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띄고 싶은 마음,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마음

by석은별

온라인카지노를 시작하면서 가장 오래 고민했던 건,

언젠가 내 이름으로 된 바카라을 출간하게 된다면

나는 도대체 어떤 말을 그토록 하고 싶어하는 걸까 하는 점이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입장에서 살아오다 보니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낯설기도 하고 떨린다.


언젠가는 정말 유명한 사람이 되어서 그간 내 삶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사람들을 배 아프게 하고 싶었다.

언젠가는 그대들의 삶에서 내가 비켜났지만 나의 세상은 더욱 견고해졌노라 자랑하고 싶었다.


그 마음의 뒤편에는 솔직해지면 다들 나를 떠나거나,

내가 원치 않는 해석을 붙여 그들 식대로 옮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그렇지 않더라도 무턱대고 장하다 대견하다고 말하는 이들의 가벼운 관심도 불편했다.

그저 아무 말 없이 그냥 들어주는 한 사람이 필요했는데,

내 인생에서 그렇게 들어주는 사람들을 딱 세 명만 만들어 보자는 바람에 들어온 건 '남편' 뿐이다.


솔직히 나만 실컷 떠들 정도로 귀를 열어 두는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흘려 들었을 것 같은 대목들을 기억해서 고스란히 되돌려 주며

구깃해진 마음을 다림질하는 힘이 있다.

어쩌다 한 번씩 나오는 그 귀 기울임의 흔적 덕분에 남편은 아직도 그 세 명 안에 든다.

.

.

.

온라인카지노에 필명(석은별은 필명입니다)으로 둥지를 튼 후 가장 두려웠던 것은

내가 글로 어디까지 나를 오픈할 수 있는가였다.

감정의 결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가.

무수히 많은 추상적인 경험을 어떻게 글로 표현할 수 있는가.

못 할 바에는 안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러다 AI의 도움으로 온라인카지노북 한 두 권을 내 보기도 했지만

어찌 된 게 마음이 내키지 않아 몇 달간 접속하지 않기를 반복했다.

.

.

.

누군가 알아볼까 봐 필명을 쓰면서

누군가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는 것

참 징글징글하다.

숨바꼭질 놀이로 다져진 게 아니라

숨어야만 무사할 수 있었던 숨기의 흔적 아닐까.


내가 여기 있는 걸 아무도 모르면 안 되지만 그가 아는 것은 더 위험하다.

무엇이 조금 덜 위험한지를 늘 신경 쓰며 살아왔던 생존의 흔적이

눈에 띄고 싶어 하는 마음과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마음 사이에도 묻어있다.


그렇게 나는 숨어서 밤을 지새웠던 그날의 나의 좌표를 기억한 채

그 속에 숨어 있는 아이에게는 다가서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

.

.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언어로,

아직 살아 있음을 알리는 나의 흔적들을 서서히 찾아가 보려고 한다.


어느 동네의 작은 교회에는 평일이면 아이들이 모여 숙제를 하거나 라면을 끓여 먹고, 가위바위보로 설거지를 하고, 행주를 탁탁 털어 널어 두는 약속이 있었다.

누구든 와도 되지만 자신이 머문 흔적을 말끔하게 치워야 다음에도 모일 수 있기 때문이다.


주일에는 교회를 가지 않는다.

그날은 집 밖에 나올 수 없다.

하지만 평일에는 학교를 다녀온 핑계로 곧장 집에 가지 않아도 되니 늘 교회에 갈 수 있었다.

한번은 여름성경학교를 한다기에 아침 일찍 교회에 가려고 나섰다가 아빠에게 붙잡혀 무릎을 꿇고 몇 시간이나 훈계를 들었는지 모른다.

신이라면 지긋지긋하다는 아빠는 어린 나에게 말했다.

“신은 무슨 신이야. 나 자신을 믿어. 자신이 바로 신이야.”

기집애가 나가서 허튼짓하며 돌아다닌다며 혼을 내기도 했고,

교회에서 애들 코 묻은 돈 뜯어낸다며 역정을 내기도 했다.


하루는 고주망태가 된 아빠가 교회 마당에 대자로 드러누워 있었는데

그건 “교회 가지 마!”라고 소리 지르는 것보다 훨씬 강한 힘이 있었다.


아무도 내게 주일날 교회 나오라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평일에 들르는 그 발걸음은 누구든 환영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같이 모여 숙제하고, 팝콘 튀겨 먹고, 서너 살 많은 언니 오빠들이 만들어 주는 달고나와 라면이 그렇게 맛있었다.


하루는 남자 전도사님이 내게 집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물었다.

그때 나는 ‘내게 강 같은 평화’라는 노래를 불렀다.

“묻지 마세요”라는 말을 하기 쑥스러워

그 노래만 반복해서 부르며 울음을 꾹 참았다.


동네 사람들은 다 알았을 테지.

부인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이곳저곳 끌고 다니며

“외상 주지 말라고!”라고 고함치던 사람이 내 아빠라는 걸.

아빠가 술을 마시는 날이면

나는 아이들이 다 돌아간 교회에 홀로 남아 불도 켜지 않은 채 긴 의자에 누워 있다가 들켜서 집에 갔다.


하루는 아빠 목소리가 들려

교회 벽을 가린 커튼 뒤에 숨어 벽에 딱 붙어 바들바들 떨기도 했다.

그날은 다행히 잡히지 않았다.


아빠가 잠든 후에 들어가면 별일 없이 다음 날이 된다.

하지만 아빠가 잠들기 전에 들어가면 그날은 밤새 아무도 못 잤다.


다음 날이면 혀를 끌끌 차는 이웃집 아저씨와

“술이 웬수지. 술이!”라며 그날 저녁 또 술약속을 잡는 아저씨들을 보며 모두 삼청교육대 같은 곳에 끌려가는 상상을 했다.


교회에서 늦게까지 놀다가 동네 아이가 말했다.

“은별아. 오늘은 너희 아빠 술 안 마셨나 봐. 오토바이 타고 가시던데?”

“야… 술 마셔도 오토바이는 타.”

“그래? 그럼 너 오늘도 늦게 들어갈 거야? 내가 같이 있어줄까?”

“아니, 됐어. 얼른 가.”

엄마들이 아이를 부르는 저녁 골목에 내 이름은 없었다.


새엄마는 동생들을 이 집 저 집 맡겨 놓지만

내가 어디 있는지는 관심 없었다.

집 안에서 이름을 부르면 아이들이 하나둘 자기 집으로 들어가는 시간이 훤한데

내 이름을 불러주는 집은 없었다.


그날도 아빠가 정말 술을 안 마셨는지 궁금했다.


대문에 들어서기도 전에

아빠의 고함 소리가 들린다.

동생들의 울음소리도 들리고

쟁반이 내동댕이쳐지는 소리도 들린다.

바로 뒤돌아 다시 교회로 갔다.

가방은 커튼 뒤에 숨기고

나는 강대상 아래 들어가 몸을 웅크렸다.


지난번에 긴 의자에 숨었다가 들킨 적이 있어서

이제는 그 의자에는 숨지 않는다.

“은별이 여기 있나! 그렇게 가지 말라는데 또 여기 있나!”

씩씩대는 아빠 목소리가 들린다.

기도했다.

“하나님 예수님. 정말 정말 계신다면 우리 아빠가 나를 못 찾게 해주세요.”

작은 교회 안에 아빠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지다가 멀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가시나. 다들 집에 알아서 들어가는데 이건 왜 제때 안 기어 들어오고 지랄이야. 쪼매난 아 하나 못 간수 해갖고는…”


술 취한 아빠가 원한 건 이런거다.

자기가 들어오면 내가 집에 있는 것.

그리고 자기가 잘 때 내가 옆에서 자는 것.

월, 수, 금 연재
이전 02화오늘 옛날의 '나'들이 떠올랐다