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인의 허기를 담아내느라 야위어간 나에게
어떤 농담은
쏟아진 얼음물처럼 차가웠으나
나는 그것을
온기라 믿고 삼켰다
웃음은 늘
먼저 내 쪽에서 시작되었고
나는 침묵이
누구의 얼굴에도 내려앉지 않기를 바라며
기꺼이
나를 가벼운 사람처럼 사용했다
식탁 끝에 걸터앉아
타인의 허기를 담아내는
빈 그릇이 되는 일
그것이 내가
나를 미워하지 않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누군가의 부탁들이
어깨 위로 층층이 쌓일 때마다
나는 무너지는 대신
조용히 배경이 되는 법을 배웠다
불편한 기색을 삼키고
억울함은 접어
주머니 깊숙이 밀어 넣은 채
언제나 괜찮은 얼굴로
남아 있었다
내가 투명해질수록
그들의 세계는
조금 더 평온해졌으나
정작 내 안의 나는
문 닫힌 방 안에서
천천히 야위어가고 있었다
늦은 밤
불 꺼진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은
어딘가 오래 비워둔 집처럼
낯설었다
잘 지내느냐는 질문 앞에서도
나는 습관처럼
괜찮다고 대답했고
그 말은 점점
나를 통과하지 못한 채
입안에서 메마른 먼지처럼
조용히 흩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오래 고여 있던 가시 하나를
끝내 뱉어냈다
단단해진 ‘아니요’를
식탁 위에 올려두자
어떤 이들은
상처 입은 맹수처럼 비명을 지르며 떠났고
어떤 이들은
내 낯선 얼굴 뒤의 그림자를
오래도록
말없이 바라보았다
비어버린 의자들 사이로
그제야 천천히
바람이 통했다
가면이 부서진 자리에서
돋아난 것은
흉터가 아니라
나를 나로 바라봐 주는
몇 개의 조용한 눈빛들이었다
나는 여전히
사람이 좋다
다만 이제는
누군가의 풍경을 완성하기 위해
내 채도를 지우는 방식으로
사랑하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불편한 사람이 되는 순간에도
나는 더 이상
나를 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때서야 비로소
나는
내 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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