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모두 다르다, 그래서 유연해야 한다

2026 All-Day-Project (124/365)

byJamin

창의성의 시대, 7년 후

창의성은 노력이다, 그러면 동기부여의 문제다

조직의 리츄얼 설계


앞선 글에서 리추얼의 설계를 다뤘다. 신념, 리듬, 작은 승리라는 세 축 위에 도구를 정렬하는 이야기. 깔끔하게 정리된 것 같지만, 현실에서 이 설계를 적용하려 하면 바로 부딪히는 벽이 있다. 사람이다.


사람은 변수다. 7년 전 글에서 70억의 변수라는 표현을 썼는데, 팀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5명이든 15명이든, 각자의 역사를 가지고, 각자의 계절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같은 리추얼 안에서 누군가는 에너지를 얻고, 누군가는 소모된다. 같은 피드백을 듣고 누군가는 불타오르고, 누군가는 위축된다.


이번 글은 그 변수에 대한 이야기다.


탑급 인재라는 환상


팀을 맡으면 한 번쯤은 이런 상상을 한다. "다들 자기 일에 주도적이고, 방향만 제시하면 알아서 달려주고, 서로 자극을 주고받으며 성장하는 팀." 이런 팀을 만들려면 뛰어난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탑급 인재. A급 플레이어. 그런 사람들로 팀을 채우면 알아서 돌아가지 않을까.


채용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자. 모든 포지션에 탑급 인재를 앉히는 것은 대부분의 조직에서 불가능하다. 그리고 설령 가능하더라도, 탑급이라고 분류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시너지가 나는 것도 아니다. 각자가 자기 방식이 강한 사람들이 부딪히면 마찰이 생기고, 그 마찰을 조율하는 데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래서 나는 이제 다른 질문을 한다. "지금 이 팀원이, 지금 이 시점에서,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가."


탑급 인재를 수급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함께하는 사람이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돕는 것. 이것이 현실적인 리더의 일이다.


성장 곡선은 사람마다 다르다


같은 해에 입사한 두 사람이 있다고 하자. 한 명은 빠르게 치고 올라간다. 새로운 기술을 금방 익히고, 주도적으로 문제를 찾아 해결한다. 다른 한 명은 느리다. 같은 것을 여러 번 설명해야 하고, 실수도 잦다. 그런데 1년이 지나면? 때로는 느렸던 사람이 더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단단한 결과물을 내기도 한다.


성장 곡선은 직선이 아니다. 정체기가 있고, 도약기가 있고, 때로는 후퇴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기도 있다. 이걸 알고 있으면서도, 팀을 운영하다 보면 자꾸 선형적 기대를 하게 된다. "지난달보다 이번 달이 나아야 한다." 이 기대가 팀원에게 전달되면, 정체기에 있는 사람은 불안해지고, 불안한 사람은 수비적이 된다. 수비적인 사람에게서 창의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2편에서 "각자의 계절"이라는 표현을 썼다. 성장의 계절에 있는 사람도 있고, 회복의 계절에 있는 사람도 있다고. 이 말을 조금 더 구체화하면, 리더가 팀원에게 기대하는 것도 계절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뜻이다.


성장의 계절에 있는 사람에게는 도전적인 과제와 빠른 피드백을. 회복의 계절에 있는 사람에게는 안정적인 역할과 충분한 시간을. 탐색의 계절에 있는 사람에게는 여러 경험을 해볼 수 있는 폭을. 같은 기대를 모두에게 적용하는 것은 공평해 보이지만, 사실은 누군가에게는 과하고 누군가에게는 부족한 요구가 된다.


스킨 인 더 게임의 비대칭


사람마다 다른 것이 성장 곡선만은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있다.

이 일에 자기 살갗이 얼마나 걸려 있는가.


팀 안에도 온도가 다른 사람들이 공존한다. 이 프로젝트의 성공이 자기 커리어의 다음 챕터를 결정하는 사람이 있다. 반면, 지금은 생활의 안정이 더 절실한 사람도 있다. 아이가 어려서, 건강이 좋지 않아서, 혹은 단순히 지금은 일보다 삶의 다른 영역에 에너지를 쏟고 싶은 시기라서.


이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두에게 동일한 수준의 몰입을 요구하는 것은 공정해 보이지만, 각자의 상황을 무시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불공정하다.


다만, 인정한다는 것이 방치한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 낮은 온도에 있는 사람도 팀의 일부이고, 그 사람의 기여가 팀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리더가 해야 할 것은, 지금의 온도에서도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주는 것이다. 모든 역할이 전력 질주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꾸준히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일도 있고, 그 역할을 묵묵히 해내는 것도 팀에 대한 기여다.


그리고, 문을 열어두는 것. 지금은 회복의 계절이지만, 다음 계절이 왔을 때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이것이 3편에서 말한 안정성의 실질적 의미다.


1:1에서 계절을 읽는다


그러면 팀원의 계절을 어떻게 읽는가. 솔직히, 정확하게 읽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은 자기 상태를 정확히 말하지 않는다. 때로는 자기 자신도 모른다.


그래도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도구가 1:1이다. 3편에서 1:1의 핵심 질문으로 "요즘 하고 있는 일에서 어떤 의미를 느끼고 있나요?"를 제안했는데, 이 질문의 답변 안에 계절의 단서가 있다.


에너지가 높은 사람은 구체적으로 답한다. "이 기능을 만들면서 이런 걸 깨달았어요." 정체기에 있는 사람은 모호하게 답한다. "그냥 주어진 일 하고 있어요." 회복이 필요한 사람은 피하듯 답한다. "괜찮아요, 별 문제 없습니다."


이 답변의 결을 읽어야 한다. 그리고 결에 따라 다음 질문이 달라져야 한다. 에너지가 높은 사람에게는 "더 해보고 싶은 게 있어요?"를, 정체기의 사람에게는 "요즘 지치는 건 없어요?"를, 회복 중인 사람에게는 — 가끔은 그냥 일 이야기가 아닌 대화를.


이게 매주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가? 당연히 아니다. 나도 자주 틀린다. 성장의 계절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무리하고 있었던 경우, 회복 중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흥미를 잃은 경우. 사람을 읽는 일에는 오류가 필연적으로 따른다. 그래서 1:1은 한 번이 아니라 매주 반복되어야 한다. 단번에 읽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축 위에서 변화의 방향을 감지하는 것이다.


유연한 구조, 일관된 원칙


사람마다 다르다면, 조직 구조도 유연해야 한다. 그런데 유연하다는 것이 무원칙하다는 뜻은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다 맞추다 보면 구조 자체가 녹아내린다. 여기서 균형이 필요하다.


내가 찾은 나름의 답은 이렇다. 원칙은 일관되게, 적용은 유연하게.


예를 들어,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이 원칙이라면 이건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하지만 투명하게 커뮤니케이션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달라도 된다. 누군가는 데일리에서 구두로, 누군가는 슬랙에 글로, 누군가는 1:1에서 리더에게 먼저. 채널은 달라도 원칙은 같은 것이다.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가 원칙이라면, 시도의 크기와 빈도는 사람마다 달라도 된다.

성장 계절의 사람은 큰 시도를, 회복 계절의 사람은 작은 시도를.

중요한 것은 시도 자체가 장려되는 원칙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이 구분이 명확하면, 유연함이 편파로 보이는 문제도 줄어든다. "왜 저 사람은 봐주면서 나한테는 더 요구하나?" 이 질문이 팀 안에서 나오면 위험하다. 하지만 원칙이 일관되고 그 위의 적용만 다르다는 것이 팀 전체에 이해되면, 유연함은 불공정이 아니라 배려로 인식된다.


교육의 재정의


1편에서 스킬 교육의 유통기한이 짧아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2편에서 교육이 다뤄야 할 것은 태도와 신념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번에는 한 발 더 나가본다.


지금 시대에 리더가 할 수 있는 교육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설계하는 것이다.


어떤 팀원이 고객 관점이 부족하다면, 고객 관점에 대한 강의를 하는 것보다 고객 미팅에 동석시키는 게 낫다. 어떤 팀원이 구조적 사고가 약하다면, 프레임워크를 알려주는 것보다 복잡한 문제를 같이 쪼개보는 경험을 주는 게 낫다. 어떤 팀원이 주도성이 부족하다면, 주인의식에 대한 말을 하는 것보다 작은 프로젝트의 오너십을 맡기는 게 낫다.


사람은 말로 배우지 않는다. 경험으로 배운다. 그리고 같은 경험이라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성장의 계절에 있는 사람에게 도전적 경험을 주면 도약이 되지만, 회복의 계절에 있는 사람에게 같은 경험을 주면 좌절이 될 수 있다.


결국 교육의 문제로 돌아오면, 교육은 커리큘럼이 아니라 타이밍이다. 어떤 사람에게, 어떤 시점에, 어떤 경험을 줄 것인가. 이 판단이 리더의 일이고, 이 판단을 위해 1:1에서 계절을 읽어야 하고, 그래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


리더도 사람이다


여기까지 쓰고 보면, 리더에게 요구되는 것이 너무 많다. 팀원의 계절을 읽고, 각자에 맞는 기대치를 설정하고, 경험을 설계하고, 원칙은 일관되게 유지하면서 적용은 유연하게 하고. 이걸 매주, 매일 해야 한다.


솔직히 말하면, 이 모든 걸 잘 하는 리더는 없다. 나도 못 한다. 매주 1:1을 하면서도 팀원의 상태를 잘못 읽고, 좋은 의도로 한 말이 상처가 되기도 하고, 유연하게 하려다 원칙이 흐려지기도 한다.


7년 전 글의 맺음말에서 "이런 조직이 갖춰진다고 내가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낼 것이라고는 생각하진 않는다"고 썼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런 리더십을 완벽히 해낸다고 팀이 창의적이 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시도하는 것과 시도하지 않는 것의 차이는 있다. 그리고 리더가 자기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팀에 하나의 신호가 된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신호. 실수해도 된다는 신호. 그게 2편에서 말한 심리적 안전감이고, 3편에서 말한 불확실성을 함께 마주하는 리추얼의 시작점이다.


리더가 먼저 불완전해야, 팀원도 불완전할 수 있다. 그리고 불완전함이 허용되는 곳에서, 시도가 일어난다. 시도가 반복되는 곳에서, 어쩌다 한 번, 창의적인 결과가 나온다.




시리즈 '창의성의 시대, 7년 후' 4편입니다. 1편에서 창의성의 재정의를, 2편에서 동기부여의 본질을, 3편에서 리추얼 설계를, 이번 편에서는 사람의 다양성과 리더의 역할을 다뤘습니다. 다음 편, 시리즈의 마지막에서 이 모든 이야기를 맺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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