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옆에 있으면 더 잘할까?

by그냥사탕
8. 엄마가 옆에 있으면 더 잘할까.jpg


<EP 08. 엄마가 옆에 있으면 더 잘할까?>


엄마란 무엇일까?

나에게 엄마란 언제든 전화를 걸어 중요하지 않은 주제로 수다를 떨 수 있는 존재였다. 혹여 딸내미 굶어 죽을까 봐 시골에서부터 커다란 가방에 입구가 터지도록 가득 챙겨 오시는 키다리 할매. 막돼먹은 짜증에도 서로 투닥거리다 결국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실없는 대화를 이어가게 되는 따뜻한 천사. 이렇게 사랑 가득한 보살핌을 받았기에, 나도 내 아이들에게 그런 엄마가 되고 되고 싶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엄마일까?


꼬물이 시절 ‘건강하게만 잘 자라다오’를 마음에 담고 살자며 남편과 약속했었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고’를 중점으로 키웠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너무 잘 먹인 탓에 아이는 건강한 비만이 되었다.

너무 잘 재운 탓에 아침마다 기상 전쟁을 치르고 있다.

또한 너무 잘 놀렸던 탓에 학습에 대한 관심이 사라졌다.


결국 나는 본능에만 충실한 두 어린이를 육아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과연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일까?


내 입장에서는 ‘고작’이었던 미션을 두 시간이 넘도록 해결하지 못했던 큰 아이였다. 하지만 친구와의 약속이라는 새로운 동기 앞에서 30분 만에 과제를 클리어하는 기이한 능력을 보여 주었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이나 같은 상황은 반복되었으니 이제는 양이 많다는 앓는 소리에 넘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거봐, 너는 할 수 있는 아이잖아”라는 칭찬으로 꾸역꾸역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창의력 부족한 애미의 한계를 알고 있는 것일까. 어느 순간 조금씩 칭찬의 약발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아들의 초능력을 마주하고 난 이후 며칠이 지났다.

딱히 놀이 약속이 없었던 첫째는 하교 후 본인이 원하는 만큼 한껏 휴식을 취하고 기분이 좋아져 있었다. 타이밍을 엿보던 나는 그제야 공부할 시간이라는 메시지를 넌지시 건넸다. 빨리하고 마음 편하게 쉬라는 추임새까지 야무지게 넣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들~. 오늘 할 것들 전부 챙겨서 거실로 나와”


그러나 당연하게만 여겨왔던 그 패턴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무심한 듯 툭 돌아왔다.


“엄마, 제 방에서 혼자 할게요”


이 말을 내뱉는 아이에게서는 특별히 비장함이나 진지한 표정 따위는 없었다. 마치 원래 그랬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당황은 온전히 나 혼자서 느껴야 하는 감정이었다.


매번 커다란 식탁에서 꼼지락거리던 아이였다. 그 꼴을 보면서 나는 미어터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최대한 우아하게 경고 비스무리한 것을 날려왔다. 하지만 내가 이것들을 원천 봉쇄하는 ‘혼자’라는 단어는 상당히 묵직하게 다가왔다. 물론 이러한 아이의 독립적인 표현은 분명 기특하게 여겨야 함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인지 모르게 서운함이 몰려왔다. 마치 엄마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었을까.


그동안 ‘너 혼자서 해야지’를 열심히 입에 달고 살았었는데 막상 꼬맹이에게서 그 단어가 튀어나오니 역설적이게도 방어기제가 발동했다.


“정말? 엄마 옆에 없어도 돼? 혼자 할 수 있겠어?”

“네,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보러 나올게요”


“알았어, 대신 집중해서 얼른 하고 나와”


일관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유지하는 아이에게 더 이상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여기서 더 말하면 추잡해지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뜻을 존중한다는 듯 쿨한 척 오케이를 날렸다. 그러곤 뒤도 안 돌아보고 제 방으로 들어가는 아이의 뒤통수를 보았다. 순간 아쉬운 목소리가 마음속에 울려 퍼졌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애를 썼는데... 머리 쪼꼼 커졌다고... 쳇!’


허망할 정도로 갑자기 자유 시간이 주어진 나는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독서를 하겠다고 붙들고 있던 바카라장은 단 한 페이지를 넘어가지 못했다. 그 사이에 엄마를 독점하게 된 둘째가 신이 나 있었다. 자신이 그린 그림에 대해서 그 밑에 설명을 붙이겠다고 옆에 껌딱지처럼 앉아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단어 쓰고 10마디 부연 설명을 하고,

또 한 단어를 쓰고 10마디의 엄마 생각을 물어보고,

다시 또 한 단어를 쓰고 10번의 엄마 칭찬을 요구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으나 그 와중에 혼자 하겠다며 방에 들어간 첫째에 대한 신경은 꾸준히 계속되었다. 잘하고 있는지, 놀고 있는지, 아니면 자고 있는지. 숨 쉬듯 떠들며 나의 손길을 만끽하는 둘째와는 달리 작은 소리조차 하나 없는 아들의 방은 점점 블랙홀처럼 나를 끌어당겼다. 결국 30분이 지난 후에도 소식이 없다는 합리적인 핑계를 들고 생사 확인을 위하여 발걸음을 뗐다.


집중력을 높여주기 위하여 독서실 바카라상으로 선택했는데, 오히려 옆의 벽에 가려서 아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동그란 머리통의 윗부분밖에 보이지 않았다. 자연스레 까치발을 들고 소리하나 없이 방 안으로 잠입하기에 성공했다. 그러곤 아이가 엄마 없이 열중하는 모습을 마주했다. 당연하게도 수학 문제집 곳곳에는 여러 개의 로봇과 무기들이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것들을 틈틈이 그리느라 시간이 지체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섣불리 잔소리를 할 수 없었다. 적어도 자신이 해야 할 미션들을 묵묵하게 해나가고 있었으니 말이었다. 혹여 흐름을 깨버릴까 다시 한번 닌자로 빙의하여 돌아 나왔다. 그 순간에도 엄마의 부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둘째는 빨리 오라며 성화를 부렸다.


두 아이의 서로 다른 온도는 분명 존재했다. 중간중간 삼천포에 빠지는 것을 목격했지만 그럼에도 큰 아이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거리가 생겨났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엄마로서 내가 옆에 있고 싶은 것과 아이에게 엄마가 필요한 순간은 분명 다르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나의 욕심은 이번에도 포기해야 할 듯 보였다.


모든 것이 아직 부족하다 여겨왔다. 그렇기에 그동안 공부 환경을 만들어 주고, 간식, 타이머 등 도움이 된다고 하는 부분들은 최대한 넣어주어 왔다. 그런데 지금은 엄마 없이 방에서 홀로 묵묵히 애쓰고 있는 큰아이를 보았다. 그동안 더하기를 해 왔다면 이제는 조금씩 빼기를 해야 하는 시점일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나도 알고 있었다. 엄마 옆에서 로봇을 그리고 있었더라면 당연하게 잔소리가 등장했었을 것이다. 문제를 풀다 실수를 하면 당연한 듯 그 지적질이 투입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없어도 스스로 자신만의 코스를 꾸려가고 있었다.


“엄마, 저 오늘 할 거 다 끝냈어요”


그로부터 또 한 번의 30분이 흘러가고 있을 때쯤, 약 한 시간가량 칩거 중이던 아들이 거실에 등장했다. 보란 듯이 당당한 표정으로 야무지게 말하는 아이. 친구와의 약속이 있다고 했을 때에 비하여 다소 시간이 지체되었으나 스스로 해냈다는 사실이 기특하게 다가왔다. 분명 그 사이에 알지 못하는 우여곡절이 있었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해냈다. 여전히 엄마 없이 했다는 것에 약간의 서운함은 남아 있었으나 혼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만큼 아이에게 쌓였을 것이다. 때문에 평가는 하지 않고 그저 칭찬으로 훈훈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그동안 여러 번의 도전으로 아이의 스위치는 모두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쯤 되면 프로 도전러 인증이다. 그런데 이번 일을 계기로 엄마와의 거리 또한 아이마다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될 듯싶다. 물론 이 방법이 내일도 통할지는 모른다. 이제 그런 기대는 하지 않기로 했다.


중요한 점은 엄마가 옆에 있는가에 대한 유무가 아니었다. 그 거리가 얼마나 되는가에 대한 초점 또한 아니었다. 필요할 때 손을 잡아줄 수 있고, 혼자 하겠다며 도전할 때 한 발 뒤로 물러설 줄 알아야 하며, 실패했을 때 괜찮다며 돌아올 자리를 만들어 주는 눈치가 더욱 중요해 보인다.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우리는 실수투성이 상태일 것이다. 그럼에도 계속 실수하다 보면 티끌만큼이라도 이러한 눈치가 생기지 않을까. 은연중에 기대를 한 번 해 보게 된다.


오늘의 교훈 : 센스 있는 엄마가 되어 보자!

이전 07화30분이라는 시간 자체가 문제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