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끝에서 시작하는 여행길

도쿠시마#0

by설빛

정체 모를 꿈에 휩쓸려 가고 있던 새벽, 의식을 되찾은 건 어떤 불쾌함 때문이었다.

어디선가 매캐한 냄새가 났다.

미간을 찌푸리고 이불을 얼굴 끝까지 덮어썼다.

아무리 뒤척거려도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눈꺼풀을 제대로 들어 올리지 못하고 부엌으로 나와보니 까맣게 그을려 있는 정체 모를 무언가가 있었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을 시각이었다.

이른 시각에 출근하는 아버지만이 유일한 용의자였다.

안방으로 들어갔더니 아버지는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상황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아빠, 불 안 껐지? 냄비가 타고 있더라.”

알쏭달쏭한 표정의 아버지.

입을 뗐다가 몰려오는 졸음에 이내 닫다.

“더 자러 갈게.”

발걸음을 옮겨 방으로 돌아갔다.


다시 꿈속에 들어가려고 애썼지만

정체 모를 불길함이 앞을 가로막는 듯했다.

'이번 여행 괜찮을까?'

기우이길 바라면서 눈을 감았다.

지금 자지 못해도 버스 안에서 자면 된다고 되뇌면서.



집을 나서기 전 빠뜨린 건 없는지 확인했다.

며칠간 잠을 설쳐서인지 계속 눈이 감기고 하품도 멈추지 않았다.

혼자 떠나는 여행에서는 의지할 사람이 없다.

'정신 차려야지.'

캐리어를 끌고 공항으로 향했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풀렸다.

걱정이 무색할 정도였다.

비행기 출발 3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했고 수속은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른 점심을 먹고 괜히 사람이 가장 없어 보이는 탑승구를 서성이기도 했다.

여유롭게 탑승구 앞에 도착했는데도 1시간 남짓 남았다.

매번 여행 갈 때마다 고생한 건 대체 무엇이었던 걸까.

이렇게 쉬운 일이었다니.

문제가 생기지 않게 준비를 열심히 한 보람이 있다며 고갤 끄덕였다.


어느 가족의 일상 대화를 배경음 삼아 주워듣고 있자니 금세 탑승 시간이 다가왔다.

이륙을 앞두고 좌석에 앉아 있을 때,

갑자기 코끝에 기묘한 냄새가 스쳤다.

비행기 안에서 나서는 안 될 휘발유 냄새였다.

소동이 일어날 법도 한데 다른 손님들은 조용했다.

기분 탓이겠거니 하고 넘기려고 했다.


그러나 냄새는 한층 진해졌다.

'출발하기 전에 타 죽으려나?'

극단적인 생각이 들 때쯤 안내 방송이 나왔다.

어떠한 이유로 인해 기름냄새가 나지만 문제없다는 내용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냄새는 조금의 시간이 흐른 후 원래 없던 듯 사라졌다.

비행기는 무사히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내 옆자리에 앉은 두 명은 친구인 듯 보였다.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신나게 조잘댔다.

언제나 여행을 떠나기 전이 가장 설레는 법이다.

막상 여행이 시작되면 설렘을 온전히 느끼기 어렵다.

여행 또한 하나의 생생한 삶이기 때문이다.

눈앞의 일을 경험하고 다음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감정은 한발 늦게 따라온다.

나 역시 설레는 마음을 안고 있었지만 앞으로의 일정을 위해 이어폰을 끼고 음량을 키운 채 눈을 감았다.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했다.

흐릿한 기억 속에서 선명하게 남는 건 향기였다.

강하게 시작해서 약해지며 스쳐 지나가는 어떤 달큼한 향.

참을 수 없이 무거워서 비행기가 지면으로 곤두박질치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머물던 향기가 어느샌가 다른 향기로 바뀌었다.

은은하게 구름처럼 떠도는 비누 향이었다.

참을 수 없이 가벼워서 이번엔 끝없이 하늘 위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 같았다.

두 향기는 번갈아 내 코끝을 스쳤다.

어쩌면 비행기는 무거운 향기와 가벼운 향기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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