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강물은 없다

도쿠시마#1

by설빛

몇 번이나 의식이 끊겼다 돌아오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일본이었다.

낯설고도 익숙한 일본 특유의 냄새가 났다.

오랜만에 일본에 왔다는 실감은 잠시뿐이었다.

QR 코드에 오류가 생겨 두 번이나 수정한 끝에 겨우 입국심사를 통과했다.


도쿠시마에서 제공하는 무료 버스권이 어느샌가 모바일로 바뀌어 있었다.

안내 데스크에 몇 번이나 물어 겨우 사용방법을 알아냈다.

일본어로 물어봐도 직원은 자꾸만 영어로 답했고, 일본식 영어를 알아듣지 못해서 한바탕 진땀을 뺐다.


비행기에 이어 공항버스에서도 창문과 멀어졌다.

옆자리 사람은 창가에 비스듬히 기대 카메라에 고즈넉한 분위기를 담기 시작했다.

나는 한 자리 건너 창 밖의 풍경을 눈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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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시마 역에 도착하자마자 호텔로 달려갔다.

크루즈를 계획한 시간에 타려면 서둘러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른쪽에 펼쳐진 탁 트인 강이 발을 멈추게 했다.

몇 초간 넋 놓고 움직이지 못하다가 이럴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호텔로 가 체크인을 재빠르게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초행길이라 헤맬까 봐 부리나케 달려갔는데 알고 보니 호텔 가던 길에 넋 놓고 바라보던 그곳이었다.


승차 10분 전에 무사히 도착했다.

잠시 대기해 달라는 말에 털썩 자리에 걸터앉았다.

사람은 많지 않았다.

네댓 명의 가족과 나뿐이었다.

타들어 갈 듯한 햇빛도 임시 그늘막 아래에서 제 힘을 펼치지 못했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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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개비가 바람에 맞춰 움직였다.

평화로운 순간이었다.


고개를 돌리니 지장에 대한 현수막이 바로 옆에 붙어 있었다.

무려 높이가 4.19미터인 지장이 있다고 한다.

홍수 때 지장상에 많은 흙이 덮여 죄송한 마음이 든 마을사람들이 홍수로 물이 차오르는 지점보다 높게 만들었다고 한다.

덕분에 물이 어디까지 차오르는지 가늠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잠깐 주위를 구경하고 있으니 금방 탈 시간이었다.

안전을 바카라임져 줄 조끼를 입고 크루즈에 올라갔다.

함께 탄 대만 가족이 감탄사를 연발했다.

본의 아니게 가족들 사이에 끼게 되어 괜스레 어색했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바깥 풍경을 바라봤다.


크루즈가 조금씩 움직였다.

감미로운 피아노 소리와 함께 낯선 마을을 가로질러 나갔다.

크루즈는 빠르게 나아가다가도 속도를 늦추곤 했다.


유난히 하늘이 잘 보였다.

일본은 대개 한국보다 건물이 낮지만 도쿠시마는 한층 더 낮은 듯 보였다.

건물도 건물이지만 다리가 상상 이상으로 낮았다.

낮은 다리를 지나갈 때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


옆자리의 간 큰 남성분은 고개를 빳빳하게 세웠다.

아슬아슬하게 지나치는 걸 보고 안심했지만

다른 다리는 더 낮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겁이 나서 다리를 지날 때마다 몸을 웅크렸다.


크루즈는 강 위를 활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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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물살을 가르며 지나간 자리에 물보라가 일었다.

보글거리는 거품은 아름다웠다.

무언가의 마찰이 이토록 아름다운 걸 만들어낼 수 있는 거였구나.


약 30분의 크루즈는 생각에 잠기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넘실대는 강을 보고 있노라니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가 떠올랐다.

뱃사공 바주데바는 같은 강물은 없다고 말했다.


크루즈를 운전하는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문득 그가 어떤 생각으로 배를 움직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매번 관광객을 태우고 강을 가로지르는 일을 계속하고 있을 텐데

그 또한 강에서 인생을 배웠을까?

그가 강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물어보지 못한 것이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후회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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