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공부라는 것을 적용시키는 것은 상당한 에너지와 굉장한 잔머리가 필요하다. 그동안 그것을 알고 있었다고 여겨왔었다. 하지만 머릿속 이론으로만 알고 있는 것과 실제 몸으로 깨닫는다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최소한 이 정도는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슬쩍 들이밀었을 때 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움직이는 또 하나의 생명체는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었다.
그간 첫째를 통하여 공부 장소와 환경을 바꾸어 보았다. 그리고 둘째와 함께하면서 아이마다 스위치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덕분에 나는 약간의 가능성을 찾게 되었고 우리 집 홈스쿨링은 제법 궤도에 오르는 듯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그저 외관에서만 그렇게 보였을 뿐이었다. 늘 그렇듯 육아와 집공부의 세계는 하나의 산을 넘으면 코앞에 더 커다란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절대로 끝나지 않을 고비의 연속일 뿐이었다. 이번에 마주한 산의 이름은 별 것 아닌 ‘30분’이었다.
어른들에게 30분이란 ‘고작’이라는 꾸밈말이 함께 해야 할 정도의 찰나와 같은 순간이다. 핸드폰 게임 몇 판을 하거나, 달큼한 믹스 커피 한 잔을 타서 몇 모금 들이키면 어느새 증발해 버리는 짧은 시간일 뿐이다. 하지만 초등학생에게는 이러한 30분이 다른 의미였다.
“우리 딱 30분만 집중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놀자!”
분명 커피숍 방법을 이용하여 2시간짜리를 1시간에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터였다. 물론 며칠이 지나자 약발은 떨어졌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30분이라는 한 사이클을 두 번만 이겨내면 무리 없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야심 차게 30분을 가리키는 타이머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채 스타트를 외쳤다. 적어도 그렇게 하면 조금이라도 덜 지치면서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종의 배려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상상과 현실의 차이는 엄청났다. 혹시 아인슈타인은 아이들을 보면서 상대성이론을 발견하지 않았을까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하게 되었다. 나에게 찰나와 같았던 그 시간은 아이에게 잔혹한 고문의 시간으로 변했다.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스타트를 외치면 바로 돌입할 것 같았던 아이에게는 이번에도 할 일이 무궁무진했다. 5분이 지나자 화장실을 다녀와야 했고, 7분이 흐르자 사용하던 연필의 심이 부러져 깎아야 했으며, 그로부터 10분 후에는 목이 마르다며 탈수증에 걸릴 것 같은 표정으로 정수기를 향했다. 틈틈이 문제집 사이에 각종 스타일의 로봇과 멋들어진 무기들을 스케치하기도 했다. 한 문제를 푸는 데에는 억겁의 시간이 더욱 필요한 듯 고뇌를 일삼으며 타이머의 빨간색 남은 시간을 원수 보듯 노려보았다. 결과로 보았을 때 미션은 당연하게도 완수하지 못했다.
속에서는 천불이 용암 끓어오르듯 허연 김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내용이 있기에 더 이상 버럭은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아이가 주눅 들어서 의지조차 꺾여버릴까 그것 또한 걱정이 되었다.
“엄마, 30분은 좀 너무 했어요.”
도대체 무엇이 너무하다는 뜻일까. 너무 적었다는 것일까? 아니면 너무 길었다는 것일까? 시간 종료의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억울함이 가득 담긴 한숨에 나 또한 그 마음을 알 길이 없어서 오히려 머릿속이 뱅글뱅글 돌았다. 새로운 방법을 또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려 왔다. 그간 몇 번의 작은 성공을 맛보면서 마음이 들떠 있었나 보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현실 앞에서 막막함을 먼저 찾는 것을 보면 엄마로서 여전히 내공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이 지났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왔다는 아이의 소리에 반갑게 맞아 주면서 오늘은 또 어떻게 구슬려야 할지 고민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첫째가 한 마디 꺼냈다.
“오늘 친구와 학교 운동장에서 놀기로 약속했어요. 갔다 와도 돼요?”
이미 약속을 다 해버렸다면서 다녀와도 되냐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통보인지 허락을 구하는 것인지 도통 알 수 없는 질문에 순간 대답을 버벅거렸다. 그러나 상대는 초등 4학년의 남자 어린이였다. 적어도 본인 생존에 대한 눈치는 탑재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혹여나 엄마 입에서 원하지 않는 답이 흘러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고 있었는지 냅다 뒷 말을 덧붙였다.
“오늘 할 것 다 하면 나갔다 와도 돼요?”
무어라 부정의 대꾸를 할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치밀했다. 본인이 신데렐라나 콩쥐도 아니고... 나야 제 할 일을 다 해놓고 나간다는데 막을 이유는 없었다. 그러라고 엄마의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아이는 그 어느 때보다 일사천리로 움직였다. 가방을 내려놓고 화장실에서 손을 닦았다. 그러곤 바로 제 방에 들어갔다. 평소와 다르게 너무 조용한 집안. 뭘 하는지 궁금해졌다. 조용조용 발걸음을 움직여서 열린 방 문을 향해 고개만 빼꼼 내밀어 보았다. 바카라상 앞에서 고개를 처박고 무언가를 하고 있는 첫째의 등짝이 보였다. 공부하는 시늉을 하는 듯해서 방해하지 않고 다시 거실로 돌아와 식탁에 앉았다.
똑딱, 똑딱, 똑딱...
시간은 꾸준히 흘러갔고, 식탁에 앉아 바카라을 보겠다고 펼쳤으나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둘째는 엄마와 스티커북을 하겠다고 옆에서 번호에 맞는 걸 찾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큰아이가 내 앞에 등장했다.
“엄마, 저 다 했어요. 다녀오겠습니다!”
뭐라고? 어이없는 대사에 고개를 돌려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고작 30분 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간 아무리 빨라도 1시간이었는데 어떻게 30분 만에 해결을 했다고 하는지 전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정말? 어떻게? 뭘 했는데?”
“진짜 다 했어요. 보세요!”
내가 믿지 못한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보란 듯이 오늘의 할당량을 다 했다는 증거품을 죄다 가져와 눈앞에 들이밀었다. 국어, 수학, 영어 그리고 일기 쓰기까지 흠잡을 것 하나 없이 완벽했다. 그 앞에서 절대 ‘안된다’는 단어 따위는 끄집어낼 수 없었다. 그리고 엄마의 확인까지 해결한 아이는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밝고 명쾌한 한 마디를 남긴 채 총알보다 더 빠르게 집을 나섰다. 기특하게도 함께 나가서 놀겠다고 떼 부리는 동생까지 야무지게 챙겨갔다.
커다란 바람이 지나간 듯한 허탈함. 그리고 어이없는 상황.
‘과연 내가 무엇을 실패한 것일까?’
그간 그토록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모든 방법과 잔머리를 동원했는데 친구와의 공놀이 약속 한방이 더욱 효과가 좋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이제껏 어떻게 하면 집중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한가득이었다. 그러나 지금 순간에는 2시간짜리를 30분 만에 해결하고 나간 아이의 흔적을 바라보며 그동안 내가 해 왔던 여러 가지 고민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경로이탈 해 버렸다.
‘양 조절에 실패한 것일까 VS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것일까’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이고 내가 놓친 것은 무엇인지 당최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러곤 얼마 전 보았던 아들 전문가 최민준 소장의 유튜브 영상 하나가 떠올랐다.
‘그들의 동기는 욕구와 욕망이 더 가깝다!’
아들이란 종족은 불안으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고 말했다. 물론 여성과 남성이 갖고 있는 기본 성향의 차이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평생을 여자로 살아온 나로서는 그럼에도 아이마다 갖고 있는 기질이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라 여겨왔다. 그런데 순식간에 벌어진 눈앞의 상황에서 최민준 소장이 말하던 ‘한 마리의 닌자’의 정의가 바로 이런 것이라고 깨닫게 되었다.
환경, 미션, 촉박함
모든 조건들을 첫째의 기질에 맞추었다고 여겼었는데 이 모든 일들이 나의 ‘불안함’을 충족시킬 뿐, 아이에게는 미세 항목이었다. 그렇다 결국 친구와의 공놀이가 그의 욕구와 욕망이었다. 약간의 배신감이 들었다. 그러나 더 이상 잔소리를 할 수 없었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결과는 같았으니 말이다.
다시 한번 욕심을 내려놓게 되었다. 어차피 단거리가 아닌 장거리 레이스였다. 그렇기에 타박할 거리가 없었다. 내가 원했던 것은 문제집을 잔뜩 푸는 것이 아니었으니 괜찮다. 동기가 조금 불손하면 어떠랴. 다소 허탈함은 남았으나 아이는 2시간짜리를 30분 만에 해결하는 기적을 스스로 만들어냈다. 오늘은 그렇게 해냈다는 작은 성취감 하나를 쌓았으면 충분했다.
스스로 시작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었더니 오히려 기특하게 여겨졌다. 물론 애초에 하고자 하는 생각이 전혀 없는 둘째는 논외였다. 둘째는 또 둘째의 속도로 가면 될 일이었다. 너도 나도 작은 성공의 경험을 하나씩 쌓아가면 언젠가는 높이 올라갈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