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산과 수렴으로 질문 하나를 판단까지 가져가는 법
데이터가 답하지 않았던 이유는 데이터가 부족해서만이 아니었다.
비즈니스에서 마주하는 문제에는 정해진 답이 없고, 무엇을 문제로 볼지조차 처음부터 정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현상을 누구의 문제로 정의할지, 무엇을 더 나은 상태로 볼지 정해야 비로소 데이터에 물을 질문이 생긴다.
그렇다고 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 판단을 멈출 수는 없다. 정해진 답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문제를 집요하게 정의하고, 현재의 조건에서 더 나은 답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나는 그 방법의 힌트를 디자인적 사고에서 찾았다. 사용자를 관찰하고 공감하며, 요구 사항 뒤의 맥락을 살펴 문제를 정의하는 방식이었다.
그렇다면 디자인적 사고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움직이는가. 디자인은 시대와 영역에 따라 다양한 문제 해결 모델과 프로세스를 발전시켜 왔다. 하지만 단계의 이름과 순서는 달라도, 문제와 해결의 가능성을 넓히고 하나의 판단으로 좁혀 가는 공통의 움직임이 있었다.
디자인 연구자 휴 더벌리(Hugh Dubberly)의 『How Do You Design?』은 수십 가지 디자인 프로세스 모델을 모아 비교한다. 1960년대 이후 수많은 연구자가 저마다의 모델을 제안했고, 그 뒤로도 새로운 방법론은 이어졌다. 단계의 이름도, 개수도, 도식도 제각각이다.
이 계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허버트 사이먼(Herbert A. Simon)은 1969년 『The Sciences of the Artificial』 에서 "현재의 상황을 선호하는 상황으로 바꾸기 위한 행동 방안을 고안하는 사람은 누구나 디자인을 한다"라고 썼다. 이 정의에 따르면 디자인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처방을 고민하는 의사도, 정바카라을 설계하는 공무원도, 대시보드를 기획하는 분석가도 현재 상태에서 더 나은 상태로 가는 길을 고안한다는 점에서 디자인을 한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 생각을 각자의 시대와 영역에서 구체적인 절차로 옮겼다. 그 결과 등장한 서로 다른 모델에서도 반복해서 나타나는 움직임이 있다.
바로 확산(Divergence)과 수렴(Convergence)이 이어지는 사고다.
두 움직임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아이디어를 많이 내고 하나를 고르게 해 주기 때문이 아니다. 답이 없는 문제는 무엇을 문제로 삼을지부터 정해져 있지 않다. 확산은 하나의 현상을 여러 문제의 가능성으로 열고, 수렴은 그중 지금 다룰 질문 하나를 선택한다. 그런 다음 다시 해결의 가능성을 넓히고, 현재의 조건에 맞는 답으로 좁힌다. 문제를 정의하는 일과 답을 만드는 일이 같은 두 움직임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답이 없는 상황에서 답이 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던지고 넓히는 것이 확산이다. 아직 답을 하나로 정하지 않고, 가능한 원인과 해석과 대안을 넓게 펼쳐 보는 과정이다. "고객 이탈이 늘었다"는 현상 앞에서 가격, 제품 사용성, 경쟁 서비스, 고객 기대, 온보딩, 고객군의 변화 같은 여러 가능성을 열어 두는 일이 확산이다.
그 가능성 가운데 현재의 근거와 조건에 맞는 판단을 고르는 것이 수렴이다. 모든 가능성을 영원히 열어 둘 수는 없다. 어떤 가능성은 데이터로 검토하고, 어떤 가능성은 조사로 확인하고, 어떤 가능성은 지금 조직의 조건을 고려해 우선순위에서 제외한다. 수렴은 답을 확정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 이 맥락에서 더 타당한 판단을 선택하는 일이다.
도식으로 그리면 넓어졌다가 좁아지는 다이아몬드 형태가 된다.
이 연결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 주는 모델이 영국 디자인 카운슬(Design Council)이 2004년부터 공유한 더블 다이아몬드다. 이 모델은 문제를 찾는 과정과 해결바카라을 만드는 과정에 각각 확산과 수렴을 둔다.
먼저 어떤 현상이 있다고 가정하자. 아직 문제라고 부르지 말자. 그 현상에 대해 사고를 확산한다. 누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 배경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리고 넓어진 가능성 가운데서 지금 다룰 문제 하나로 수렴한다. '이 사람은 이런 상황에서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기까지가 문제의 다이아몬드다.
문제가 정의되면 다시 확산한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리고 수렴한다. '그 방법들 가운데 이 방법으로 가야겠다.' 이것이 해결의 다이아몬드다.
디자인카운슬이 『Design for Public Good』에서 소개한 '더 굿 키친(The Good Kitchen)' 사례를 더블 다이아몬드의 관점에서 읽어 보자. 덴마크 홀스테브로 지방정부는 고령자를 위한 식사 배달 서비스를 개선하려 했다. 디자인 회사 해치 앤드 블룸(Hatch & Bloom)은 곧바로 배달 서비스 화면 개발처럼 해결 과정으로 들어가지 않고, 먼저 문제를 바라보는 사고를 확산한다. 고령 이용자와 주방 직원을 관찰하고 인터뷰하며 식사 경험을 넓게 살폈다. 이 과정에서 맛과 영양뿐 아니라 포장과 색, 식사량과 식사 환경도 살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이용자는 지자체 식사 배달 서비스라는 문구가 크게 적힌 차량이 집 앞에 서는 것을 부끄럽게 느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를 통해, 첫 번째 다이아몬드에서 디자인 과제는 '음식을 더 잘 배달하는 일'에서 '고령자가 선택권과 존엄을 유지하며 식사하도록 돕는 일'로 수렴했다.
두 번째 다이아몬드에서는 앞의 문제 수렴에 따라, '고령 이용자가 배달 대상이 아니라 레스토랑의 손님이라면?'이라는 질문과 함께 해결의 가능성을 다시 넓혔다. 메뉴에 음식을 설명하는 방식, 반찬과 식사량을 고르는 방법, 포장과 배달 차량, 이용자의 의견을 받는 방식과 주방 운영까지 함께 구상했다. 새로운 안을 이용자와 반복해서 시험하고 다듬은 끝에, 선택 가능한 메뉴와 구체적인 음식 설명, 피드백 카드, 새로운 이름과 시각 디자인을 갖춘 '좋은 주방(The Good Kitchen)'이라는 서비스로 수렴했다.
중요한 것은 두 다이아몬드를 지나가며 문제에 대한 관점이 확산되었고, 이를 통해 해결 방법에 대한 사고도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단순히 '배달 서비스 개선'이라는 요구 아래 해결 과정으로 돌입했다면, 온라인 서비스 화면의 레이아웃만 달라졌을 수 있다. 소개한 문제 해결 사고 과정은 단순히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지나가는 절차가 아니다. 우리의 사고가 확산과 수렴을 반복하며, 문제와 해결이 함께 자라는 과정이다.
실제 현장에서 내가 경험한 문제 해결도 그랬다. 하나의 질문을 놓고 여러 가능성을 살펴 판단을 내리면, 그 판단을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다음 질문이 생겼다. 일은 그렇게 질문과 판단이 이어지며 진행되었다. 이제 이 흐름을 이루는 하나의 사고 단위, 질문 하나를 열고 닫는 확산과 수렴의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이 바카라에서는 질문 하나가 확산과 수렴을 거쳐 다음 행동으로 옮겨 갈 판단으로 닫히는 사고 단위를 노드(Node)라고 정의하겠다. 하나의 노드는 위에서 본 마름모 하나로 그릴 수 있다. 질문이 첫 점을 찍으면 사고의 범위가 열린다. 확산은 가능한 원인과 해석과 대안을 넓히고, 수렴은 현재의 근거와 조건에 맞는 판단을 선택하며 마름모의 마지막 점을 찍는다.
더블 다이아몬드의 문제의 다이아몬드와 해결의 다이아몬드도 각각 하나의 노드다. 첫 번째 노드는 '누구의 어떤 문제를 다룰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열려 문제 정의로 닫힌다. 두 번째 노드는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열려 하나의 해법으로 닫힌다. 실제 업무에서는 이 큰 노드 안에 더 작은 질문과 판단이 이어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크기가 아니라, 하나의 질문이 다음 행동으로 옮겨 갈 수 있는 판단에 도달했는지다.
나의 자막 연구 이야기를 이 언어로 다시 보면 구조가 선명해진다. 시작은 '이 자막 기준은 한국어 시청자에게도 적합한가'라는 질문이었다. 인터뷰할지, 설문할지, 이해도를 시험할지, 시선 데이터를 살펴볼지 가능성을 넓혔다. 그 가운데 실제 읽기 행동을 확인할 수 있는 시선 추적 실험으로 좁혔다. 데이터는 질문 이전에 답을 품고 있던 것이 아니라, 열린 노드를 근거 있는 판단으로 닫는 데 쓰였다.
반대로 "매출을 높여야 한다"는 말은 그대로는 노드가 되기 어렵다. 무엇을 살피고 어디에서 판단을 내려야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매출 하락은 신규 고객 감소와 기존 고객 이탈 중 어디에서 비롯됐는가. 이탈이 커진 고객군은 누구인가. 그들은 제품을 사용하는 어느 지점에서 멈추는가. 큰 문제를 이렇게 답할 수 있는 질문으로 나누면, 각 질문에 필요한 데이터와 조사 방법과 판단 기준도 보이기 시작한다.
하나의 노드가 닫히며 얻은 판단은 다음 노드의 질문이 되고, 실제 문제 해결은 그 노드들이 사슬처럼 이어지며 진행된다.
그렇다면 노드 안에서 확산과 수렴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행할 수 있는가. 그 차이는 우리가 질문을 바라보는 박스를 통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