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며 사유하는 인간의 위엄을 선포했다. 하지만 소파 깊숙이 몸을 파묻은 채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지금의 나에게, 그 위대한 선언은 형벌에 가깝다.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기어이 굴러가는 이 고달픈 뇌세포의 시동을 끌 방법이 없다. 나는 생각 속에 존재하고, 생각 속에 유배되어 있으며, 끝내 그 생각에 먹혀가는 포로다.
무릎 위 노트북 화면은 빈 백지상태로 차갑게 깜빡인다. 커서는 제 몸을 태우는 촛불처럼 위태롭게 깜박이며 나를 보챈다. 그러나 단 한 줄의 문장도 그 위에 얹지 못했다. 정면의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정체 모를 유튜브 영상이 혼자 바쁘게 흘러간다. 볼륨을 완전히 죽여버린 탓에, 화면 속 인물들의 입 모양만 어지럽게 실룩거린다. 소리 없는 아우성과 하얀 백지의 압박 사이에서 머릿속은 이미 포화 상태다. 방 안은 고요한데, 내 안에서는 아무도 남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는 회의가 온종일 계속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며칠 전 친구와의 만남에서 있었던 서늘한 갈등의 잔상이다. "그때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이미 엎질러진 대화의 파편들을 굳이 건져 올린다. 당시의 내 말과 행동을 현미경 아래 들이밀며 자바카라한다. 지나간 시간은 단 1초도 되돌릴 수 없다는 자명한 물리 법칙을 알면서도, 뇌는 후회라는 부질없는 시뮬레이션을 반복할 뿐이다.
생각의 자락은 멈추지 않고 꼬리를 문다. 안방 너머에서 들려오는 듯한 아내의 불만과 일상의 요구사항들이 연이어 머릿속을 채운다. 가정을 꾸리고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해묵은 문제들, 이 해결되지 않는 삶의 부채들이 차례로 줄을 서서 나를 압박한다. 텔레비전 속 유튜브 화면은 화려한 원색으로 끊임없이 장면을 바꾸며 시선을 유혹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머릿속을 메운 뒤엉킨 덤불뿐이다.
사람들은 이 잡념의 방에서 벗어나려 명상을 한다. 멍을 때리기도 하고, 기도를 올리기도 한다. 나 역시 눈을 감는다. 머릿속 소음을 꺼버리기 위한 필사의 시도다. 하지만 눈꺼풀을 닫는 순간, 머릿속의 와글거림은 데시벨을 더 높여 귓가를 때린다. 비워내려 애쓸수록 머릿속은 망상의 거미줄을 더 촘촘히 엮어갈 뿐이다.
결국 나는 오늘도 생각에게 서서히 먹힌다. 이 무수한 잡음들은 결코 생산적인 사유가 아니다. 그것은 흐르지 못해 끝내 썩어가는 생각의 침전물이다.
침묵 속에서 화면 속 유튜버가 소리 없는 웃음을 터뜨리는 바로 그 순간, 무릎 위의 노트북이 가벼운 기계음과 함께 미지근한 열기를 뿜어내며 내 허벅지를 살며시 데워온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느껴지는 이 사소하고 둔탁한 물리적 온기만이, 내가 실체 없는 유령이 아니라 실존하는 인간임을 간신히 일깨워준다.
노트북은 조용히 열을 올리고 있었다. 화면 위 커서는 여전히 한 줄을 기다렸다. 내 머릿속의 잡음은 언제나 그보다 먼저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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