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청개구리의 딴생각에 대하여

- 내 생의 가장 높은 곳은 '장군봉'이 아니었다

by선비천사

내 생의 가장 높은 곳은 어느 이름 모를 장군봉이 아니라, 전역 날 후임병들의 거칠고 투박한 손바닥 위였다. 땀 냄새나는 그들의 어깨 위로 내 몸이 붕 떠올랐을 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세상이 말하는 정답의 궤적 밖에도, 사람을 사람답게 밀어 올리는 비정형의 오솔길이 있다는 것을. 그날의 ‘가마’는 내가 평생 써 내려갈 문장의 첫 줄이자, 내 삶의 유일한 긍지였다.


어린 시절, 우리를 가장 두렵게 했던 서사는 '청개구리 이야기'였다. 부모의 말을 거꾸로 들어 결국 어머니의 무덤을 강가에 썼다는 그 비극적인 인과응보는, 우리 세대에게 '순종'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굴레를 씌웠다. 나 역시 그 두려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태생적으로 그 매끈한 질서 위에서 자꾸만 미끄러지는 아이였다. 칠판 위로 분필 가루가 권위처럼 날릴 때면, 나는 바카라상 서랍 안쪽의 어두운 그늘로 망명을 떠났다. 그곳엔 학교가 허락하지 않은 만화바카라과 동화바카라이라는 나만의 ‘비밀 정원’이 있었다. 지루한 애국조회 시간, 뙤약볕 아래 아이들이 픽픽 쓰러져 나갈 때도 나는 망상의 나래를 펴서 운동장을 바다로 만들었다. 내게 '딴생각'은 현실을 견디게 하는 산소 호흡기이자, 규격화된 인간으로 박제되기를 거부하는 소심한 저항이었다.


군대라는 폐쇄적인 공간은 내 안의 청개구리 기질을 가장 혹독하게 시험했다. 90년대 내무반은 폭력이 질서의 근간이었고, 주먹은 군기를 잡는 신성한 도구로 숭상받았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처음부터 용기 있는 자는 아니었다. 선임들의 눈총이 무서워 후임들의 고통을 잠시 외면했던 비겁한 순간들이 내게도 있었다. 그 방관의 기억은 지금도 서늘한 부끄러움으로 남았으나, 그 부끄러움이야말로 나를 깨웠다. "이것은 틀렸다"는 내면의 울림을 따라 나는 주먹 대신 손바닥을 폈다. "너 때문에 애들이 빠진다"는 비난을 견디며 후임들의 등을 토닥이던 미련한 ‘딴짓’. 전역 날, 그들이 만들어준 가마는 내가 지켜낸 작은 인간성에 대한 분에 넘치는 보상이었다.


교문 밖을 나와 교단에 섰을 때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야구방망이와 마대 자루가 법보다 가까웠던 90년대 고등학교 교정에서, 나 역시 관성에 휩쓸려 아이들에게 매를 들었던 부끄러운 날들이 있었다. 매를 든 손의 떨림을 감추며 퇴근하던 길, 나는 내 안의 청개구리가 흘리는 눈물을 보았다. 그 후로 나는 매 대신 봉급 봉투를 털어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 앞 자장면 집으로 향했다.


담장을 넘다 걸린 아이들, 세상에 마음을 닫아걸고 침묵하던 아이들과 마주 앉아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자장면을 비볐다. 거창한 훈계 대신 "많이 먹어라"라는 투박한 말 한마디를 건네며 단무지를 얹어주었다. 검은 춘장을 입가에 묻히며 면발을 넘기던 아이들의 '쩝쩝' 소리는 내게 가장 거룩한 상담 일지였다. 동료들은 나를 '무능력한 교사'라 비웃었지만, 나는 아이들의 포만감 섞인 미소 속에서 교육의 본질을 보았다. 딴생각을 하는 교사였기에, 나는 아이들을 번호가 매겨진 학생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사람'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그 검은 춘장의 온기는 내가 평생 지켜야 할 사명의 온도였다.


이제 서른 해 넘는 교직의 외투를 벗고, 나는 비로소 펜을 든다. 글쓰기는 내 평생을 이어온 '딴생각'의 결정체다. 모두가 당연하다고 믿는 상식에 가느다란 물음표를 던지고, 획일화된 정답의 대열에서 과감히 이탈하는 행위다. 깨끗함의 이면에 숨은 위선을 닦아내고, 더러움 속에 피어난 고귀한 생명력을 문장으로 빚어내는 작업이다. 나는 여전히 다수의 거대한 함성보다 소외된 소수의 가녀린 숨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너무 많이 가진 자들의 화려한 몰락을 꿈꾸며, 바닥을 기는 자들의 소박한 꿈이 빛나는 순간을 기록한다.


돌이켜보면 나의 생은 줄곧 주류의 강물에서 비껴 난 청개구리의 여정이었다. 그러나 그 이탈의 마디마디가 모여 지금 내 문장의 뼈대를 이루었다. 군대 후임병들이 만들어준 가마의 높이가 내 글의 시선이 되었고, 아이들과 나누었던 자장면의 온기가 내 글의 체온이 되었다.


바야흐로 청개구리들의 전성시대다. 인공지능이 모든 정답을 쏟아내는 이 매끈한 시대에, 인간에게 남은 유일한 보루는 '삐딱하게 보기'와 '다르게 느끼기'다. 나는 오늘도 바카라상 앞에 앉아 즐거운 딴생각을 문장으로 옮긴다. 비가 오면 무덤이 떠내려갈까 봐 우는 슬픈 청개구리가 아니라, 세상의 낡은 관습을 씻어내기 위해 하늘을 향해 당당히 울부짖는 이 시대의 당당한 목격자가 되어. 나의 청개구리 노래는 이제 막, 첫 소절을 떼었을 뿐이다.



*같이 보면 좋은 글

낙엽, 봄을 찬탈하다


이 글의 행간에 다 담지 못한 더 많은 그림과 소박한 기록들은 저의 개인 블로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언제든 편히 들러주세요.

� 작가 방철호의 블로그 방문하기

[전자바카라] 바람이 지나간 자리엔 마음이 남았다 | 방철호 | 알라딘

이전 16화바라본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 민들레와 소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