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를 줄이면 조금 더 잘할까

by그냥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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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 잔소리를 줄이면 조금 더 잘할까?>

첫 아이를 뱃속에 품고 있었을 때, 나에게는 하나의 로망이 있었다.


‘아들 엄마여도 우아하게 키우고 싶다’


그렇다. 표현은 ‘싶다’라는 공손한 단어를 사용했으나 나름 우아한 아들 맘이 될 것이라는 일종의 마음가짐을 쌓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단 한 가지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는 아들을 가진 엄마였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첫째가 엄청나게 활발하거나 마초 스타일은 아니었다. 적당히 겁이 있어서 슈퍼맨으로 빙의되지 않았으며(대신 로봇은 된다), 아직 사춘기가 오지 않았기에 엄마의 엄한 목소리에 불만은 있어도 대놓고 선을 넘는 반항도 하지 않는 중이다. 그러나 남아 특성상 엄마의 목소리라는 특정 주파수에는 청력이 급격히 떨어지기도 하고, 본인이 좋아하는 분야 외에는 시야조차 한 뼘 수준으로 협소해진다. 나름 큰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 번 이상 같은 말을 하게 될 때면 절로 데시벨이 높아지기도 한다. 나도 사람이니까.


따님은 또 어떤가.

그나마 다행이라는 점은 첫째보다는 눈치를 탑재했다. 그러나 막내딸이라는 프리미엄을 스스로 알고 있다는 점이 복병이었다. 무어라 한소리를 할라치면 맑은 눈에 물방울을 그렁그렁 장착한 채 선수 치기 일쑤다. 그것조차 안 먹힐 듯하면 우리 집 고정 호구님이신 아빠에게 달려가 품에 안긴다. 세상 제일 안쓰러운 고양이 표정으로 올려다보면 그분은 이미 강을 넘은 지 오래다.


상황이 이러한데 내가 어떻게 엘레강스할 수 있겠는가. 진정 내가 문제일까? 몇 번이고 곱씹어 보아도 엄마는 억울하다. 그렇기에 잔소리란 선택 옵션이 아닌, 나의 생존을 위한 필수 불가결인 소지품이었다. 고상함의 꿈은 애초에 접은 지 오래였다.


그런데 아이의 자기주도학습을 도전하면서 유일한(?) 도구에 대한 관점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법에 반드시 잔소리가 포함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부분. 그것은 결코 희망이 아니었다. 의문과 걱정이 압도적이었을 뿐이다.


일요일의 늦은 오후. 두 아이를 끌어안고 침대에서 뒹굴뒹굴하고 있을 때였다. 주말이라고 해야 할 미션도 없었고, 서로 부담 없는 시간이었다. 엎치락뒤치락하며 모두가 한껏 기분이 좋아졌을 때 흐름을 깨지 않으면서 넌지시 물어보았다.


“얘들아, 엄마가 잔소리가 많은 편이야?”

“네!”, “아니요!”


두 아이의 대답이 엇갈렸다. 하지만 뒤이어 큰아이는 두 대답에 모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1부터 10까지라고 했을 때, 엄마가 기분 좋으면 잔소리가 1이고, 기분 안 좋으면 잔소리가 7~8 정도 돼요.”

내가 <지킬 앤 하이드> 박사도 아니고, 기분에 따라 이토록 오락가락이 심할 줄은 몰랐다. 그동안 꼭 필요한 말만 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정도면 이중인격처럼 보였을 듯싶었다. 본인들이 못한 건 생각 안 하고 나한테만 뭐라고 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살짝 억울했다. 하지만 어쩌랴. 물어본 내 잘못이지. 괜히 물어봤다는 생각에 순간 후회가 들었다.


“그럼, 엄마가 이제부터 잔소리 안 하면 너네는 잘할 수 있을까?”

“음.... 물론 안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아주 조금은 해 주셔도 돼요. 1 정도로만요.”


나름대로 양심은 있다고 선심 쓰듯 말하는 그 ‘1’이라는 수치는 그냥 하지 말라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래, 이왕 믿어보기로 한 거 나도 한번 도전해 보자’


아이들과 웃으면서 대화한 것을 갖고 다큐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길게 보면 지금부터 준비하는 것이 맞았다. 내가 그토록 원하는 아이의 독립성이 20세를 기념하여 짠! 하고 나타날 확률은 0%니까 말이다.


1일 차 (월요일)


드디어 시작되었다. 개천절 대체공휴일이라고 남편을 포함하여 모두가 휴일 모드였다. 아침 기상을 굳이 강요하지 않았더니 9시가 넘어서 가족이 일어났다. 그것조차 배가 고파서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이유였다. 아침 겸 점심을 위해 모두가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하는 자리에서 나는 선언했다.


“나는 오늘부터 잔소리하지 않겠어!”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아이들은 당연히 남편은 어불성설, 첫째는 의심, 그리고 막내는 환호. 과연 누구의 촉이 정확할까. 솔직히 그렇게 내뱉기는 했지만, 스스로도 자신감이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하랴. 일단 입 밖으로 튀어 나간 것을. 이런 내적 불안감이 드러났을까. 기특한 아들이 나름의 추가 조항을 덧붙여주었다.


“엄마, 너무 심할 때는 좋은 말로 한 번씩 해 주셔도 돼요.”


드디어 아이가 자기 객관화가 되어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알아서 숨구멍을 뚫어주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학교도 가지 않는 날이지만 엄연한 월요일이었다. 당연히 아이들은 당일 과제를 수행해야만 했다. 첫 번째 고비는 시작 시각이었다. 24시간의 자유시간 중 언제 출발할 것인가에 대하여 온 신경이 쏠렸다. 마음껏 TV 보고, 놀고를 반복하며 제각기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입안에는 ‘이제 시작해야지’라는 말이 계속해서 머물러 있었다. 차마 내뱉지 못하는 그 한마디를 혀끝에 돌리면서 아침에 생각 없이 질러버린 과거의 나를 멍청이라고 탓하고 있었다.


늦은 오후. 바깥의 서늘함과는 다르게 집 안의 공기는 노곤노곤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보다 못한 남편은 찰나였지만 내 편이 되었다.


“너네, TV 너무 많이 보는 거 아니야?”


아빠의 가라앉은 한마디는 나의 열 마디보다 확실했다. 본인들도 과했다는 것을 인정하는지 즐거움을 중단하고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눈치를 보니 데일리 과제를 하려는 듯 보였다. 화장실에 가려는 척하며 아이의 방을 보았다. 감사하게도 바카라상에 앉아 있는 꼭지가 보였다. 하지만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잔소리는 다른 부분이 눈에 띄었다. 구부정한 허리, 건들거리는 다리, 그리고 널브러진 내부. 명치에서 뜨거운 열감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참았다. 그렇게 아이는 무사히 해내었고, 나 또한 성공적으로 입조심을 할 수 있었다.


2일 차 (화요일)


아빠는 출근했다. 더 이상 나의 편은 없었다. 오롯이 스스로 나의 뇌와 입을 컨트롤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학교에 다녀온 아이를 반갑게 안아주며 인사를 했다. 그러곤 손을 씻으러 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았다. 여기까지는 아주 순조롭게 보였다. 하지만 뒤이어 나의 시험장은 열렸다. 손을 씻은 아이는 곧장 거실로 나왔고, 손에는 작은 로봇이 들려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늦기 전에 후딱 해치웠으면 했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작은 로봇이 자동차로 변신했고 조금 지나자, 본인이 로봇으로 변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안의 또 다른 자아가 속이 뒤집히려는 듯 시동을 걸고 있었다.


30분, 1시간, 1시간 30분...


그의 놀이는 창의적이고도 다양하게 흘러갔다. 처음에는 혼자였지만 동생이 합류하여 아예 본격적인 대결이 펼쳐졌다. 분명 서늘한 바람이 부는 가을임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땀을 뻘뻘 흘리며 속옷만 입은 두 명의 타잔이 집안을 휘젓고 있었다.


평소라면 백 번도 넘게 잔소리가 나왔을 시점이었다. 그러나 나는 인내했다. 단전에서 부글거리는 용암을 분출시키지 않고 불교에서 수행의 공덕으로 얻게 된다는 사리로 만들고자 노력했다. 해는 빠르게 산등성이를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들리지 않는 한숨을 내쉬고 저녁 식사 준비를 하기 위해 주방에 들어섰다. 쌀을 씻는 손짓이 거칠었으며, 식재료를 다듬는 칼질 소리가 날카롭기 시작했다. 눈치가 보였던 것일까? 아니면 마음 편하게 밥을 먹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던 것일까. 큰 아이가 둘째에게 말했다.


“우리 이제 각자 할 거 하고 다시 놀자”


등 뒤에서 들리는 말 한마디에 안도감이 들었다. 드디어 할 마음이 생긴 것에 대한 마음이 아닌, 폭발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서였다. 슬쩍 칼을 내려놓고 방문 앞에 가니 바카라상에 무사히 안착한 모습이 보였다. 여전히 구부러진 등짝이 신경 쓰였다. 그러나 셀프 입단속을 하면서 돌아섰다.


잔소리 안 하기가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3일 차 (수요일)


작심삼일이라고 했던가. 나에게도 위기가 닥쳤다. 수요일은 두 아이가 모두 일찍 하교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매일 단전에 쌓여가는 사리의 양을 생각하며 이번에는 다른 방법을 고안했다.


시야 차단하기!


지난 이틀 동안 계속해서 분노가 일어났던 것은 눈에 보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시간에 따른 수행 목표치는 정해져 있는데 그와는 사뭇 다른 상대의 굼뜬 패턴에 속이 터지는 것일지도 모를 터였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있는데 방문 닫고 칩거에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차피 엄마가 지척에 있어야만 하는 둘째가 그 꼴을 봐주지 않을 터였다. 그렇다면 나의 신경을 돌릴만한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여전히 거실 한복판에서 그들만의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차마 멀리 가지 못하고 식탁에 앉아서 바카라 한 권을 들었다. 도서관에서 빌려와 놓고는 그간 시간이 없어서 읽지 못했던 바카라이었다. 육아서를 펼치니 마침 눈에 진리가 펼쳐졌다.


‘정해진 시간만 딱 보고 딱 접고 공부도 하고 바카라도 잘 읽고

지 할 일도 잘할 거라구?

니도 안되고 내도 안되는 게 갸가 되겄냐? 그 어린 것이?’


이토록 와닿을 줄이야. 하은맘(김선미 작가)의 거침없는 표현이 돌직구로 뼈를 때려왔다. 몇 번 곱씹을 필요도 없었다. 지금 당장 내 앞에서 펼쳐지고 있으니. 안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렇지만 뭐라도 하지 않으면 내 안의 또 다른 자아가 이미 튀어나왔을 시점이었다. 다행인 점은 저녁 준비를 위해 주방으로 들어서니 큰 아이의 한마디가 들려왔다.


“우리 이제 각자 할 거 하고 다시 놀자”


그 이후로 목요일, 금요일이 지나갔다.

여전히 보기만 해도 잔소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공부하러 들어갈 때는 매번 입이 5,000km는 튀어나와 있지만 그럼에도 꾸역꾸역 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하기 싫은 마음을 애써 다잡고 한다는 아이의 마음은 존중한다. 그리고 기특하고 칭찬 백만 번을 해 주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나 또한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내 안에는 오천 개의 사리가 단전에 생성되었다.


솔직히 말한다.

나의 잔소리는 절대 없지 않았다. 식사 준비와 정리, 바닥 정리와 같은 실생활의 부분에서는 했다. 하지만 공부하는 시간에 대해서는 하지 않았다. 어떻게 그랬냐고? 아예 안 보았으니까 가능했다. 지난 3일간의 경험으로 보자면 어차피 똑같았다. 바카라상 앞에서의 태도와 방 내부의 상태는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아마 내일도 똑같을 것이다. 어차피 보고 속 터질 바에야 아예 안 보는 것이 가장 효과가 좋았다. 잔소리 안 하는 건 여러모로 힘들다. ‘잔소리를 줄이면 조금 더 잘할까?’라는 생각으로 시도했는데 정말 어렵다. 아이의 학습에 대하여 더 잘하게 된다는 그런 느낌은 적어도 지금은 못 느끼겠다. 이번 글의 제목을 ‘내가 잔소리를 더 줄일 수 있을까?’라고 바꿔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그럼에도 너랑 나, 앞으로 조금씩 더 나아질 것이라고 그렇게 믿으며 위안을 삼아 본다. 그래도 이번 주에는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


바카라 두 권 완독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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