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칠기삼, 그래도

2026 All-Day-Project (125/365)

byJamin

창의성의 시대, 7년 후

창의성은 노력이다, 그러면 동기부여의 문제다

조직의 리츄얼 설계

사람은 모두 다르다, 그래서 유연해야 한다


7년 전 글의 마지막 문단을 다시 읽어본다.

"나는 경영의 구루도 아니고, 가방끈 긴 석학도 아니다. 때문에 본 글에서 쓰인 여러 개념은 오독의 결과물이거나, 헛소문의 반영일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는 신입에서 몇 년 지난, 남들과는 다른 일을 하고 싶었던 조직원이었다. 여러 가지 장벽에 부딪히면서 뚜렷한 결과물을 못 내는 경험을 하고 난 후, 조직에 대한 기대를 글로 남겼다. 안정성을 달라, 여유를 달라, 재미를 달라.


7년이 지났다. 여전히 경영의 구루도 아니고, 석학도 아니다. 달라진 건 자리다. 기대를 하는 쪽에서, 기대에 응답해야 하는 쪽으로 옮겨왔다.


네 편의 글을 돌아보며


이 시리즈에서 꽤 많은 말을 했다.


1편에서는 창의성의 무게중심이 How에서 Why로 이동했다고 했다. AI가 수단을 민주화하면서, 남는 것은 목적을 설정하는 능력이라고. 7년 전에 "수단으로서의 창의성"을 이야기했는데, 그 수단의 비용이 극적으로 낮아진 세상에서 정작 중요해진 것은 수단 너머의 것이었다.


2편에서는 창의성이 번뜩임이 아니라 반복이라면, 본질은 동기부여의 문제라고 했다. 스킬 교육의 유통기한이 짧아진 시대에, 조직이 가르쳐야 할 것은 태도와 신념이라고. 종교라는 불편한 비유를 꺼내면서, 세계관-의례-공동체라는 수천 년 된 메커니즘을 참조하자고 했다.


3편에서는 구체적인 도구를 정렬했다. 1:1, 데일리, 회고, 데모 데이, 문서화, 학습 공유. 이미 대부분의 팀에 있는 것들을 신념-리듬-작은 승리라는 세 축 위에 놓아보았다.


4편에서는 사람이라는 변수를 다뤘다. 성장 곡선도 다르고, 계절도 다르고, 살갗이 걸린 정도도 다른 사람들을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품을 것인가. 원칙은 일관되게, 적용은 유연하게. 그리고 리더도 불완전하다는 고백.


돌아보면, 결국 한 가지 질문을 네 방향에서 다룬 셈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하게 할 수 있는가."


여전히 모르는 것들


솔직해져야 할 시간이다.


이 시리즈에서 쓴 것들 — 신념, 리추얼, 작은 승리, 계절 읽기, 경험 설계 —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실행한다고 해서 팀이 창의적인 결과물을 낸다는 보장이 있는가?


없다.


7년 전에도 같은 말을 했다. "이런 조직이 갖춰진다고 내가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낼 것이라고는 생각하진 않는다. 어쩌면 그냥 운칠기삼이지 않을까 하는 순간도 많이 있고."


이 문장에 대한 생각은 7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강해졌다. 팀을 이끌수록, 결과를 좌우하는 변수가 얼마나 많은지를 더 실감하기 때문이다. 시장이 바뀌고, 고객이 바뀌고, 기술이 바뀌고, 사람이 바뀐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이 통제할 수 있는 것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그리고 하나 더 모르는 것.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정말로 효과가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그렇다고 믿고 싶은 건지. 1:1에서 팀원의 계절을 읽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있는 건 아닌지. 리추얼을 설계한다고 하지만, 팀원들은 그냥 시키니까 참여하는 건 아닌지.


이런 의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져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의심이 사라지는 순간, 신념은 독선이 되고, 리추얼은 관료제가 되고, 리더는 자기 확신에 빠진 사람이 되니까.


그래도


그래도, 라고 쓴다.


운칠기삼이다. 하지만 기삼(技三)에 해당하는 3할을 다듬는 일을 포기할 이유는 없다. 70%의 운을 통제할 수 없다면, 30%의 기를 성실하게 갈고 닦는 것이 남은 선택이다.


그 30%가 이 시리즈에서 다룬 것들이다. 왜 이 일을 하는지에 대한 신념을 팀 안에서 살아 있게 유지하는 것. 반복되는 리듬을 통해 그 신념을 체화하는 것. 작은 승리를 가시화해서 시도를 멈추지 않게 하는 것. 그리고 각자 다른 사람들의 계절을 읽으며, 각자의 속도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이것이 창의적 결과를 보장하는가? 아니다. 하지만 확률을 1%라도 올리는가?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아니, 그렇다고 믿기로 했다. 이것이 리더의 신앙이라면 신앙이다.


7년 전의 나에게, 7년 후의 나에게


7년 전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글에서 쓴 기대들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안정성, 여유, 재미. 그게 필요하다는 직관은 맞았다. 다만 그것을 요구하는 것과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요구하는 것은 문장 하나면 되지만, 만드는 것은 매일의 판단과 실수와 수정의 연속이다.


7년 후의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있을까. 이 시리즈를 다시 읽으며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말하고 있지 않을까. 그때도 아마 같은 구조일 것이다. 방향은 맞았는데, 덜 말했다고. 혹은 다른 자리에서 같은 질문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달라지는 것은 답하는 자리이고, 변하지 않는 것은 질문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하게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아마 7년 뒤에도 유효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도 나는 완전한 답을 가지고 있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계속 묻는다. 계속 시도한다. 그게 이 시리즈에서 말한 창의성의 본질이니까. 시도를 멈추지 않는 것. 리더인 나 자신에게도 같은 원칙을 적용하는 것.


운칠기삼. 그래도.




시리즈 '창의성의 시대, 7년 후' 마지막 편입니다. 2019년에 일개 조직원으로서 쓴 글을, 2026년에 팀을 이끄는 위치에서 다시 썼습니다. 결국 같은 질문인데, 답하는 자리가 달라졌을 뿐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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