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한 위선과 처절한 인정 욕구 사이, 어느 무명작가의 고백
시끄러운 생의 중심보다는 서늘한 가장자리가 편했다. 교무실의 상석보다는 창가 근처의 말석(末席), 먼지가 고요하게 가라앉는 그 자리가 내 영혼의 적정 온도였다. 성경의 가르침을 핑계 삼아 나는 늘 등 뒤로 숨었다. 남들이 꺼리는 궂은 행정 업무를 묵묵히 해치우는 것은 배려라기보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한 선택이었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않는 결벽 또한,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겠다는 단호한 선 긋기였다.
서른두 해 동안 이름 없는 배경으로 사는 삶은 평온했다. 익명성은 무거웠으나 따뜻했고, 침묵은 안전했다. 하지만 정년퇴직 후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내 안의 깊은 수렁에 가라앉아 있던 욕망이 수면 위로 고개를 들었다.
글은 활자가 되어 누군가의 눈동자에 박혔다. 그리고 '좋아요'라는 붉은 흔적들이 인장처럼 찍히기 시작했다. 당혹스러웠다. 평생 교단에 서 있던 사람인데, 사각의 화면 안에서 나는 붉은 하트의 개수를 세느라 밤잠을 설치고 있었다.
어느 밤, 새로고침을 누르는 검지 손가락 끝에서 낯선 열기를 느꼈다. 평생 분필 가루를 묻히며 칠판을 채우고, 제자들의 답안지를 넘기며 묵묵히 뒷바라지했던 그 손가락이다. 현실에서는 자신을 지우느라 지문이 닳아버린 손가락이, 가상 세계에서는 한 줌의 인정을 갈구하며 떨리고 있었다. 나의 겸손은 완성되지 않은 연극이었고, 나의 희생은 사실 가장 비싼 값의 박수로 환전받고 싶어 했던 결핍의 산물이었다.
나는 어쩌면 '관종'보다 더 무거운 허영 속에 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걸 인정하는 데 오래 걸렸다. 현실에서의 익명성은 교육자로서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한 연출이었고, 글쓰기에서의 노출은 억눌린 자아의 분출이었다. 말석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글 아래 달린 댓글의 상석을 탐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학은 바로 그 지점에서 발아한다. 완벽한 스승의 모습이 아니라, 인정받고 싶어 안달 난 인간의 비루한 진심에서 문장은 비로소 사람 냄새를 풍긴다. 내가 관종임을 인정하는 순간, 글쓰기는 나를 과시하는 수단에서 나를 해부하는 칼날로 변했다. 하트 하나에 기뻐하는 나를 비웃으면서도, 그 기쁨이 다시 오늘을 견디게 하는 비릿한 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늘도 나는 모임의 말석에 앉는다. 찻잔을 치우고 의자를 정리하며 묵묵히 비켜서 있다. 하지만 주머니 속 스마트폰은 미세한 진동으로 나의 생존을 알린다. 위선과 인정 욕구가 뒤섞인 이 말석이야말로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성소(聖所)다.
분필 가루에 닳았던 그 손가락으로 이제는 문장을 고른다. 누군가에게 읽히기를, 그리하여 내 고독한 말석에 잠시나마 타인의 온기가 머물다 가기를. 나는 이 지독하게 인간적인 욕망을 멈출 생각이 없다. 그것만이 내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꿈을 꾸는 유일한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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