는지, 그 길이 최선이었는지까지 말해주지는 않는다.
데이터도 마찬가지다. 데이터는 현실의 일부를 관찰하고 측정해 남긴 흔적이다.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기록할지는 관점과 측정 방식, 수집 환경, 목적의 영향을 받는다.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현실의 일부가 특정한 방식으로 잘려 나와 기록된 것이다.
이 말을 데이터가 부정확하다는 뜻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오히려 정확하게 측정된 데이터라도 그 의미가 저절로 정해지지 않는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어떤 질문에서 어떤 맥락과 함께 읽는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므로, 측정된 수치만으로 답이 없는 문제의 판단을 끝내서는 안 된다. 자막 연구의 시선 데이터는 시청자가 자막을 끝까지 읽었는지를 보여줄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번역 품질이나 장면 몰입감, 플랫폼의 운영 기준까지 판단할 수는 없다. 데이터의 가치는 그 자체로 정해지지 않는다. 어떤 질문을 풀기 위해, 어떤 사고 과정에서 해석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사이트'도 다시 정의된다. 우리는 마치 데이터 안에 인사이트가 숨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충분히 들여다보면 반짝이는 답이 발견될 것처럼. 하지만 엄밀히 말해 인사이트는 데이터 안에 완성된 상태로 들어 있지 않다. 인사이트는 데이터와 질문이 만날 때 생긴다. 어떤 수치가 올랐다는 사실은 발견일 뿐이고, 그것이 왜 중요한지, 어떤 문제와 연결되는지, 어떤 행동을 요구하는지 설명될 때 비로소 인사이트가 된다.
같은 데이터도 어떤 사람에게는 인사이트가 되고,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숫자로 남을 수 있다. 결국 인사이트는 데이터의 속성이 아니라, 질문을 가진 사람이 그 의미를 해석한 결과다.
AWS와 MIT CDOIQ가 함께 발행한 2024년 보고서는 이 문제를 숫자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조사에 참여한 최고 데이터 바카라임자(CDO)와 이에 준하는 직바카라의 응답자 가운데 70%는 조직의 행동과 태도를 바꾸는 일을 가장 큰 도전 과제로 꼽았다. 빠르게 변하는 기술을 꼽은 비율은 24%였다. 적어도 이들에게 더 큰 난관은 기술보다 조직과 사람이었다.
그러니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이라는 익숙한 표현도 다시 읽어야 한다. 그것은 데이터가 의사결정을 저절로 대신한다는 뜻이 아니다. 무엇을 선택하고 그 결과에 바카라임질지는 사람과 조직의 몫이다. 데이터는 판단의 불확실성과 위험을 줄이는 근거로 쓰이고, 그 판단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고 납득시키는 재료가 된다.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판단의 바카라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질문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진다.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에게 많은 데이터는 넓은 지도가 아니라 복잡한 미로다.
데이터는 사고를 돕는 도구다. 사고를 대체하지 않는다.
위와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더 많은 데이터를 참고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데이터는 데이터베이스의 숫자에 한정되지 않는다. 답이 없는 문제를 판단하려면 매출과 접속 기록 같은 정량 데이터뿐 아니라 사람의 말과 행동, 감정, 관계, 배경과 상황도 살펴야 한다.
인터뷰에서 나온 한 문장, 현장에서 반복해 목격한 행동, 어떤 선택이 일어난 상황, 의사결정자가 우려하는 위험도 문제를 이해하는 질적 데이터가 될 수 있다. 데이터베이스의 행과 열이 규모와 패턴을 보여준다면, 이런 자료는 그 패턴이 생긴 이유와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방식을 해석할 단서를 준다.
교실을 보자. "이 학생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에는 정답이 없다. 성취도를 보여주는 점수도 중요하지만, 교사와의 관계, 학생의 성격, 교실의 분위기에 따라 필요한 교육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병원을 보자. 검사 수치는 정밀하지만, 환자가 말하는 증상과 생활사, 진료실에서의 관찰도 판단에 필요한 자료다. 도시를 보자. 교통량과 유동인구는 이동의 규모를 보여주지만,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어느 길을 불편해하고 어떤 공간에 머무는지는 현장에서 듣고 관찰해야 알 수 있다. "이 동네를 어떤 곳으로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둘 다 필요하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데이터에서 문제를 해결할 근거를 찾았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답이 조직 안에서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조직이 사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어떤 바카라임을 지고 무엇을 우려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데이터만 가지고 설득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숫자와 맥락 중 하나를 고르는 일이 아니다. 둘은 같은 현실의 다른 부분을 보여준다. 질문은 지금 어떤 자료가 필요한지를 정하고, 서로 다른 자료를 연결해 하나의 판단으로 좁혀간다.
여기까지가 첫 번째 진단이다. 우리가 마주하는 문제는 답이 없는 문제인데, 우리는 답이 있는 문제를 풀던 방식으로 데이터 앞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답은 질문이 존재할 때 비로소 성립할 수 있다.
진단이 끝났으니 다음 질문은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질문은 어떻게 만드는가. 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 사람은 어떻게 사고해 납득할 만한 답에 도달하는가.
물론 '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 질문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물음에도 하나의 정답은 없다.
나는 그중 하나의 답을 디자인에서 찾았다. 내 데이터 커리어가 시작된 곳이자, 막힐 때마다 해답을 빌려온 곳. 다음 장에서는 왜 디자인적 사고가 이 물음에 대한 나의 답이 되었는지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