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는 지나치게 밝아서 차마 눈을 뜰 수 없다

- 어느 꽃뱀이 남긴 서늘한 문장에 대하여

by선비천사

울타리 밖 쑥부쟁이 그늘을 문지르며

지워진 발자국들이 길게 늘어선다

사려 둔 몸, 풀리지 않는 고독의 타래

풀잎의 주파수를 가로지르는 혀 끝에서

바늘 같은 침묵이 공중을 찌른다


누가 이 유연한 근육에 태생의 죄목을 박았나

비늘은 안감을 보여주지 않는 외투

내부의 연약한 박동을 사수하려는

가장 필사적인 성벽임을 누구도 읽지 못한다


마디마다 흩어진 것들의 백분(白粉)을 삼키며

나는 날마다 몸을 불린다

차마 울지 못한 것들은 몸을 늘려 지평선이 된다


자정의 바위틈, 백야의 고통을 견디며

낡은 가죽을 밀어내고 피 맺힌 허물을 벗는다

제 살을 깎아 세공한 선명한 꽃문양—


흉터는 지나치게 밝아서 차마 눈을 뜰 수 없다


마른 구두의 기척에 놀란 꽃뱀이

화형(火刑)을 끌고 어둠 속으로 잠기면

한 줄기 서늘한 문장이 비명 없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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