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마다 스위치는 다르다

by그냥사탕


<EP 06. 아이마다 스위치는 다르다>


첫째와의 긴밀한(?) 협상 끝에 스스로 선택한 데일리 공부 루틴을 완성했을 때, 드디어 방법을 알아낸 줄 알았다. 아주 잠깐이었으나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라는 확신의 조각까지 맛보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둘째를 떠올렸다. 앞으로 이어질 꼬맹이의 홈스쿨링에 대해 자연스럽게 방향을 잡을 수 있겠다고 여겼다. 물론 이러한 착각은 말 그대로 오해였을 뿐이었다.


육아라는 새로운 세계를 각종 영상과 바카라으로 배웠던 1인으로서 사람의 성격은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몸으로 마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주워 들었던 기쁨과 확신들은 8세 여자 어린이에게 아무 쓸모가 없었다는 것이 팩트였다.


자신은 1학년 동안에는 절대 공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아이. 어찌 보면 참으로 당돌하고 주관이 뚜렷한 꼬맹이였다. 그렇기에 첫째에게 적용했던 다양한 방법들은 하나도 먹히지 않았다. 분명 내 배로 낳은 두 아이. 같은 배에서 태어났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부모 아래에서 같은 사랑을 받으며,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모든 조건이 동일했음에도 두 아이는 전혀 다른 인류였다. 나 또한 여성의 성을 가지고 있으나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 터라 또 다른 이유로 이 아이의 생각을 알 수 없었다.


첫째는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어릴 적 EBS 번개맨의 엔딩 체조를 한 달 동안 뚫어지게 쳐다보기만 했던 아이. 그러나 익숙해졌다고 느꼈을 때 누구보다 열심히, 그리고 완벽하게 따라 하며 즐겼던 아이였다.


둘째는 반대였다. 아장거리며 걸음을 떼던 시기에도 처음 마주한 율동을 흥겹게 따라 하던 아이였다. 새로운 도전을 망설이지 않았다.


공부라는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첫째는 환경이 중요했다. 공부를 시작하기 전 주변을 정리하고 완벽한 분위기가 완성되어야만 그제야 연필을 들었다. 적어도 눈앞에 타이머를 들이대면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는 시늉을 했다.


둘째는 달랐다. 타이머 속 줄어드는 시간의 압박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원하는 무언가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주변이 전쟁통이어도 타격 없이 제 할 일을 해냈다. 다만 학습에 대하여 절대 마음을 먹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문제였다. 당연히 문제집은 발가락의 때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다. 이미 2학기가 시작되었으나 입학 전 준비했던 1학기 수학 문제집은 처음 3장을 겨우 채운 후 여전히 새것의 반짝거림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것은 단지 두 아이를 비교하는 일이 아니었다. 첫째의 스위치를 찾아 헤매던 과거처럼 둘째에게 맞는 문을 새롭게 찾아야 한다는 새로운 미션이 등장했을 뿐이었다.


아직 어리다고, 어렸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받아들였다. 어차피 공부란 평생 해야 하는 것이었고, 우리 부부는 학교 성적 100점이 목표가 아니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는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 한 사람의 어른이 되었을 때 자신의 몫인 인생을 스스로 꾸려가며 행복한 사람으로 살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 과정에서 최소한으로 필요한 도구인 공부를 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요리조리 둘러보아도 아직은 공부라는 것을 집중적으로 하기에는 많이 어리다는 것을 인정했다. 때문에 수학 문제집에 먼지가 쌓여가도 괜찮았다. 다만 이 시기에 바카라을 읽고 좋아하는 마음을 남겨주고 싶었다. 엄마로서 독서라는 것이 불편함이 아니라 힐링의 도구,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하기를 바랐다. 바카라과 친구가 되어 마음껏 꿈을 꾸기를 바랐다.


무작정 도서관에 데려가서 세상에 많은 바카라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억지로 하루에 몇 권씩 읽으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도서관은 멀었으나 첫째가 어렸을 때처럼 2~3주에 한 번씩 어깨가 빠지도록 다양한 동화바카라을 빌렸다. 혹시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여 독후 활동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그러나 생각과는 다르게 둘째는 전혀 바카라에 대한 애착이 생기지 않았다. 분명 첫째에게 시도했었고, 덕분에 큰아이는 바카라에 대한 거부감이 없이 성장했다. 나름 성공한 방법이라 여겼었는데 딸아이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함께 읽어보자고 하면 도망갔고, 도서관은 ‘싫다’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당연하게 스스로 바카라을 읽는 행위는 학교에서 실시하는 과제를 제외하고는 전무했다. 큰 아이를 키우며 터득했다고 여겼던 나름의 꼼수들이 둘째의 철벽 앞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었다.


새로운 아이를 앞에 두고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고집이 센 두 아이. 하지만 그 방향과 결은 서로 완전히 달랐다.


그렇다고 나의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존재 앞에서 포기라는 단어를 감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그렇기에 대상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할 수 없다고 단정 짓지 않고 그저 방법이 잘 못 되었다고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래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하얀 백지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공부는 절대 싫다고 하는 아이에게 학습으로 접근하지 않기로 했다. 말도 잘하고 주관이 뚜렷한, 똑똑하고 야무진 아이였다. 매일 심심하다는 말을 내뱉기는 하지만 무조건 엄마랑 함께 있고 싶다는 여린 아이였다. 그렇다면 전략은 단 하나였다.


출발은 언제나 엄마와 함께!


바카라은 절대 싫다는 아이에게 엄마가 읽고 싶다는 핑계를 씌웠다. 첫날 동화바카라을 들고 등장하니 눈치 빠른 아이는 대번에 의중을 파악하고 도망갔다. 그러니 당연하게 1차 도전은 실패!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집중력 약한 아드님 비위 맞춰가면서 다양한 도전을 일삼았던 아줌마 정신은 고작 첫 번째 실패 따위 앞에서 마음 상해하지 않았다.


며칠 뒤 자연스럽게 2차 도전에 돌입했다. 엄마 껌딱지 딸내미와 침대에서 뒹굴거리면서 놀던 사이를 공략했다.


“참! 나 지난번에 읽고 싶었던 바카라 있었는데, 엄마 그거 좀 읽을게 너는 알아서 놀아~”


무심한 듯 자연스러운 대사 하나를 툭 치고 거실의 바카라장을 향해 걸어갔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바카라들이 늘어서 있는 구역 앞에 서성이다 최대한 흥미가 있어 보이는 제목을 부러 소리 내어 읽었다. 그리고 바카라 한 권을 집어 들고 다시 침대로 돌아와 온몸을 날렸다. 여전히 침대와 한 몸으로 있던 둘째는 엄마 손에 들린 물건에 관심을 가졌다. 이번 대상은 오빠가 읽을 법한 소설바카라이었다. 1학년 어린아이에게 초등 중학년, 고학년의 줄글은 당연히 난도가 높았다. 하지만 우리나라 문학의 퀄리티는 좋았다. 심지어 판타지, 미스터리 등 다양한 장르는 애나 어른이나 선호도 높은 종목이었다. 동화바카라이 아니니 도망가지 않았고, 캐릭터도 예쁜 언니야가 등장했으니 눈도장은 쉽게 찍었다. 더욱이 고스트와 미스터리 분야이기에 꼬맹이 호기심은 완벽하게 커버되었다.



테이블의 딱딱함이 아닌 푹신한 침대 위에서 엄마가 읽어주는 이야기바카라. 더욱이 직접 읽으라는 강압 없이 엄마 목소리로 들려주는 스토리 앞에서 아이는 조금씩 가까이 오기 시작했다. 최대한 관심받기 위한 혼신을 담은 열연까지 덧붙이자 드문드문 등장하는 한 컷 삽화를 보기 위해 어느새 껌딱지처럼 붙어버렸다. 나 또한 내용이 재미있어서 읽기는 했지만 아이 또한 이야기 속에 들어왔는지 중간에 잠시 쉬면 멈추지 말라며 재촉하기 시작했다.


바카라의 1/3 지점쯤 왔을 때 여기서 약간의 잔꾀를 발휘했다.


“컥컥! 엄마가 계속 읽었던 목구멍이 너무 아프네! 엄마 물 한 모금 마실 동안 여기 10줄만 읽어줄래?”


나의 꼼수가 먹혔다.

당연하지만 드문드문, 떠듬떠듬. 속도와 정확도는 현저히 떨어졌으나 이미 이야기에 흠뻑 빠진 아이는 서슴지 않고 읽기 시작했다. 처음 10줄만 읽기로 했었는데 어느새 한 페이지를 전부 읽었다. 그것도 재미있고 기쁘게! 본인이 읽어왔던 글자의 반도 안 되는 크기의 글들을 거리낌 없이 즐기면서 읽어 내려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새롭게 깨달았다. 첫째에게 맞았던 방법이 둘째에게도 맞으리라는 생각이 어리석었음을.


역시나 무엇이든 억지로는 안 된다. 그리고 대상이 다르면 방법도 달라야 했다.


첫째의 스위치가 ‘정돈된 환경과 자율성’에 있었다면, 둘째는 ‘엄마와의 교감’에서부터 시작하는 재미에 있었다. 같은 배에서 태어난 아이라도 이렇게나 달랐다. 결국 아이에게는 스위치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엉뚱한 곳에서 스위치를 찾고 있었을 뿐이었다.


‘똑같다’라는 나의 고집을 내려놓자 그제야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집공부에서 가장 먼저 공부해야 하는 사람은 아이가 아니라 나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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