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 돌아간다면, 나는 단추부터 다시 채우고 싶다

by선비천사

어긋난 문장, 뒤틀린 단추


서른두 해 동안 분필 가루를 마시며 아이들에게 '직선'의 삶을 가르쳤다. 칠판 위에 그어지는 곧은 선들처럼, 삶 또한 정해진 구멍에 단추를 끼우듯 단정해야 한다고 믿었다. 아이들의 흐트러진 교복 깃을 바로잡아주던 내 손길은 늘 확신에 차 있었다. 그러나 퇴직 후, 아무도 없는 거울 앞에 홀로 서서 내 생의 외투를 마주했을 때, 나는 비명을 삼켰다.


분명 순서대로 채웠다고 믿었던 단추들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단추를 끼우려 손을 뻗었을 때, 그곳엔 맞이할 구멍이 없었다. 옷감은 팽팽하게 당겨져 비명 지르듯 울고 있었고, 밑단은 꼴사납게 어긋나 있었다. 거울 속에는 평생 '바름'을 가르쳤으나 정작 자신의 생은 기괴하게 뒤틀어버린 한 이방인이 서 있었다.



기억은 연기가 아니라 퇴적되는 화석이다


인지하면 할수록 그 화석은 날카로운 모서리를 세우며 가슴 한복판을 짓누르는 돌덩이가 된다. 젊은 날, 나는 얼마나 많은 인연의 구멍을 엇나가게 채웠던가. 사랑이라는 이름의 단추를 '오만'이라는 구멍에 억지로 밀어 넣었고, 진심이라는 단추는 '자존심'이라는 좁은 틈에 가두었다. 상처 입은 인연들의 눈물을 보면서도 나는 그것이 내 옷매무새를 망치는 얼룩이라 여겨 외면했다.


어머니의 거친 손마디는 또 어떠했나. 자식의 내일을 위해 당신의 오늘을 닳게 하던 그 굽은 등을 보며, 나는 감사함이라는 단추 대신 당연함이라는 무심함을 채웠다. 엄격함이라는 거대한 성벽 뒤에 숨어 계셨던 아버지와의 불통 또한, 끝내 화해의 구멍을 찾지 못한 채 영원히 어긋난 채로 남았다. 이 모든 것이 이제는 깎아낼 수도, 삼킬 수도 없는 돌덩이가 되어 내 밤을 괴롭힌다.



영혼의 통각, 깨어 있는 자의 불면


문득 세상으로 시선을 돌리면 억울함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저잣거리의 정치가들을 보라. 그들은 대역죄를 짓고도, 수많은 이의 삶을 짓밟고도 비단옷을 휘감으며 당당하게 걷는다. 그들의 단추는 늘 번쩍이며, 뒤틀린 옷자락 따위는 권력이라는 외투로 교묘히 가려버린다.


왜 세상은 죄지은 자들에게는 무감각한 평온을 주고, 나처럼 작은 허물에 가슴 치는 자들에게는 혹독한 불면을 주는가. 그러나 이내 깨닫는다. 그들의 당당함은 용기가 아니라 '영혼의 괴사'일 뿐임을. 신경이 죽은 환자는 칼날이 살을 베어도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 내가 느끼는 이 지독한 통증은, 내 영혼이 여전히 살아있으며 '정갈함'을 향한 갈망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고귀한 신호다. 나는 저들의 무지한 영화보다, 나의 깨어있는 고통을 택하기로 한다.



고백이라는 정으로 돌덩이를 쪼다


이제 나는 이 무거운 돌덩이를 문학의 정(chisel)으로 쪼아보려 한다. 가슴속에 가두어둔 비밀은 독이 되지만, 세상 밖으로 꺼내놓은 고백은 약이 된다. "나는 이토록 어긋난 사람이었다"라고 고백하는 순간, 팽팽하게 당겨졌던 생의 긴장은 비로소 느슨해진다.


글을 쓰는 행위는 잘못 끼워진 단추를 하나씩 풀어내는 성스러운 의식이다. 원고지 위에 어머니의 갈라진 손등을 그리고, 아버지의 차가운 뒷모습을 불러내어 화해의 문장을 건넨다. 상처 주었던 인연들의 이름을 호명하며 참회의 잉크를 적신다. 그렇게 한 줄씩 써 내려갈 때마다 가슴을 짓누르던 돌덩이는 조금씩 모래가 되어 바람에 날려간다. 고백은 나를 발가벗기는 수치가 아니라, 비로소 나를 용서하는 유일한 구원이다.



다시, 생의 첫 단추를 향하여


인간의 생에 '완벽한 정갈함'이란 존재할까. 어쩌면 우리 모두는 조금씩 어긋난 단추를 단 채, 서로의 뒤틀린 옷자락을 연민하며 살아가는 존재들일지도 모른다. 시간을 되돌려 단추를 바로 끼울 수는 없지만, 우리는 그 뒤틀림을 통해 비로소 '인간의 비극'과 ' 사랑의 무게'를 배운다.


오늘도 나는 거울 앞에 선다. 옷매무새는 여전히 조금 어긋나 있고, 상처 입은 가슴엔 흉터가 선명하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 기괴함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살아낸 세월의 무늬이며, 고백을 통해 얻어낸 훈장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손을 뻗어 오늘이라는 이름의 첫 단추를 채운다. 비록 지난날의 단추들은 헐겁게 흔들릴지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가장 정직한 구멍을 찾아 조심스럽게 단추를 밀어 넣는다. 흔들리는 손끝에 생의 경건함이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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