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은 노력이다, 그러면 동기부여의 문제다

2026 All-Day-Project (122/365)

byJamin

창의성의 시대, 7년 후


앞선 글에서 창의성의 무게중심이 이동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How에서 Why로. 그리고 창의성의 본질은 번뜩임이 아니라 반복이라는 이야기도 했다. 시도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것. 그 노력을 어떻게 지속시킬 것인가가 진짜 질문이라고.


이번 글에서는 그 질문을 정면으로 다뤄보려 한다.


교육의 유통기한


팀을 이끌다 보면 "교육"이라는 단어를 자주 마주한다. 팀원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 성장을 도와야 한다. 맞는 말이다. 문제는 뭘 가르칠 것인가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답이 비교적 명확했다. SQL을 가르치고, 피그마를 가르치고, 특정 프레임워크의 사용법을 가르쳤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스킬 교육을 할 때마다 묘한 허무함이 있다. 6개월 뒤에 이 도구가 아직 쓰이고 있을까? AI가 이 작업을 대신하게 되면 이 스킬의 가치는 어디로 가는 걸까?


모래 위에 글씨를 쓰는 기분이다.


물론 기초 체력 같은 스킬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논리적 사고, 문제 구조화, 커뮤니케이션. 이런 것들은 도구가 바뀌어도 살아남는다. 하지만 이것들은 "교육"으로 전달되기 어려운 영역이다. 워크숍 한 번으로 논리적 사고가 늘지 않는다. 반복적인 경험과 피드백 속에서 체득되는 것들이다.


그러면 교육이라는 그릇에 담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나는 점점 이것이 스킬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태도를 가르칠 수 있는가


태도. 일에 임하는 자세. 문제를 대하는 방식. 실패를 받아들이는 법. 이런 것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직접적으로는 어렵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세요"라고 말한다고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는다. "주인의식을 가지세요"라고 말한다고 갑자기 주인의식이 생기지 않는다. 이런 말들은 포스터에 쓰기엔 좋지만, 실제로 사람을 바꾸지는 못한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세상에는 이런 일을 수천 년 동안 해온 조직이 있다.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을 믿게 하고, 그 믿음을 바탕으로 행동하게 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바치게 만든 조직.


종교다.


불편할 수 있다. 종교를 조직 경영의 참고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 하지만 동기부여의 메커니즘이라는 렌즈로 보면, 종교만큼 오래되고 검증된 시스템은 없다.


종교가 하는 세 가지


종교를 뜯어보면 핵심 메커니즘이 세 가지다.


첫째, 세계관을 제공한다. "세상은 이렇게 돌아간다. 당신은 이 안에서 이런 위치에 있다. 그래서 이것을 해야 한다." 크리스트교든 불교든 이슬람이든, 첫 번째로 하는 일은 세상을 설명하는 것이다. 세상이 설명되면, 그 안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둘째, 의례를 반복한다. 매일의 기도, 매주의 예배, 매년의 절기. 한 번 들으면 평생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반복을 통해 신념이 근육처럼 몸에 붙는 것이다. 수도승이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기도를 하는 것은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라, 반복이 체화의 유일한 경로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셋째, 공동체의 정체성을 만든다. "우리"라는 감각. 혼자 믿는 것과 함께 믿는 것은 질적으로 다르다. 옆 사람도 같은 것을 믿고 있다는 사실이 내 믿음을 견고하게 한다. 종교가 모임을 강조하는 이유다.


이 세 가지를 조직의 언어로 번역하면 이렇다. 미션 내러티브(세계관), 업무 리추얼(의례), 팀 정체성(공동체). 그리고 놀랍게도, 잘 돌아가는 조직은 이미 이 세 가지를 하고 있다. 다만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뿐.


신념이 먼저다


여기서 순서가 중요하다. 종교에서도 의례가 먼저가 아니라 교리가 먼저다.

형식이 내용을 앞서면 껍데기만 남는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OKR을 도입하고, 데일리 스탠드업을 하고, 회고를 하는 것 — 이 모든 것이 형식이다. 형식 자체는 좋다. 하지만 "왜 이것을 하는가"가 공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형식만 도입하면, 그건 의미 없는 예배에 앉아 있는 것과 같다. 몸은 교회에 있지만 마음은 딴 데 있는 상태.


수년간 여러 조직 도구를 도입하고 운영하면서 느낀 것은, 도구가 잘 작동하지 않는 이유의 대부분이 도구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 도구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합의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회고가 형식적으로 흐르는 건 회고 포맷이 나빠서가 아니라, "우리가 왜 돌아보는가"에 대한 답이 팀 안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신념이 먼저다. "우리는 왜 이 일을 하는가." 이것이 팀 안에서 살아 있는 언어로 존재해야 한다. 벽에 붙은 포스터가 아니라, 의사결정의 순간에 실제로 호출되는 기준으로.


신념은 선언이 아니라 발견이다


그런데 함정이 하나 있다. 리더가 신념을 "정해서" 팀에 "전달"하면 되는 걸까?


경험상, 이건 잘 안 된다. 위에서 내려온 미션 스테이트먼트를 팀원이 진심으로 체화하는 경우를 본 적이 거의 없다. "고객의 행복을 위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 이런 문장들은 아름답지만, 내 일상의 코드 한 줄, 디자인 한 장과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보이지 않으면 그냥 장식이다.


신념은 선언이 아니라 발견이다. 리더가 할 수 있는 것은 신념을 정해주는 게 아니라, 팀원 각자가 자기 일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일본 편의점 체인의 매장 리포트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하자. 이걸 "리포트 만드는 일"로 인식하면 그냥 작업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 리포트를 받아보는 점장이 "이 데이터 덕분에 폐기량이 줄었다"고 말하는 걸 직접 듣는다면? 내 일이 누군가의 현실을 바꾸고 있다는 감각. 그게 신념의 씨앗이다.


그래서 고객의 목소리를 팀 전체가 직접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업팀이나 PM이 필터링해서 전달하는 게 아니라, 날것 그대로. 좋은 반응도, 불만도. 그 접점에서 각자가 자기만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동기부여의 재료는 사람마다 다르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솔직해져야 한다. 모든 사람이 같은 것에 동기부여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기술적 도전 자체에 불타오른다. 어떤 사람은 고객의 반응에 에너지를 얻는다. 어떤 사람은 동료의 인정이 가장 큰 연료다. 어떤 사람은 솔직히, 지금은 그냥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으며 자기 삶의 다른 영역에 에너지를 쏟고 싶은 시기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게 괜찮다.


7년 전 글에서 나는 조직에 대한 기대를 썼다. 모든 조직원이 창의적으로 불타오르는 이상적인 그림을. 지금은 좀 다르게 본다. 팀 전원이 동일한 열정 레벨로 달리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걸 요구하는 것 자체가 폭력이 될 수 있다.


사람에게는 각자의 계절이 있다. 성장의 계절에 있는 사람도 있고, 회복의 계절에 있는 사람도 있다.


중요한 것은 팀 전체의 열량이 유지되는 것이다. 개개인의 온도는 다를 수 있지만, 전체의 불이 꺼지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지금 회복의 계절에 있는 사람이 나중에 성장의 계절로 돌아올 수 있도록, 문이 열려 있어야 한다.


리더의 역할은 모든 팀원을 같은 온도로 달구는 게 아니라, 각자의 계절을 읽고 그에 맞는 역할과 기대치를 조율하는 것이다. 이게 말로는 쉬운데, 실제로는 매주 1:1을 하면서도 틀리는 일이다. 사람은 변수니까.


스킨 인 더 게임


한 가지 불편한 진실을 더 꺼내야 한다. 동기부여를 이야기할 때 빠뜨리기 쉬운 것. 이해관계의 문제다.

나심 탈레브의 표현을 빌리자면, 스킨 인 더 게임. 게임에 자기 살갗이 걸려 있는가.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내 커리어에 실질적 이득이 있는가, 실패하면 내가 바카라임을 지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사람마다 다르다.


창업자와 직원의 동기부여가 질적으로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리더와 팀원의 온도차가 생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건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구조의 차이다.


그래서 종교의 비유가 다시 유용해진다. 종교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가? 내세의 보상이라는 궁극적 스킨 인 더 게임을 설정했다. 지금의 헌신이 영원한 보상으로 돌아온다는 약속. 물론 조직에서 이런 약속은 할 수 없다. 하지만 작은 단위의 스킨 인 더 게임은 설계할 수 있다.


내가 만든 기능이 고객의 반응으로 돌아오는 루프. 내가 제안한 방향이 실제로 채택되고 결과가 보이는 경험. 내 성장이 팀의 성과와 연결되는 구조. 이런 피드백 루프가 촘촘할수록, 살갗이 게임에 걸리는 느낌이 강해진다. 그리고 그 느낌이 동기를 만든다.


7년 전의 나에게


7년 전의 나는 조직에 "이런 환경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지금의 나는 그 환경을 만드는 쪽에 서 있다. 그리고 깨달은 것은, 환경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환경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충분조건은 사람이다.


각자 다른 계절에 있는, 각자 다른 것에 불타는, 각자 다른 만큼의 살갗이 게임에 걸려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각자의 속도로 자기 일의 의미를 발견하도록 돕는 것. 그것이 동기부여이고, 나는 그것이 이 시대에 "교육"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다음 글에서는 이 추상적인 이야기를 구체적인 도구로 내려보겠다. 1:1, 회고, 데일리, 데모 — 이미 많은 팀에 있는 것들을 어떻게 신념과 리듬과 작은 승리에 정렬할 수 있는지.


도구는 이미 다 있다. 문제는 정렬이다.




시리즈 '창의성의 시대, 7년 후' 2편입니다. 1편에서는 창의성의 무게중심이 How에서 Why로 이동했다는 이야기를, 이번 편에서는 창의성이 노력이라면 동기부여가 본질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구체적인 조직 리추얼 설계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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