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는 충분했지만 사람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 후로 나는 스타트업과 중견기업, 대기업 그룹 조직을 거치며 데이터 분석가로 일했다. 자막 연구에서 느꼈던 그 희열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었다.
새로운 회사의 데이터와 분석 환경을 만나는 것은 즐거웠다. 회사들은 수많은 데이터를 쌓고, 새로운 기술과 소프트웨어를 도입한다. 복잡한 데이터를 정제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통해 가설을 검증하며 정보와 인사이트를 발굴하고, 일부 프로젝트에서는 정교한 대시보드를 사내에 배포한다. 흩어져 있던 데이터를 한곳에 모으고, 매출, 고객의 유입과 전환과 이탈을 한 화면에 보여주고, 필요한 지표를 누구나 빠르게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대시보드는 데이터 기반으로 일하는 조직의 상징처럼 보였다. 이제 감이 아니라 같은 숫자를 보며 회의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의 직감이 아니라, 데이터 기반의 지표를 기준으로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대시보드는 단순한 화면이 아니라, 조직의 일하는 방식이 바뀔 수 있다는 기대를 담은 장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한 광경이 반복됐다.
데이터 조직이 만든 대시보드를 여는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줄었다. 론칭 첫 주에는 팀 전체가 접속했다. 첫 달이 지나면 주간 회의 때마다 화면에 띄웠다. 두 달째에 접어들면서 접속자 수가 눈에 띄게 줄었고, 석 달이 지나기 전에 아무도 그 대시보드를 언급하지 않았다. 새로운 데이터가 추가되어도 사람들의 시선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대시보드는 다시 읽히지 않았다.
사람들은 다시 익숙한 방식으로 돌아갔다. 엑셀 파일을 내려받아 각자의 방식대로 정리하고, 정해진 보고서 형식을 맞추는 데 시간을 썼다. 내가 대시보드에 이미 정리해 둔 데이터를 굳이 다시 뽑아 자기 방식으로 가공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무력감을 느꼈다. 그나마 꾸준히 들어오는 데이터 관련 요청은 특정 데이터를 추출해 달라는 것이다. 그 데이터도 보고 자료에 담기고 나면 끝이었다. 무언가가 새롭게 바뀌는 일은 없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대학원에서는 데이터로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며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이 조직의 데이터는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지 못했을까.
한때는 이것이 우리 조직만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데이터 문화가 아직 자리 잡지 못한 한국 기업의 특수한 상황이 아닐까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했다. 데이터 활용이 앞선 해외 기업에서는 분명 다를 것이라고 막연히 믿고 싶었다.
그 믿음이 깨진 것은 이태원의 한 카페에서였다.
앞서 말한 데이터 시각화 소프트웨어의 커뮤니티를 통해 알게 된 영국의 데이터 분석가를 그곳에서 만났다. 그는 런던에 있는 글로벌 미디어 그룹의 데이터팀에서 일하고 있었다. 나는 그와의 만남으로 해외 조직의 데이터 활용 사례를 들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우리는 데이터 분석가로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데이터를 보는지 이야기하며 각자의 고민을 나눴다. 그러다 대화가 자연스럽게 '사용자'로 향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영국이나 유럽의 조직 문화에서는 데이터나 대시보드를 기반으로 일을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나요?"
영국의 분석가는 잠시 커피잔을 내려놓더니, 웃으며 말했다.
"우리 쪽도 똑같아요. 결국 다들 이러더라고요. '엑셀로 다운로드할 수 있는 버튼 좀 만들어 주세요.'"
엑셀 다운로드 버튼.
런던에서도, 서울에서도, 결국 사람들이 원한 것은 같았다. 수십 시간을 들여 설계한 인터랙티브 대시보드가 아니라 데이터를 자기 손에 쥐고 자기 방식대로 만질 수 있는 엑셀 파일이었다.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언어도 문화도 시장도 다른 두 사람이 똑같은 좌절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스웠기 때문이다.
카페를 나서며 나는 웃음을 거두었다. 이것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은 오히려 나의 고민을 더 깊은 곳으로 끌고 갔다. 물론 대시보드 사용 여부만으로 조직의 데이터 문화나 성숙도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 이면에는 더 근본적인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다고 느껴졌다.
문제는 사실 사람들이 대시보드를 열지 않는다는 데만 있지 않았다. 매일 열리는 화면이라도 질문과 판단,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사고의 도구로서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대시보드'의 본래 목적은 무엇일까.
대시보드(Dashboard). 이 말은 말발굽이 튀긴 진흙과 물을 막기 위해 마차 앞쪽에 세운 판에서 시작해 자동차의 계기판을 뜻하게 되었다. 데이터 시각화 전문가 스티븐 퓨(Stephen Few)는 대시보드를 하나 이상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핵심 정보를 한 화면에 모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한 시각적 표시라고 정의했다. 여전히 유효한 정의다. 적어도 모니터링 대시보드는 현재 상태를 빠르고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운전석에 앉은 사람은 계기판을 통해 속도, 연료량, 엔진 온도 같은 차량의 상태를 한눈에 파악한다. 그리고 판단한다. 지금 주유해야 할까. 속도를 줄여야 할까.
계기판이 수십 년째 유사한 모습으로 살아남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계기판이 답하는 핵심 질문은 운전하는 동안 반복되고, 시간이 지나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지금 얼마나 빠른가. 연료는 얼마나 남았는가. 모니터링 대시보드가 오래 사는 이유다.
반면 비즈니스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시보드는 다르다. 상황에 따라 문제의 조건과 질문이 바뀐다. 그러니 같은 대시보드가 계속 쓰이기를 기대하기보다, 새로운 질문에 맞춰 화면도 바뀌거나 다시 만들어져야 한다. 조직에서 데이터에 대한 새로운 질문도, 이를 확인하기 위한 대시보드에 대한 요구도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면, 문제가 모두 해결되었다기보다 새로운 문제를 충분히 들여다보고 있지 않은 것일 수 있다.
새로운 질문을 담지 못한 대시보드는 사용자의 다음 행동을 제안하기 어렵다. 아무리 정교하고 아름다운 화면도 그 간격을 저절로 메워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화려한 대시보드 앞에서 경영진과 실무자가 내뱉는 첫마디는 감탄사가 아닐 때가 많다.
"그래서 어쩌라고? (So What?)"
정리해 보자. 기업은 데이터를 쌓고, 전문 조직을 꾸리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데이터를 편하게 볼 수 있는 대시보드도 만든다. 그런데 내가 거친 여러 기업에서는 시간이 지나도 많은 사람의 업무 방식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 문제 해결을 기대하며 만든 대시보드조차 주요 지표를 확인하고 복사해 보고하는 데 머문다.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거나 논의하는 모습은 드물다.
그렇게 처음 기대했던 역할을 잃은 대시보드는 죽어간다. 데이터를 전담하던 팀 자체가 축소되거나 심지어 해체되는 경우도 있다. 여러 가설을 검증하고 가능성을 발견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쓰여야 할 데이터팀의 시간과 비용이 의도한 변화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데이터팀이 약해지거나 사라지는 장면을 볼 때마다 이것을 팀의 역량 문제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느꼈다. 적어도 내가 본 조직에는 데이터가 있었고, 대시보드도 있었고, 때로는 정교한 분석도 있었다. 다만 그 결과가 조직 안에서 질문과 토론, 판단과 실행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정보가 부족했나. 데이터는 어느 시대보다 충분하다. 도구가 없었나. 새로운 데이터 도구는 해마다 등장했고, 기업들은 앞다퉈 도입했다. 화면이 못생겼나. 데이터 분석가들도 디자인 도구를 익혀가며 화면을 다듬었다. 교육이 부족했나. 때로는 소수로, 때로는 대규모로 사람들을 모았고, 현장에서도 사람을 만나며 교육했다. 물론 데이터가 부정확하거나 지표 정의가 흔들리거나 화면이 너무 복잡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문제는 시행착오와 함께 해결될 수 있는 일시적인 문제들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가 나아지더라도 바라보던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 풍경의, 근본적인 원이이 궁금해졌다.
도대체 내가 대학원에서 경험한 그 희열과, 현장에서 마주하는 이 데이터의 죽음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이 질문을 오래 붙잡고 있던 시기에 나는 디자인 박사 과정에 진학했다. 그리고 어느 수업에서 이 죽음의 원인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