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지는 사라졌으나 길은 여전히 발밑에 있다

- 당신이 읽고 있는 이 문장은 누구의 것인가

by선비천사

한때 나는 문장을 깎아내며 살았다. 무엇을 만들고 있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경기도 시흥, 소래산 그늘이 대야동 골목을 덮을 무렵이면 습관처럼 자판 앞에 앉아 잉크 냄새를 훈장처럼 두르던 시절이 있었다. 등단이라는 좁은 문을 넘기 위해 기득권이라 불리는 성벽 안에서 '순수'를 논하며 가난을 견디던 시간들. 그러나 이제 그 성벽은 낡은 성채처럼 무너져 내리고, 그 자리에 거대한 인공의 파도가 밀려온다.


요즘 나는 내비게이션을 보듯 문장을 본다. 목적지만 입력하면 가장 최적의 경로를 일러주는 기계의 음성처럼, 인공지능(AI)은 내가 밤낮으로 고뇌하며 빚어낸 비유보다 훨씬 매끄러운 문장들을 단 몇 초 만에 쏟아낸다. 적어도 내가 만난 독자들은 더 이상 문장의 배후에 숨겨진 작가의 눈물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저 내 눈앞의 갈증을 해소해 줄 세련된 감정의 알약 하나면 충분해 보였다.


나는 이 '상업성'의 파도를 환영했었다. 닫힌 성벽 안에서 그들끼리 주고받던 찬사보다, 독자가 직접 내미는 응원금 몇 푼이 내 낡은 문장에 매겨진 정직한 무게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광장에서 나는 길을 잃었다. 내가 읽어도 기계가 뱉어낸 문장과 나의 진심을 구별할 수 없었다. 지독히 유려한 그 문장 앞에서 나의 고통은 단숨에 '비효율'이 되었다. 나는 그 문장을 읽고도 아무것도 분별할 수 없었으며, 그것이 무엇보다 두려웠다.


세상이 AI의 인공 산소로 가득 차더라도, 나는 내 폐부에서 나온 이 탁한 숨을 남겨두고 싶다. 그것이 미련인지, 아니면 끝까지 버티는 나만의 방식인지 나는 아직 모른다. 미래 세대는 이 지각변동을 공기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이고, 나의 고뇌는 말을 타야 온기를 느낀다던 과거 사람들의 넋두리처럼 박제될 것이다.


나는 오늘 낡은 지도를 접는다. 목적지는 사라졌으나 길은 여전히 발밑에 있다. 내 손끝의 감각이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나는 이 저무는 노을을 향해 멈추지 않는 발신을 이어갈 것이다. 그것이 내가 아직 멈추지 못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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