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끝까지 남아 있지 않았다

by선비천사

그날 마지막 수업은 평소보다 일찍 끝났다.


아이들은 종이 울리기도 전에 가방을 챙겼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칠판에는 지우지 못한 채 남겨둔 문장이 있었다.
‘산업화는 필연적인 과정이었다.’


누군가 뒤에서 물었다.
“선생님, 이거 시험에 나와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온다고 말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것 같았고,
안 나온다고 말하기에는 그동안 내가 했던 말들이 걸렸다.


아이 하나가 다시 물었다.
“선생님, 이거 중요해요?”


나는 그때 고개를 끄덕였는지, 아니면 그냥 서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빠져나간 뒤에도
나는 한동안 교실에 남아 있었다.
아무도 없는 교실은 생각보다 넓었다.


칠판 앞으로 걸어가 분필을 집었다.
남겨진 문장을 지우려다 멈췄다.


그 문장은 내가 오래 붙잡고 있던 말이었다.
필연적이라는 단어.
나는 그 말을 믿는 편이 편했다.


결국 지우지 않고 분필을 내려놓았다.


교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누군가 나를 불렀다.
돌아보지 않았다.
그때는 그게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명예퇴직 서류를 제출한 날,
행정실 직원이 말했다.
“선생님, 아직 시간 남으셨는데요.”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네, 압니다.”


그 말이 그렇게 쉽게 나올 줄은 몰랐다.


집에 돌아와 지구본을 꺼냈다.
학교에서 정리하다 가져온 것이었다.
먼지가 꽤 쌓여 있었다.


손가락으로 문질러 보니,
검은 자국이 남았다.


한 바퀴 돌려보았다.
내가 가르쳤던 세계는 여전히 같은 방향으로 돌고 있었다.
멈춘 것은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잠깐 멈춰 있는 쪽에 가까웠다.


며칠 뒤,
그날 교실에서 나를 불렀던 아이가 떠올랐다.


왜 돌아보지 않았는지 생각해보려 했지만,
딱히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저 귀찮았던 것 같기도 하고,
괜히 말을 붙이면 더 길어질 것 같기도 했다.


아니면,
이미 마음이 다른 데 가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밤이 되면 바카라상 앞에 앉는다.
컴퓨터를 켜고, 한참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깜빡이는 커서를 보고 있으면
무언가 써야 할 것 같다가도,
막상 쓰려하면 문장이 잘 붙지 않는다.


나는 오랫동안 정답을 말하는 쪽에 있었다.
지금은 질문을 붙잡고 있는 쪽에 있다.


그게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잘한 선택인지 아직은 모르겠다.
다만, 예전처럼 확신을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조금 편해진 것도 같다.


가끔은,
그날 교실에서의 질문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이거 중요해요?”


나는 아직도 그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


지구본을 다시 돌려본다.
손으로 밀어도,
그건 결국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나는 그 바깥으로 조금 벗어난 것 같기도 하고,
아직 그 위에 남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느 쪽인지 분명하지 않다.


다만 한 가지는 안다.


나는 그날,
끝까지 남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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