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보다 먼저 치워야 할 것은 따로 있었다

by그냥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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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09. 공부보다 먼저 치워야 할 것은 따로 있었다>


엄마의 부재가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사실을 마주하고 나니, 이상하게도 나에게 한 가지 증상이 생겼다. 바로 불안감. 사실 분리 불안이라면 전부터 갖고 있던 고질병이었다. 과거 어린이집, 초등 입학을 마주했을 때도 비슷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차원이 달랐다.

내가 없어도 너무 잘하는 것.

그 사실이 오히려 나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오히려 깊이를 더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센스 있는 엄마가 되기로 다짐을 했더랬다.


그간 무수히 더하기 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노력해 왔다면, 이제는 빼기 해야 될 때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의 티끌 같은 센스를 긁어모아 방향을 전환하기로 했다. 그렇게 분주하게 도전하면 너도, 나도 모두 훈훈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작은 기대를 품기도 했다.


아이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 청소를 위해 주인 없는 방으로 들어갔다. 아침에 얼마나 긴박한 상황이 이곳에서 벌어졌는지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전날 사용했던 줄넘기를 시작으로 동생과 사이좋게 놀았던 레고 블록,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잠옷들과 둘둘 말려있는 이불까지. 입구부터 시작한 그의 흔적은 작은 공간임에도 알차게 꽉 채워져 있었다. 그 와중에 며칠 전 신었다고 추정되는 양말이 왜 바카라꽂이에서 발견되는 것인지 당최 이해할 수 없는 패턴이었다. 잔소리를 퍼붓고 싶어도 이 방의 주인은 없었다. 아쉬운 순간이었다.

바카라상 위 또한 다를 바 없었다. 분명 학습을 하는 공간임이 분명하지만, 그와 상관없는 물건들이 다수 발견이 되었다. 전날 풀었던 문제집과 연필 그리고 지우개의 잔해들은 양반이었다. 본인이 비염 보유자라는 것을 자랑하는 것인지 사용한 휴지들이 하나의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그 옆에는 공부 중 틈틈이 이용했음이 분명한 로봇과 작은 무기 모형들이 곳곳에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두뇌의 속도보다 한숨이 먼저 흘러나왔다. 빼기를 새로운 미션으로 장착한 한 주였기에 이곳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1. 바카라상이 깨끗해야 뭐든 할 마음이 생긴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듣던 말이었다. 유튜브를 볼 때에도, 인스타를 볼 때에도 종종 등장하는 장면이었다. 회사 생활을 할 때에도 당연하게 적용되던 명언이었다. 그런데 내 앞에 있는 바카라상은 그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그렇기에 빼기의 첫 순서는 이곳이 명확했다. 지난 문제집은 바카라꽂이로, 각종 장난감은 제각기 자신의 자리로 이동했다. 그러곤 남은 잔해물들을 야무지게 휴지통으로 이사시킨 후 야무지게 물걸레질까지 완벽하게 했다. 스스로 짧은 시간 안에 만족할 만큼 깨끗해졌기에 기분이 좋아졌다.


하교한 아이가 말끔해진 방을 보며 즐겁게 바카라상에 앉는 순간을 상상했다. 그러나 오후에 마주한 아들은 냅다 엄마부터 찾았다.


“엄마, 여기 있던 노란색 미니칼 어디 갔어요?”

“엄마, 수학바카라이 없어졌어요!”


‘우와~ 너무 깨끗해요!’를 굳이 바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청결에 대한 칭찬은 그에게 관심 밖이었다. 분명 대놓고 본인 시야에 닿을 정도로 놔두었던 물건들을 찾아보지도 않은 채 물어보는 모습에 분노가 벌컥 치솟았다. 아들이라는 종족은 시야의 범위가 한 뼘밖에 되지 않는 것일까. 이미 정수리까지 채워진 열받음을 꾹꾹 눌러 담으며 (나름) 친절을 담아 옮겨놓은 물건의 위치를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그럼에도 공부할 때 조금은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스스로 마음을 다독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아이의 학습 시간은 조금씩 늘어났다.


공부의 양이 늘어난 것은 절대 아니었다. 집중의 시간 또한 늘어난 것이 아니었다. 바카라상에 앉아 있는 시간만 늘어났다. 더불어 ‘양이 많다, 어렵다’ 등의 불평은 매번 돌아오는 식사 시간 알람처럼 꾸준했다. 아무리 치워도 바카라상 위의 상태는 언제나처럼 초기화되었다. 야심 차게 시도했던 빼기의 방법은 전혀 소용이 없었다.


2. 난이도와 양 조절이 문제인가?


주변 환경을 맞춤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칭찬은커녕 매번 뭐가 없어졌다는 불평이 뒤따라왔다. 그렇다면 난이도와 양 조절이었을까? 그렇지 않아도 학습과 관련된 대화가 나올 때면 ‘너무 많다, 너무 어렵다’의 단어들이 튀어나왔다. 정말 가벼운 미션을 주었을 때 수월하게 잘 해내면 너무 쉽고 적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이쯤이면 충분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에 조금씩 난이도를 조절하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공부라고 하면 덮어놓고 불평하는 존재들이었으므로 그저 습관성 투정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매번 같은 말이 나온다면 정말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어 문제집 두 장

수학 문제집 두 장

영어 문제집 한 장

독서 30분

일기 쓰기


대부분의 문제집 난도는 매우 낮았다. 문제 풀이의 스킬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 꾸준히 하는 것에 대한 익숙함과 현행이라도 보통 수준으로 따라가는 것을 목표로 잡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조차도 힘들다고 하니 과감하게 줄였다. 물론 나에게는 이 바카라이 끝난 이후의 계획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자기주도학습의 발판을 만드는 지금의 과정에서는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어려웠다. 어쩌면 학습량 조절이라는 결단보다 앞으로의 계획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나에게 더욱 힘든 과제였음이 분명했다.


수학 문제집 두 장

영어 문제집 한 장

독서 한 시간


아이는 대폭 줄어든 미션 앞에서 깨춤을 추었다. 당연하게 할 수 있다는 당찬 대답도 들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학습 시간은 첫날을 제외하곤 또다시 원점이었다. 엄마가 옆에 없어야 할 수 있다는 그의 단호함 때문에 여전히 수행 시간에는 방문 출입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변화 없는 상황은 지속되었고, 나의 내적 불안은 조금씩 몸집을 불려 가고 있었다. 무언가 주요 포인트가 있음이 분명했다. 아이의 학습을 방해하고 있는 가장 커다란 요소가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그저 알고 싶어서 답답했다.


3. 공부보다 먼저 치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


아이는 공부할 때 엄마 없이 하고 싶어 했다. 혼자서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할 수 있다고 표현했다. 유튜브와 바카라도 열심히 정독했다. 덕분에 아들이란 생명체의 특이점도 나름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의 뜻을 존중해서 공부할 때 방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나름 여러 가지 시행착오 끝에 발견할 것이라 여겼으나 해법은커녕 오히려 내 신경만 점점 곤두서고 있다는 걸 발견했을 뿐이었다.


금요일 오후.

여느 날처럼 화장실에 가려는 척하며 아이의 방 앞을 지나쳤다. 물론 미어캣처럼 슬쩍 쳐다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전히 독서실 바카라상에 앉아 머리를 박고 무언가 열심히 하는 꼭지만 보았다. 화장실에서 문을 열고 나오던 그때 아이가 넌지시 나를 불렀다.


“엄마~”

“응? 왜? 뭐 어려운 것 있어?”


나를 부르는 음성에 자동으로 방 안으로 입성했다. 출입을 허가받은 사실이 너무 기쁘다는 몸과 마음을 한껏 분출했다.


“엄마, 그만해 주세요.”

“엥? 무엇을?”

“잘하고 있냐고 계속 물어보는 거요.”

“응, 알았어”


이번에도 크게 반박하지 못하고 돌아 나왔다.


‘내가 뭐 일부러 그랬나? 아... 일부러 그랬구나... ’


그냥 아이가 잘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물어봤다고 반박해 볼까도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솔직히 믿지 못했기에 물었던 것이다. 그동안 옆에 끼고서 하나씩 눈으로 확인했던 습성을 아직도 가지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작은 독립을 선언한 아이에게 내심 섭섭함이 남아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과연 내가 없어도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심을 버리지 못한 결과일 수도 있겠다. 내심 잘 못하면 ‘엄마가 없어서 못 했다’를 광고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것이 아이에게 오히려 방해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 어디 공부하는지 알고 있어?’

‘틀리면 풀이 보지 말고 고민하면서 풀어봐’

‘허리는 펴고 문제 풀었으면 좋겠네~’


나로서는 조언이라고 했던 말이었다. 어디에서 주워듣고 나선 아이에게도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모두 달랐고, 나의 기대와 조급함이 아이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기에 열정 뿜어낼 것 같았던 꼬맹이는 오히려 부담감과 거추장스러움 사이의 불편함을 느껴왔을 것이다.


그렇구나.

공부보다 먼저 치워야 할 1번은 ‘엄마의 욕심과 잔소리’였다.


물론 잔소리하고 싶어서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잘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고, 혹시 놓치는 건 없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내가 알고 있는 방법을 아이에게도 알려주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보지도 않는 좋은 정보를 꾸준히 깨톡으로 보내시는 우리 엄마와 나의 행동이 비슷했다.


어쩌면 아이에게 필요했던 것은 새로운 방법이 아니라, 엄마가 잠깐 조용해지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상당히 욕심을 버렸다고 여겨왔었는데 되돌아보니 태산 같은 욕심 중에서 고작 입구의 모래알 한 개만 빼고선 생색내기 중이었다. 어휴.... 갈 길이 멀다.


사랑이 가득한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집착 덩어리였다. 이쯤이면 인정해야겠다. 아직도 마음의 준비가 온전히 되지 않았지만, 오늘부터는 다른 소일거리라도 만들어 보아야겠다.


나의 불안이 아이의 방 안으로 넘쳐흘러 들어가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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