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All-Day-Project (126/365)
내 글에 이어서 생각하기 060: PM 과 도넛 에 이어서
프로덕트 매니저라는 이름의 불확실성 위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는 도넛을 사와야 한다.”
이 말은 농담처럼 들리지만, 사실 PM 역할의 가장 정직한 은유 중 하나다.
도넛은 코드도 아니고, 와이어프레임도 아니고, KPI도 아니다. 그런데도 팀의 사기를 북돋고, 협업을 촉진하며, ‘보이지 않는 일’의 가치를 상징한다. 물론 도넛만 사서는 안 된다.
도넛이 갈등을 회피하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도넛을 사올 줄 아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리 뛰어난 전략도 결국 배고픈 팀의 냉소 속에 사라진다.
그렇다면 PM은 도넛을 사는 사람 그 이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세 가지 비유를 빌려왔다.
기존의 비유들은 PM을 ‘미니 CEO’ 혹은 ‘오케스트라 지휘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CEO는 이미 닦인 길 위에서 의사결정을 내리고, 지휘자는 완성된 악보 위에서 움직인다. 현실의 PM은 그렇지 않다.
PM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법칙 외에는
모두 미지수인 땅에 선다.
이 땅은 비옥한 농경지가 아니다. 화전을 일구거나, 아무도 가보지 않은 빈터를 개간하는 작업에 가깝다. 방법론이나 베스트 프랙티스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삽을 어떻게 쥐는가’에 대한 조언일 뿐, ‘이 땅에서 무엇이 자랄지’를 알려주지는 않는다.
따라서 PM에게 필요한 것은 두 가지 상반된 태도의 공존이다.
- 담대함: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다. 두려워서 삽을 놓고 있으면 안 된다.
- 조심성: 함부로 뿌린 씨앗은 땅을 망칠 수 있다. 한 걸음씩 관찰하고, 실패에서 배우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PM은 ‘경험 많은 농부’보다는 ‘새로 시작하는 농부’ 에 가깝다.
과거의 수확 경험이 많을수록 오히려 낯선 땅의 신호를 읽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케스트라 지휘자 비유의 문제는 무엇일까?
지휘자는 악보(완전한 계획)를 가지고, 연주자들은 그 악보를 오차 없이 연주해야 한다. 통제 가능한 세계다.
하지만 PM이 다루는 세상은 재즈에 가깝다.
- 때로는 즉흥 연주가 필요하다. 시장이 갑자기 변했는데, “악보가 없으니 연주를 멈추자”고 할 수는 없다.
- 때로는 반복 연습이 필요하다. 녹음 세션처럼, 일정 기간 정해진 패턴을 반복하며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PM은 상황에 따라 즉흽과 반복 사이를 오간다.
중요한 것은 통제할 수 없는 것(날씨, 시장, 경쟁, 상사의 변덕)에 대응하기 위해,
통제할 수 있는 것(팀 문화, 실험 설계, 의사결정 원칙)을 디자인하는 능력이다.
날씨를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날씨를 예측하고, 미리 배수로를 파고, 가뭄에 대비해 저수지를 만들어 둘 수는 있다. 이것이 PM이 ‘조건을 만드는 일’의 본질이다.
도넛은 비료와 같다. 하지만 비료도 종류가 많다. 어떤 비료는 효과가 빠르지만 뿌리를 태우고, 어떤 비료는 느리지만 토양을 건강하게 만든다.
PM이 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비료는 무엇일까? 우리의 대화는 여기서 ‘훈육자’의 마인드로 수렴했다.
교사나, 혹은 좋은 어머니/아버지가 아이에게 주는 것처럼:
- 명확한 컨텍스트: “왜 우리가 이 일을 하는지”를 지루할 정도로 반복해서 알려주는 것. 아이는 왜 공부해야 하는지 모를 때 가장 불안해한다.
- 잡초 제거: 팀이 집중할 수 있도록 외부의 잡음, 정치적 이슈, 모호한 요구사항을 걸러주는 것. 아이 앞에서 부모가 싸우지 않는 것과 같다.
- 작은 승리의 축하: 실패에서 배우는 문화와 함께, 작은 성공도 진심으로 인정해주는 것. “잘했어” 한 마디가 아이의 자존감을 만든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가장 강력한 비료는 결국 ‘인정’ 과 ‘안정감’ 이다.
- 인정: “네가 한 그 결정, 그 노력을 나는 보고 있다.”
- 안정감: “실패해도 너 혼자 바카라임지지 않아. 우리가 함께 본다.”
PM이 아무리 뛰어난 전략을 가지고 있어도,
팀이 심리적으로 불안정하면 그 전략은 허상에 불과하다.
반대로, 팀이 안전하다고 느낄 때, 그들은 스스로 더 높은 곳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우리는 시작할 때 “왜 PM이 도넛을 사와야 하는가”라는 가벼운 질문을 던졌다.
이제 그 질문은 이렇게 바뀌었다.
PM은 도넛을 사는 농부이자, 재즈를 연주하는 훈육자다.
씨앗을 뿌리고, 환경을 만들고,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릴 줄 알며, 결코 혼자 수확하지 않는다.
그가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질문’이다.
“우리가 정말 풀어야 할 문제는 무엇인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즉흥인가, 반복인가?”
“누가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좋은 제품은 뛰어난 팀에서 나온다. 그리고 뛰어난 팀은 ‘누군가가 도넛을 사오는’ 팀이다.
하지만 그 도넛이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우리는 함께 일하고 있고, 나는 당신을 돌보고 있다’는 신호 일 때 비로소 진짜 비료가 된다.
그래서 도넛을 사오자.
그러나 도넛에 머물지 말자.
땅을 개간하고, 재즈를 연주하고, 인정과 안정감이라는 비료를 뿌리는 일.
그것이 PM이라는 이름의 진짜 농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