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를 처음 믿게 되었던 순간

자막 연구의 성공이 데이터에 대한 믿음이 되기까지

by장서우

우리는 사람의 거의 모든 행동을 데이터로 남길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어떤 화면을 얼마나 오래 봤는지, 어디에서 스크롤을 멈췄는지, 무엇을 사고 무엇을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는지. 기술은 더 깊은 곳까지 들어간다. 사용자 시선의 궤적을 추적하고, 뇌파도 데이터로 기록한다. 마음이라 부르던 것들이 하나씩 숫자가 되고 있다.


나는 그 사실에 매혹된 사람이었다.


디자인 대학원에 재학하며, 해외 OTT의 자막 규칙이 정말 적절한지 시선 데이터로 검증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생각으로만 품고 있던 불편함이 다른 사람도 납득할 수 있는 데이터로 바뀌는 순간, 나는 거기에 빠져들었다. 감과 직감의 영역으로만 보이던 디자인 문제도 숫자로 풀어낼 수 있다면, 데이터가 풀지 못할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image.png대학원 시절 시선 데이터 연구 논문


그 믿음으로 데이터 직군에서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했다. 비즈니스의 의사결정을 돕는 대시보드를 만들고, 조직 구성원 누구나 데이터를 다룰 수 있게 하는 플랫폼을 기획하고 개발했다. 낮에는 회사에서 데이터와 인사이트라는 이름의 결과물을 만들었고, 밤에는 대학원에서 그 결과물을 더 잘 전달하는 방법을 공부했다. 차트가 범하기 쉬운 오류와 정보가 행동으로 이어지게 하는 설계를 배우고, 다음 날이 되면 실무에 적용해 보았다. 꽤 근사한 순환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자막 연구에서 느꼈던 희열, 데이터가 문제를 해결해 주는 그 감각이 현장에서는 좀처럼 재현되지 않았다. 실무자들이 필요하다고 직접 말한 정보를 담아 대시보드를 만들었다. 직후에는 반응이 좋았다. 하지만 그 관심은 석 달을 넘기지 못했다. 접속자는 줄고, 사람들은 다시 각자의 엑셀 파일을 열었다. 그나마 반복해서 들어오던 데이터 추출 요청도 보고 자료를 채우는 데 쓰일 뿐, 그 뒤의 새로운 문제 해결이나 판단과 행동은 좀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데이터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시대인데, 데이터로 무언가를 해결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정보가 부족한가. 화면이 못생겼나. 교육이 필요한가. 전부 조금씩은 맞았지만, 어느 것도 핵심은 아니었다.


데이터를 신뢰하지 않게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데이터 이외의 무언가를 놓친 기분이었다. 원인을 찾기 위해, 다시 대학원에서의 그 희열부터 들여다보고자 했다.


나는 그 경험을 오랫동안 '데이터가 답을 준 순간'으로 기억했다. 그러나 경험을 거슬러 올라가 보았을 때, 그 시작점에는 데이터가 아니라, 번역가 시절부터 품어온 질문이 있었다. 물론 그 질문의 시작에는 정답도 데이터도 없었다. 데이터는 스스로 답을 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해결하고 싶은 질문으로부터 근거가 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조직의 대시보드에서는 이 순서가 빠져 있었다. 비즈니스의 문제도 하나의 답이 존재하지 않기에, 질문이 시작되지 않으면 우리는 답에 도달할 수 없다. 따라서 질문 없이 화면을 바라본다고 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대시보드는 상태를 보여줄 수는 있어도, 무엇을 문제로 삼고 어떻게 판단할지는 사람의 몫이었다. 질문과 판단이 시작되지 않으니, 화면은 점차 사람들의 일에서 멀어졌다.


답을 찾으려면 먼저 무엇을 해결하고자 하는지부터 시작되어야 했다. 그렇다면 질문은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답까지 끌고 가는가. 이 궁금증 앞에서 나는 다시 디자인으로 돌아갔다. 내 데이터 커리어의 출발점이자, 막힐 때마다 해답을 빌려온 곳이다.


image.png백지 앞에서 고민하는 사람


디자인은 답이 없는 문제를 오래 다뤄온 분야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어려움을 관찰해 질문을 만들고, 여러 가능성을 펼친 뒤, 눈앞에 꺼내 시험하면서 하나의 답으로 좁혀간다. 이 바카라에서는 그 반복을 확산과 수렴이라고 부른다. 돌이켜보면 자막 연구에서도 나는 불편함으로부터 문제로 정의하고, 여러 조사 방법 가운데 시선 추적 데이터를 활용하여 가설과 결론으로 좁혀가고 있었다. 내가 느낀 희열의 정체는 데이터 하나가 아니라 그 과정 전체였다.


하지만 디자인적 사고로 문제와 답을 그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조직에서 마주하는 문제는 혼자서 해결하면 될 일이 아니다. 통상 의사결정자 혹은 이 문제 해결의 답을 공유해야 할 대상이 존재한다. 즉, 이 사고를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찾아낸 해법이 조직의 답으로 성립하려면 동료와 의사결정자의 납득을 얻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설득해야 한다. 다행인 것은, 설득도 디자인처럼 감에만 맡기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설득은 공감과 논리와 형태를 다루는 설계가 필요하다.


이 바카라은 그 순서대로 쓰였다. 1부는 데이터가 왜 우리에게 답을 하지 않는지, 그 믿음과 의심의 여정을 다룬다. 2부는 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 어떻게 사고할 것인가를 다룬다. 3부는 찾아낸 답을 어떻게 사람들 사이에서 성립시킬 것인가를 다룬다.


AI에게 질문하면 몇 초 만에 그럴듯한 답을 내놓는 시대다. 하지만 답이 존재하려면 문제가 먼저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 해결하려는 것은 AI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다. 질문이 없다면, 앞서 마주한 조직의 대시보드처럼 곧 사라질 답이 될 것이다. 답을 생산하는 비용은 낮아졌지만, 무엇을 문제로 삼을지 정하고 그 답을 현실에서 성립시키는 일은 더 중요해졌다. 이 바카라은 답이 없는 문제에 답하는 방법, 그 과정을 어떻게 사고해야 할지에 관한 이야기다.


당신의 모니터에도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대시보드가 하나쯤 떠 있다면.

손에 쥔 데이터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

AI를 앞에 두고도 무엇을 물어야 할지 막막하다면.

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 망설이고 있다면.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당신의 것이다.



수학을 좋아했던 학생이 디자인 대학원에 간 이유


고등학교에서는 이과를 선택했고, 대학에서는 슬롯과학을 전공했다. 디자인과는 거리가 먼 경로였다.


학창 시절에는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며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교과서로 배운 지식을 토대로 답을 찾는 수학은 노력과 성실함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반면 미술처럼 백지에 그림을 그리고 점수를 받는 과목은 평가 기준을 알기 어려운 주관적인 영역으로 보였다.


내가 생각하던 디자이너란, 감과 직감으로 무언가를 멋지고 아름답게 만들어내는 사람들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라고 느꼈다.


그런 나에게 어떤 바람이 불었는지, 대학원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게 되었다. 아주 특별한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감과 직감이라는 영역을 직접 배워보고 싶었고, 그런 사람들과 만나고 싶다는 생각 정도였다. 수학과 통계의 언어로 살아온 사람이 언어가 완전히 다른 동네로 유학을 간 셈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디자인 대학원은 내가 데이터를 처음으로 '믿게 된' 출발점이 되었다.



오래된 불편함 하나


이야기를 잇기 위해, 먼저 있었던 것을 하나 말해둬야 한다.


대학 시절 나는 영상 번역가로 일했다. 그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국내 방송의 자막은 등장인물의 대사에 맞춰 표시되지만, 내가 작업하던 해외 OTT에는 특정 조건에서 화면의 장면 전환에 맞춰 자막을 끊는 규정이 있었다. 이 조건에 해당하면, 대사 중간이라도 장면이 바뀌면 자막도 잘렸다.


번역 자막을 만드는 입장에서도, 그 자막을 보는 시청자의 입장에서도 그 규정은 불편했다. 대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자막을 잘라야 했다. 시청자는 이걸 다 읽을 수 있을까. 과연 이 규칙이 정말 적절한 것일까. 질문은 꼬리를 물었다.


다만 그때는 확신이 없었다. 나는 자막을 읽는 방식에 직업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것이지, 내가 느낀 불편함이 일반 시청자에게도 똑같이 나타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디자인의 문제는 종종 이런 모습으로 시작된다. 분명히 불편한데, 그 불편함이 개인의 취향인지, 더 많은 사용자의 경험에 영향을 주는 문제인지, 시스템의 규칙이 만든 문제인지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저는 이 방식이 불편합니다"라는 말은 문제 제기일 수는 있어도, 규정을 바꿀 만큼 다른 사람을 움직이지는 못한다.


그때는 이것이 그냥 직업적 투덜거림인 줄 알았다. 몇 년 뒤 이 불편함이 내 커리어의 방향을 바꾸는 질문이 될 줄은 몰랐다.



자막이 사라지는 순간


사람의 시선을 추적하는 기술이 있다. 아이트래킹(Eye Tracking)이라 불리는 이 기술은 전용 안경이나 특수 카메라를 통해 사용자가 화면의 어느 지점을 얼마나 오래 바라보는지 기록한다.


석사 과정에서 만난 지도교수님은 디자인을 전공하고 비즈니스 현장에서도 마케터로 일한 경험이 있으셨다. 당시 교수님이 집중하던 연구 주제가 바로 아이트래킹이었다.


"디자인은 주관적이라고 말하지만, 시선과 같은 데이터를 근거로 제시할 수 있다면, 왜 이 디자인이 필요한지 설명하는 일은 훨씬 쉬워집니다."


디자인과 데이터를 함께 다루시는 교수님의 이야기, 특히 이 한마디가 나의 세계를 뒤흔들었다. 감각과 근거 사이를 연결하는 도구. 시선 데이터는 나에게 그렇게 보였다. 오래 품고 있던 그 질문을 시험해 볼 방법이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자막 규정에 대한 의문을 시선 데이터로 검증해 보기로 했다. 접근은 단순했다. '시선이 자막 끝까지 도달하지 못했다면, 다 읽지 못했다고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장면 전환 규칙이 적용된 자막을 본 그룹과 그렇지 않은 그룹의 시선 패턴을 비교했을 때, 두 그룹의 읽기 패턴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지 않을까. 가설이 섰고, 실험을 설계했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막과 영상을 보여주고, 실험을 하고, 분석한 결과, 장면 전환 규칙이 적용된 그룹에서는 실제로 자막을 끝까지 읽지 못하고 시선을 잃는 상황이 비교적 더 많이 나타났다. 두 그룹의 시청 패턴에도 차이가 있었다. 이제 내가 불편하다고 느꼈던 장면이,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장면 전환 규칙이 자막을 읽는 시선의 흐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근거가 나타난 것이다.


내게는 감각으로만 붙들고 있던 불편함이 시선 데이터로 증명된 순간이었다.


이 경험은 강렬했다. 통상 디자인은 오랫동안 감각과 직관과 해석의 영역으로 이해되고 있다. 물론 디자인 연구와 사용성 평가는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여전히 많은 현장에서 디자인 판단은 "좋아 보인다", "불편해 보인다", "이게 더 자연스럽다" 같은 감각의 언어로 설명되곤 한다. 그런데 시선 데이터는 달랐다. 사용자가 어디를 보고, 어디에서 시선을 잃고, 어떤 순간에 정보를 놓치는지 보여주었다. 이 데이터는 내가 느끼던 불편함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되었다.


감과 직감의 영역이라고만 생각해 왔던 디자인의 문제도 데이터로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다고 믿었다. 개인의 감각 너머에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근거의 언어가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는 데이터에 빠져들었다. '디자인의 문제도 데이터로 해결할 수 있다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믿음은 나의 거대한 착각의 시작이었다.



현장으로


디자인 대학원에서 데이터에 매혹된 경험은 곧 현업으로 이어졌다.


세 번째 학기가 끝날 즈음, 나는 플랫폼 서비스를 운영하는 스타트업으로 이직했다. 회사에서 운영하던 애플리케이션과 웹사이트에는 데이터가 매일 쌓이고 있었다. 사용자의 접속 이력, 어떤 화면을 보았는지, 스크롤을 얼마나 내렸는지, 어디에서 머물렀고 어떤 버튼을 눌렀는지. 당시 Google Analytics와 Google Tag Manager 같은 도구 덕분에 개발자가 아니어도 이런 행동이 데이터로 쌓이도록 설정할 수 있었다.


대학원에서 접했던 시선 데이터가 흥미로웠다면, 산업 현장에서 만난 데이터는 또 다른 종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사용자는 얼마나 자주 로그인할까. 어떤 성별과 연령대가 많을까. 어느 지역에서 주로 접속할까. 데이터를 조회하고 분석하면서 내가 궁금한 것을 누구보다 빠르게 확인하는 일은 작은 특권이자 즐거움처럼 느껴졌다.


회사에서도 디자인을 공부한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공부가 이력 한 줄에 그치지 않도록 결과로 보여주고 싶었다. 디자인을 전업으로 하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디자인 전반을 잘한다고 자신할 수는 없었지만, 데이터 시각화와 대시보드 개발만큼은 어떤 데이터 분석가보다도, 어떤 디자이너보다도 잘하고 싶었다. 그 욕심은 이후 몇 년간 나를 이끌었다. 여러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개인 시간까지 들여 파고들었다. 전 세계 사용자가 쓰는 데이터 시각화 소프트웨어의 포럼에서 국내 최다 답변자가 되었고, 나중에는 그 소프트웨어의 앰버서더로도 선정되었다. 조금씩 자신감이 붙었다. 디자인의 언어와 데이터의 언어를 모두 쓸 수 있다는 것이 비로소 나의 무기처럼 느껴졌다.



"우와."


라인 차트는 시간에 따른 매출과 사용자 수를 보여주고, 잘 정돈된 파이 차트는 사용자의 구성을 펼쳐 보였다. 여러 지표가 한 화면에서 조화를 이룬 대시보드는 내 눈에 예술 작품 같았다. 사람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우와."


그 한마디가 주는 쾌감은 컸다. 내가 밤새워 만든 결과물이 동료들에게 인정받는 순간. 복잡한 데이터가 한 장의 화면 위에서 질서를 갖추는 순간. 나는 이 일이 좋았다.


숫자가 차트로 변하고, 차트가 대시보드로 완성되어 회의실 스크린에 띄워지는 과정. 나는 그때 처음, 그 과정을 설계하는 일이 내 역할일지도 모른다고 진지하게 생각했다. 데이터의 놀라움과 즐거움, 그 가능성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 그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믿음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것이었다. 데이터는 실제로 강력했다. 적어도 자막 연구에서 데이터는 내가 품고 있던 질문을 더 명확하게 만들어주었고, 개인의 감각에 머물던 문제를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근거로 바꾸어주었다. 데이터는 나를 도와주었다. 그러니 데이터가 더 많아지면 더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지는 게 당연했다.


그때의 나는 더 많은 사람이 데이터를 이해하도록 돕고, 눈앞에 보여준 데이터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리라 믿었다. 조직도 데이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직 역시 내가 대학원에서 그랬듯 데이터로 답을 찾으며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 같았다. 좋은 데이터를 보여주면 사람들은 이해하고, 이해하면 행동할 것이라고.


그 믿음이 무너지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